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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ug 29. 2020

다음 메인에 빵! 뜰 때 됐는데요

엄마, 지금쯤 다음 메인에 빵! 뜰 때 됐는데요. 왜 과거 글만 올립니까?


새벽 두 시. 파리에서 근무하고 있는 작은 아들의 퇴근 시간을 기다려 보이스톡을 하니 대뜸 내게 하는 말이다. 새벽 1시쯤 걸었더니 안 받고 '미팅 중입니다'라는 톡이 와 우리는 일부러 한 시간을 더 기다려서 전화한 것이다. 아니, 무슨 재택근무를 그렇게 철저히 할까? 대충 실실 놀면서 할 수 있는 게 재택근무 아닌가? 그러나 그렇지 않단다. 비록 집에서 일하지만 일의 강도는 더욱 세단다. 출퇴근 시간이 회사에서 근무할 때보다 더 심한 것 같다.  


그래도 엄마 중학교 때 일기 사람들이 많이 보는 것 같던데. 그거 안 좋아?
아니, 괜찮아요. 좋아요. 그런데 요즘 글은 하나도 없잖아요.


글 쓰기와 글 읽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브런치를 강추해 입문하게 한 우리 작은 아들. 그 애는 지금 파리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 큰 아들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일하고 있다. 꼴랑 아들 둘인데 그렇게 모두 멀리 떨어져 있다. 밤이면 종종 보이스톡으로 그리움을 달랜다. 밴쿠버의 큰 애는 오후 네시쯤 그 애가 잠자리 들기 직전. 작은 애는 새벽 두시쯤 그 애 퇴근 시간에 맞춰서.


그것도 습관인가 봐. 한 번 과거를 뒤지기 시작하니 새로 쓰게 안 되네.
맞아. 엄마. 새 글 쓰면 지금쯤 빵! 터질 텐데.  


그렇다. 한 때는 그랬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빵! 빵! 다음 메인에 터지는 바람에 순식간에 몇만 회로 올라가는 조회수에 놀라 우리 가족방에 올리면 우와 아아 애들은

아무래도 다음 메인 편집자가 엄마를 콕 찍었는가 봐요~


하면서들 즐거워했다. 그런데 그게 아주 오래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난 오늘 아들 둘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달라도 그렇게 다를까? 작은 애는 나를, 큰 애는 아빠를 꼭 닮은 것 같다. 작은 애는 초긍정적, 큰 애는 돌다리도 두들기며 신중 또 신중.

엄마~ 엄마~ 나 아무래도 전교 일등 할 것 같아.


작은 애는 시험 보고 오면 세상이 다 자기 거다. 반면 큰 애는 못내 아쉬워하면서 틀린 걸 걱정한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작은 애의 말은 변한다.

엄마~ 전교 일등까지는 아닌 것 같아.


그렇게 나를 안심시키며 서서히 내려가는 작은 애의 성적은 짜잔 공개되는 날 전교는커녕 반에서 5등이고, 틀린 거에 골몰하던 큰 애는 무려 전교 1등!!! 우리 셋은 우아아아아아 손잡고 팔짝팔짝 뛰며 형의 전교 일등을 기뻐한다. 언제나 그렇게 작은 애는 일 퍼센트의 가능에 큰소리치고, 큰 애는 일 퍼센트의 불가능에 걱정한다. 


그때는 공문 수학이라는 게 유행으로 거의 모든 애들이 하고 있었다. 엄마들이 공문 수학시키느라 고생이라 할 때 난 척척 해내는 큰 애를 보며 이게 무어 힘들다 할까? 했다. 그러나 작은 애가 커서 형처럼 그 학습지를 하게 되면서 매일 싸워야 했으니 아, 바로 이래서 엄마들이 힘들다 했구나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큰 애는 즐겁게 했을까? 그 애는 본래 계산은 너무 좋아했다. 매우 잘하기도 했다. 주위 어른들이 하도 신기해서 막 어려운 숫자를 계산하게 시킬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작은 애는 영 달랐다. 자기가 싫어하는 건 안 한다. 숙제도 안 한다. 피아노도 안 친다. 큰 애는 엄마가 하라는 대로 꾸준히 해서 체르니 40번까지 치게 되었으니 지금도 여차하면 두드드드 피아노 연주를 하며 나름 즐긴다. 그러나 작은 애는 아니다.  

왜 피아노 학원에 안 가?
응. 다 배웠어. 봐봐 엄마.


하면서 피아노 앞에 앉아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라 오너라'를 동동동 동동동 동동 동동 동동동 두들기더니 이 정도 칠 줄 알면 됐다며 피아노 학원에 가지 않겠단다. 지금은 후회한다. '그때 엄마 시키는 대로 했으면 형처럼 피아노를 즐길 텐데.' 하하 짜식. 엄마 말 잘 듣지 말이야. 매일 회초리 들고 싸우던 나는 너무 속상했다. 그리고 문득 아이와 너무 싸움 모드로 가는 게 두렵기도 했다. 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 이건 아니야!!! 관계 회복!!! 공부는 때가 되면 하겠지!!! 그래!!!!


