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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ul 21. 2020

자가격리 끝나는 날

친구들이 모였다

동창을 부를까 우리 셋만 만날까?


S는 내게 물어왔다. 동창은 함께 잘 만나는 여섯 명의 모임을 말하고 우리 셋이라 함은 나랑 B 둘을 말하는 것이다. B는 나랑 초등 동창이면서 S랑도 초등 동창이다. 덕수 국교를 다니던 B가 6학년 때 실시된 마지막 학군제 조사에서 가짜 집을 가짜라고 말하는 통에 부모님의 치맛바람에도 불구하고 후암동 동네 학교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그 후 전학 간 학교에 S가 있어 둘은 또 초등 동창이 된 것이다. B랑 S랑 친하고 나랑 S랑 친하다. 나도 B도 S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 잘 알고는 있지만 그렇게 함께 찐하게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다. 이번을 S를 중간에 두고 지극히 친한 B와 내가 S와 함께 삼총사로 뭉치는 기회를 갖느냐 아니면 그녀의 즐거운 6명의 주로 만나는 초등 동창들을 만날 것이냐 그것이 문제였다. 웃고 떠드는 6명 동창들과의 만남은 모두 서울이니 언제고 가능하고 지방에 있는 나랑 B랑 S랑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최고라는 데에 의견이 모아진다.


잠깐. 일단 나의 서방님 허락을 받아야겠지? 여보 S가 자가격리 끝나는 날 그녀 친구 B랑 나랑 셋이서 밤새 수다 떨자는데.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나 꼭 가고 싶다. 그녀가 꼭 오래. 무어라 말할까 궁금했는데 의외로 남편은 S라면 다녀와야지. 긍정적이다. 헉? 서방님도? 물론 나의 서방님은 S를 잘 안다. 내가 신혼 집들이할 때 우리 집에 와서 그때 유명했던 삼성 요리책을 보고 함께 음식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종종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이야기를 했기에 아주 잘 안다.


세 명이 진지한 대화냐 아니면 여러 명의 흥겨운 파티냐 갈등하다 오로지 세명의 진지한 대화로 그녀의 자가격리 종료 축하의 밤을 보내기로 한다. 몬 자가격리? S는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다. 그녀 엄마는 93세 이시다. 여전히 주식투자를 하고 계시는 지난번 나의 글에 등장한  S의 엄마. 그 엄마를 만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에 왔다. 귀한 시간 귀하게 내어 왔지만 오는 즉시 그녀는 14일의 자가격리에 들어가야만 했다. 전화 통화만 가능할 뿐 보건소 직원도 가족도 모든 걸 문 앞에 두고 딩동 벨만 누르고 사라지는 그런 상태로 14일을 보내고 드디어 출소하는 날이다. 출소? 감방도 아니고. 푸하하하 우리는 그걸 출소라고 부르며 두부를 준비하까? 자가격리 마지막을 어떻게 기념할까? 난리다. 난 기꺼이 열차를 탄다.


너 밤샌다 하고 또 쿨쿨 자면 안 돼.

하하 여고시절 나는 유명했다. 시험공부한다고 친구들 있는 대로 불러놓고 정작 난 쿨쿨 잠을 잤던 것이다. 왕년의 추억이 생생한 S는 잔뜩 기대로 우리의 밤을 마련해놓고 행여 내가 또 쿨쿨 잠에 곯아떨어질까 걱정이다. 설마 내가 지금도 그럴까? 하하 그녀를 안심시킨다. B는 분당에서 달려가고 나는 울산에서 달려간다. 드디어 우리의 멋진 밤이 시작될 참이다. 했다 하면 몇 시간씩 통화를 하면서 또 이야기할 게 남았어? 남자인 남편은 이해하지 못한다. 여자들의 수다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를.


어디 가지 않고 바로 그곳에서 중국음식을 시켜 퍼더 지고 앉아 실컷 먹으며 수다를 떨기로 한다. 맥주 소주 와인이 마련된다. S의 동생이 특별한 안주도 마련해주었다. 대추 코코넛 버무림 과자, 대중적 너트 세트, 표고버섯을 말려 설탕 뿌려놓은 것, 쵸코 버무리 아몬드, 오징어, 육포, 나초, 살사 소스... 맛있는 안주들과 함께 드디어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진지하게 우리의 대화를 시작한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우리 세대 7080 노래가 울려 퍼진다. 이문세의 가로등 불빛 아래를 따라 부르고 조용필의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했는가아아 아 에선 모두 그때 그 시절로 잠시 날아간다. 너의 집 일본식 집이라 미로 같았지. 그런데 너의 엄마 머리가 완벽하지 않으면 절대 나타나지 않으셨어. 하하 그래 맞아 맞아. 우리들 대화는 60년대로 70년대로 80년대로 종횡무진이다.


어쩜 세월이 이렇게 빠를까? 하다못해 초등 때 이야기도 엊그제처럼 그 느낌 생생한데 그게 벌써 몇십 년 전 까마득한 옛이야기야. 세월 지내보니 십 년 우습지도 않던데 이십 년이라 해봐야 금방이잖아?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 세월인지 우리가 알지. 그러게 말이야. 그리 아등바등할 것도 없어. 그냥 이렇게 옛 친구 만나 룰루랄라 살자며 술잔을 기울이는데 딩동~ S의 동생 H가 퇴근하다 언니 친구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다. 사업을 하는 그녀는 오늘 바로 중요한 한 껀이 성사되어 기분이 좋다. 우리도 덩달아 기쁘다. 중학생 꼬맹이였던 H가 언니 언니 하며 어릴 때로 돌아간다. 어려웠던 회사 이야기를 한다. 소설 같은 그녀 이야기에 우리 모두 빨려 든다. 아, 멋지다. 그래. 잘했어. 정말 잘했어. 축하해.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해낸 장한 그녀를 마구 축하한다. 회사에서 바빴던 그녀가 그 어릴 때 쫓아다니던 언니들 앞에서 맘껏 마음을 풀어놓는다.  아. 세월은 언제 우리를 이렇게 나이 들게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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