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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ug 30. 2020

부부싸움


나는 왜 자꾸 부부싸움을 할까? 그 결론은 언제나 후회와 반성이면서도 반복이다. 왜 그럴까? 남자와 여자는 생각 그 자체가 달라서일까?  



<1>


나, 어제 부부 싸움했다. 울산 C.C. 남코스 4번 홀 인코스다. 거기서 쎄컨 샷 하러 이동하며 난 결국 은경에게 말하고야 말았다. 그게 참 이상해. 요즘은 화가 나면 가슴이 부글부글 무언가 저 밑바닥에서 욱하고 치밀어 오른다. 꽥!!! 소리라도 질러야만 할 것 같은. 나, 본래 안 그렇거든. 갱년기 증상이야. 갱년기 옛날에 끝났다. 지금 이 나이에 무슨 갱년기? 그 갱년기 증상이 언제고 남아 있는 거야. 끝난 게 아니라고. 서방님께 양해를 구해. 내가 요즘 그런 상태니 이해해달라고. 약사인 은경인 의사인 남편 덕에 반의사가 되어 내게 점잖게 충고한다. 


치. 양해 같은 소리 하네. 그런데 그렇게 욱해보니 정말 이혼하는 부부, 그럴 수 있겠다 싶더라. 발단은 아주 사소한 거지만 말이야. 그렇지. 요즘 황혼이혼이 왜 많게? 날씨는 쌀쌀했지만 은경이와 나는 매 홀 걸으며 남편 흉을 실컷 본다. 은경인 그녀 남편을. 난 나의 남편을. 이렇게 말해도 될까 싶게 까지 마구 마구. 그렇지. 그렇지. 남자들이라니. 참참참. 해가면서. 그런데 요 거이 웬일. 


빵~ 공이 하늘을 향해 통쾌하게 날아가듯 꽉꽉 막힌 듯 답답하던 나의 가슴이 빵~ 뚫리는 게 아닌가. 일단 한 번 빵~ 뚫리고 나니 남편에게 마구 미안해지고 나의 행동이 너무했다 싶고 이 멋진 날을 와이 스스로 지옥으로 만들었나 싶다.



<2>


11번째 전화벨이 울리고 있다. 그러나 난 받지 않는다. 시작은 좋았다. 춥지만 운동을 하자고 나선 거니까. 그런데 동그란 달님과 호수 모습이 너무 멋져 난 핸드폰을 꺼내 찍기 시작했다. 그런 거 하지 마라. 그가 저 앞으로 달려간다. 잠깐만. 너무 멋지잖아. 그때부터였을까 그가 사라진 것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차가운 밤. 바닥은 그대로 얼어붙을 것만 같다. 미끌미끌 조심조심 앗 그런데 바로 뒤 어둠 속에 시커먼 남자. 무섭다. 남편을 부른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여기~ 반가움에 앞서는 속상함. 어떻게 이 어둠 속에 날 혼자? 장미터널, 낮에도 어둑어둑한 곳. 무섭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길. 부슬부슬 내리는 비. 차가운 겨울바람. 조금만 조금만 더. 그가 있을 거야. 아, 그런데 그가 없다. 발길을 서두른다. 아니. 이게 아니지. 모야 도대체? 내가 그렇게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계속 앞으로 전진했단 말인가? 흥! 그래? 홱!!! 돌아선다. 


마구 반대로 걷는다. 아니나 다를까. 곧 그에게서 전화가 온다. 그리고 보니 아까 난, 왜 전화를 생각 못했을까? 어쨌든 난 지금 그의 전화를 받을 기분이 아니다. 벨이 큰소리로 울린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저 여자는 왜 전화를 안 받을까? 할 것 같다. 그건 또 싫다. 전화벨 그치기를 기다려 묵음으로 해놓는다. 이제 아무리 벨 울려봐라. 그냥 무시하리라. 흥! 드디어 큰길로 나온다. 무작정 걷는다. 왜 이렇게 섭섭하고 화가 날까? 사진 찍기 좋아하는 아내가 멋진 풍경을 보고 카메라에 담는 그 순간을 못 참고 혼자 간다? 흥! 싫다. 아 모든 게 싫다. 커피숍에 들어가리라. 커피와 따끈한 빵을 시키리라. 아주 늦게 집에 가리라. 흥! 눈 한번 싹 흘겨주고 그대로 잠들어 버리리라. 그래. 마땅한 커피숍을 찾자. 혼자서도 씩씩하게 들어갈 수 있는. 