습관적으로 하던 잔소리를 딱!!! 끊기로 했다. 으. 그런데 해야 할 숙제를 안 하고 오락게임 중인데 어떻게 그대로 두지? 아, 속에서는 정말 열불이 터지는데 참자 참아. 두들겨 패서 책상 앞에 앉히면 그 날치 공부는 하겠지. 그러나 언제까지? 그래. 참자. 참아. 다다다다 잔소리를 쏟아내는 것보다 참는 게 정말 몇 배 몇백 배 몇천 배 더 어렵다. 으으으으 속으로는 화가 나 붉으락푸르락인데 겉으로는 아닌 척이다. 참자. 참아. 참아야 하느니라. 잔소리를 딱 끊었다. 아. 잔소리를 정말 딱! 끊었다.


매일 으르렁거리며 숙제를 하게 만들던 엄마가 갑자기 조용하니 아이도 이상한가 보다. 이래도? 이래도 엄마가 아무 말 안 해? 하는 듯이 숙제는 걷어차고 오락게임에 전념이다. 으... 한 대 쥐어 갈겨? 아니, 참자 참아. 참아야 하느니라. 저렇게 오락게임에만 빠져있는데 가만히 있어? 아, 어떡해!! 안돼. 참아. 으아아 아. 어떻게 할까? 한 대 쥐어 갈기고 숙제하게 해? 아니야 아니야. 그건 아주 쉬운 방법이야. 그래 한 대 쥐어박고 어서 가서 숙제 못해? 지금이 게임할 때야? 으르렁 거린다 치자. 그래. 난 참 잘못했구나. 공부를 해야지 오락게임이라니. 진심으로 반성하며 공부하러 갈까? 노노노 반성은 개뿔!


나를 생각해보자. 누구보다도 지금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을 때 본인이 가장 불안하다. 가령 화장실 청소를 미루고 있다 치자. 지저분한 것 보면서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못하고 있을 때 가만 두면 결국 스스로 일어나 청소를 하게 되지만 막 그런 순간에 남편이 화장실이 이게 뭐야? 청소 안 해? 한다 치자. 내가 고분고분 그래 난 참 잘못했어. 청소를 깔끔히 해야지. 그렇게 반성할까? 노노노! 절대 그거 아니다. 해야지 해야지 미루던 마음에 볼 길이 확 번지며 나에 대한 화까지도 남편에게 쏟아내게 될 것이다. 흥!!! 모가 어때서? 아쉬운 사람이 하지!!! 흥!!! 흥흥흥!!! 괜히 삐딱하게 빠질 게 불 보듯 뻔하다. 저 아이의 숙제도 마찬가지 아닐까? 가장 불안한 사람은 사실 당사자일 것이다. 내버려 두면 어떻게든 자기가 알아서 한다. 그러나 엄마가 나서는 순간 그 애의 불안함은 모두 내게 돌아올 것이다. 그래. 난 잔소리하지 않아. 너의 삶은 네가 책임지는 거야. 아무 말 말자고. 오락게임? 흥. 그래. 맘대로 하셔. 도리어 난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그 애 앞에 간다. 정말 그러고 싶지 않지만 미소까지 띠며 칭찬까지 한다.

와. 너 이렇게 복잡한 게임도 해? 우아 너무 멋지다.
어려워 보이는 데 정말 잘하네. 이거 먹으면서 해.


라고까지 했으니 우아 난 위대했다. 아우... 으아아 아 한 대 쥐어갈 기고 공부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뭐? 간식까지 챙겨주며 잘한다고 칭찬까지? 생글생글 미소까지? 으... 그러나 나의 이 속내를 들키면 안 된다. 진심으로 감탄한 듯 보여야 한다. 난 너의 머리꼭지에 있다. 네 숙제는 네가 해결하거라. 난 주책맞은 엄마. 네가 무얼 해도 그저 사랑만 하는 엄마. 우리 엄만 아무것도 몰라. 내가 알아서 해야 해. 숙제를 안 하고 오락게임만 하는데도 간식 챙겨다 주며 잘한다고 칭찬하는 엄마. 대책 없는 엄마를 했다. 푸하하하


그리고 그 개구쟁이는 결국 스스로 공부하게 되었다. 알아서 자기 앞길을 헤쳐나갔다. 지금 프랑스 파리의 아주 멋진 곳에서 신나게 일하고 있다. 세계 속 젊은이들과 어깨를 겨루며 하나도 꿇리지 않고. 음하하하 잘했다. 잔소리 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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