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봐도 너무너무 재밌다며 후배는 입이 근질근질해 어쩔 줄 모른다. 연예 소식에 젬병인 내가 요즘은 무엇을 봐야 하나 가끔 물어보는 후배다. 고뤠? 꼬치꼬치 물으니 3년 전쯤에 1부를 했었고 이제 2부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제목도 내용도 전혀 생소하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가? 네. 볼 수 있어요. 해서 나는 서둘러 남편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었으니 여보 너무너무 재밌는 거 볼 거 있다. 비밀의 숲이라고 조성우랑 배두나 나오는데 연기도 너무 잘하고 검사들 이야기인데 무척 재밌대. 여보도 좋아할 거야. 우리도 그거 보자. 하며 나는 넷플릭스에서 그걸 튼다. 왜냐하면 우린 항상 부엌에서 밥상을 차려와 식탁이 아닌 거대한 TV 앞에 앉아 그 옛날 TV가 귀할 때처럼 철퍼덕 마루 바닥에 앉아 밥 먹으며 TV 드라마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서로 드라마 취향이 맞지 않아 차라리 뉴스를 보고 있었다. 김수현이 나오는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난 너무 좋은데 무슨 만화 같다고 영 자기 취향 아니란다. 싫다는 걸 억지로 보게 할 수도 없어 우리의 밥 먹으며 TV 드라마 보기가 중단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짜잔~ 드디어 다시 시작된 우리의 밥 먹으며 TV 드라마 보기. 비밀의 숲. 와우 시작부터 만만치 않아. 우리가 이 재밌는 걸 어떻게 놓쳤을까. 차가운 조승우도 털털한 듯 예리한 배두나도 연기들을 어쩜 저렇게 잘할까. 앗, 저 사람도? 저 사람도? 곳곳에 등장하는 정말 괜찮은 배우들. 특히 이경영. 재벌 포스가 폴폴 풍기는. 푸하하하 그 누가 저분처럼 재벌 회장님을 잘 연기할 수 있을까. 등등 신나게 우리는 비밀의 숲 1부를 시청한다. 1편 2편 3편... 앗, 그런데 철창에서 배두나가 피를 발견하는 저 장면 기억나네. 우리가 혹시 이 드라마 봤나? 장편 소설 읽듯 1편부터 작정하고 봐 나가는데 스토리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데 가끔 그 어떤 장면이 기억에 또렷하다. 이렇게 재밌는 걸 안 봤을 리 없지? 봤나? 바빠서 보다 말았나? 해가면서 우리는 TV 앞에 매달려 있다. 눈도 침침해오고 뒷목도 뻣뻣해오고 허리도 뻐근해온다. 그대로 폐인 될 판이다.
폐인이 안되기 위하여 책도 가져오고 브런치 글도 읽는다.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함께 하면 꼭 폐인은 아닐 테니까. 그러나 노노노. 그렇게 술렁술렁 보기엔 내용이 너무 치밀하여 따라갈 수가 없다. 게다가 넷플릭스로 보니 밑에 영어 자막이 뜬다. Culprit 가 모지? 범인인가 봐? 밑에 나오는 영어 자막을 읽으며 드라마를 보니 무언가 영어공부도 하는 것 같아 꼭 폐인만은 아닌 것도 같다. 요가를 하면서 볼까? 다리도 번쩍번쩍 들어 올려보지만 아니 아니 그냥 편하게 보자. 드라마에만 집중하자고.
서서히 오후 산책 시간이 되어간다. 나갈까? 한 편만 더 보고. 한 편만 더 보고. 그렇게 스토리가 클라이맥스로 향해갈수록 우리의 흥미도 무궁무진해지며 캬~ 너무 재밌어~ 가볍게 산책도 제치고 청소도 제치고 심지어 밥도 제치며 그냥 라면? 그래 후다닥 요렇게 하루 종일 뒹굴뒹굴 TV를 본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 온다. 머리도 띵하다. 그렇게 새벽 2시가 넘어간다. 그래도 조금만 더 보자. 하하. 그렇게 우리는 폐인이 된다.
옛날에 그런 때가 있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우리나라에 비디오가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 밤마다 중국 비디오 시리즈물을 열개 스무 개 잔뜩 빌려놓고 밤새 보던 기억. 아기는 옆에 뉘어놓고 둘이 새벽 두 시 세시까지 보았다. 지금 우리는 추억 속 그때로 돌아갔다. 하하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면 이렇게 위로했다. 푸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