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남편과 스물네 시간 함께
비가 쏟아진다
쏴아 쏴아
투두둑 쏴아 쏴아
19층에서 들으니
음악보다 더 음악 같다
안방 베란다 문을 연다
빗소리도 듣고 시원도 하려고
번쩍번쩍 빛이 환하더니
우루룽쾅쾅 소리가 요란하다
쏴아 쏴아 쏴아 쏴아
소리가 커진다
빗줄기가 굵어진다
장대 같은 비다
누가 여기 문 열었어?
헉! 남편이 문을 닫으며 찡그린다
앗! 화려하게 들리던 빗소리가 사라진다
하나도 안 들린다
빗소리 좋지 않아?
집이 너무 습기 차게 돼
나중에 닦으면 되지 빗소리 듣자
저 쏟아지는 비를 들이닥치는 비를 어쩌려고
나중에 깨끗이 닦으면 되지
안돼! 너무 습기 차
난 참 착한 여자일까 바보일까
빗소리가 더욱 듣고 싶지만
그냥 그 하는 대로 둔다
그는 거실에
나는 안방에
빗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습기는 안차겠지만
그래도 이 비가 쏟아지는데
살짝 베란다 문을 연다
그래도 그가 일부러 닫았는데?
여보~ 나 안방 베란다 문
잠깐만 아주 잠깐만 열어도 될까?
빗소리 듣고 싶어
그냥 열어도 되겠지만 그래도
그가 닫았는데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목소리를 예쁘게 해서일까
문 닫은 게 미안해서일까
그래~
다정한 오케이 소리가 들려온다 하하
그에게 말하길 잘했다
바보면 어떻고 너무 착하면 어떠랴
그가 좋고 내가 좋으면 되는 거지
우리! 파이팅! 푸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