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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Feb 25. 2019

이상한 모임

그러나 자꾸 생각나는~

할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고 바쁘고 바쁜데 그런데 이상하게 궁둥이가 떨어지질 않는다. 그야말로 그냥 개기고 앉아있다. 그만 봐야지 그만! 하면서도 넋 놓고 마냥 TV를 보듯이 이상하다 정말. 그렇게 시간은 마냥 늦어지고 있다. 아침 11시 반에 들 만나 점심을 먹는 것으로 모임은 시작된다. 우리는 중학교 동창 12명이다. 바쁜 사람도 있고 안 바쁜 사람도 있고.  고등학교를 시험쳐서 들어간 마지막세대인 나의 여고 동창과는 달리 뺑뺑이로 들어간 중학교 동창은 사는 것도 일하는 것도 제각각이다. 그런 친구들이 아주 어릴 때 친구들이 아직도 얼굴에 그때 모습 있어~ 하면서 새로 모인 지 어언 5년. 그중에 남대문시장에서 가게를 하는 아이가 한 명 있는데 거기가 우리 아지트다. 점심을 먹고는 그 애 가게에 우~ 몰려가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별의 별거를 다 파는 그 애 가게에서 이것저것 사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그리고 마냥 수다를 떤다. 저기 바지 파는 데 갔다 올게 하면서 우 몰려가고. 그렇게 개기다가 저녁까지 먹고 그리고도 또 조금 더 개기다가 겨우겨우 헤어진다. 그렇게 이상한 모임인데 사실 뚜렷한 목적 있는 모임도 많은 데 그런 것 다 빼고 언제나 이 모임이 생각이 제일 많이 난다. 정말 별거하는 것 없이 킬링타임일뿐인데. 아주 비생산적인 것만 같은.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이 옷 어때? 괜찮아? 그래. 딱 네 옷이다. 입어 봐. 팔이 좀 기네. 가슴이 열려 똑딱이 달아야겠어. 옷 하나에 꼽혀 물어보면 이 참견 저 참견 다 하는 친구들. 그렇게 누구는 원피스를 누구는 바지를 누구는 티셔츠를 산다. 아~ 무 생각 없이 12명 중 한 명이 사는 것을 우르르 몰려 참견하고 조언하고 사라 고도하고 사지 말라고도 하고 다시 입어보게 하고 잘 샀다고 칭찬하고 그런 거 왜 샀냐고 타박도 하고. 그런 것만 하루 온종일 하다 헤어진다. 정말 아무 의미 없는 쓸데없는 일처럼만 보이는 일들 즉 개기는 것. 


옆 가게에 바지도 있다. 내가 여름에 너무나 잘 입었던 체크바지 겨울 거가 있다. 한 친구가 입어본다. 궁둥이가 뚱뚱하여 바지가 터질 듯 빵빵하다. 안 되겠어. 벗어. 넌 안 되겠다. 친구들은 그녀에게 벗으라고 난리다. 그렇게 친구가 벗는 걸 슬그머니 내가 입어본다. 문득 내가 너무나 잘 입은 여름 체크바지가 생각나서. 아. 내가 그녀보다는 살짝 날씬한지 딱 맞는다. 살까 말까? 그런데 비싸다. 야 이건 완전 너의 바지다. 입어라.  한 친구에겐 벗으라고 난리 치던 친구들이 나는 입으라고 난리다. 그런 식으로 이 친구 저 친구 양말도 사고 슬리퍼도 사고 앞치마도 사고 바지도 사고 원피스도 사고 우리들 쇼핑은 자잘한 거에서 큰 거까지의 쇼핑은 깔깔 푸하하하와 함께 친구 가게를 아지트로 죽치고 앉아 이곳저곳 온갖 곳을 기웃거리며 사기도 하고 안사기도 하고 그렇게 줄줄줄줄 시간을 흘러 보내고 있다. 그렇게 촌음을 아껴  시간에 벌벌 떨던 내가 말이다. 나뿐일까. 


정말 이상하지 않아? 우리 여기 왜 이리 죽치고 앉아있을까? 정말 왜 이럴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리는 결론을 내린다. 몰라. 모르지만 참 재미있어. 중학교 때 모습이 얼굴에 남아있는 친구들과의 마냥 시간 보냄이 그냥 막 좋다.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모여서 아~무 할 일 없이 시간을 잡아먹고 있는 정말 아~ 무것도 안 하는 듯한 이 모임이 결국엔 제일 많이 생각이 난다. 많은 시간을 함께 개겨서일까. 아니면 혼자서는 개기는 거 잘 못해서일까. 혼자서 TV에 넋을 놓고 있다던가 먹는 거에 꽂혀있다던가 그러면 그런 상황에서 혼자서는 절대로 탈출을 못하고 그런 나의 모습이 싫어 자학을 하고 그렇게 시간에 발발 떠는 내가 마냥 시간 킬링을 하고 있다. 십여 명의 친구들과 함께 쓰잘데 없는 수다를 떨면서.


그 한참의 시간 후에 한 밤중에 집으로 향하는데 그렇게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는데 어떻게 마음이 이리도 훈훈할 수 있느냐 말이다. 무언가 바쁜 일상에서 해방된 느낌이랄까. 자신의 원칙에서 놓여난 기분이랄까? 왜 꼭 시간을 보람되게 보내야만 할까? 좀 게으르고 멋대로고 엉망진창이 되면 안 되는 것일까? 되건 안되건 그렇게 원치 않는 곳으로 시간이 흘러가 버리면 자학을 할 정도로 자신을 닦달한다. 왜 그렇게 헛된 시간을 보냈어! 그러는 내가 친구들과 함께 거의 하루 종일을 온갖 쓸데없는 일들로 채운다. 옷 입어보고 살까 말까 하고 친구 옷 참견하고 밥 먹고 친구 가게 안에서 죽치고 앉아 수다 떨고. 하물며 그 일이 왜 이렇게 내 마음을 훈훈하게 하느냐 말이다. 도대체 난 왜 바쁜 것일까? 왜 시간에 그렇게 동동 발을 구르며 사는 것일까? 하릴없이 정말 쓸데없이 시간을 보낸 나는 그런데 그 시간이 이렇게 생각이 나고 그립고 하는 것에 다시 놀라고 있다.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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