착한 커피. 너무 작아. 너무 집에서 가까워. 커피 나뜨래. 더 작네. 우리 동네 이렇게 커피숍이 많았나? 요거트프레소. 커피숍 같은데 너무 작고 밖에서 다 보여. 아는 사람이 보면, 이 한밤중에 저 여자 혼자 왜 커피숍에? 그럴 거 아냐? 그건 싫어. 쫌 더 큰길로 나가보자. 커피 팩토리. 조금 집에서 멀어졌지만 여전히 작고 그나마 젊은 애들로 가득 차있다. 탈락. 다시 걷고 또 걷는다. 맘즈 터치? 조금 큰데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아무도 없는 곳에 들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걷고 또 걷는다. 발도 아프고 날도 춥고 배도 고프다. 아주 번화가로 가야겠다. 시장을 거쳐 동네서 멀리 떨어진 시내까지 걷고 또 걷는다. 진동으로 해둔 전화기가 계속 부르르 떤다. 흥!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받나 봐라. 흥! 흥! 흥!

엔제리너스. 번화가 큰 빌딩 일층이다. 슬쩍 들여다본다. 적당히 크고 적당히 사람도 많다. 용감하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메리카노와 오리지널 번을 주문한다. 세련되게 참 잘했어. 진동 램프를 들고 비교적 조용한 자리에 앉는다. 19통의 전화가 와있다. 무시하고 글을 쓴다. 드르르르 진동의 전화벨은 계속 몸을 떤다. 그 와중에도 글은 써진다. 다행이다. 계속 부르르르 울려대는 진동 벨. 안 받아. 흥!



<3>


매주 월요일은 색소폰 오케스트라 연습이 있다. 항상 부부가 함께 가는데 오늘 밤은 혼자다. 남편이 친구들과 빠질 수 없는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약속 장소는 연습장 근처. 난 핸드폰만 있으면 잘 노니까 그의 차를 타고 한 시간 일찍 연습장에 도착한다. 그런데 결석자가 많다. 연습이 제대로 안돼 일찍 마친다. 게다가 지휘자도 약속 있다며 연습실 문을 잠그고 나간다. 학원 앞에 악기랑 악보 가방이랑 주렁주렁 놓고 기다린다. 핸드폰 속 글을 보며 답글 쓰고 하니 괜찮다. 그런데 한참을 그렇게 서 있으려니 다리도 아프고, 오며 가며 쳐다보는 사람들 시선이 영 불편하다. 시간이 꽤 된 것 같다. 그래, 전화하자. 


앗. 벨이 아무리 울려도 받지 않는다. 문자! 빨리 와. 나 추워. 지휘자 어디 간다 해서 지금 길거리야. 빨리 와. 어라?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안 보고. 휘익 찬바람이 분다. 깜깜하다. 다리도 아프다. 앉지도 못하고 길거리에 서서. 그냥 택시 타고 가버려? 퇴직하고 우린 거의 모든 걸 함께 한다. 내 차는 그냥 주차장에만 세워놓으니 자꾸 고장이 나 처분하고 거의 함께 움직인다. 오늘 같은 경우는 특별하다. 나의 마음은 그럴 수도 있지에서 나쁜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점점 표정이 험악해진다. 흥! 길거리에 있다는데! 


따르릉 전화 이제 봤네. 지금 간다. 조금 후 도착하는 그. 흥! 찬바람 쌩쌩 휘날리며 차에 올라탄다. 입은 일 미터 쑥 내밀고 최대한 화난 표정. 사실 난 화난 표정 무지 안 이쁜데. 그러나 지금 이쁘고 안 이쁘고를 따질 때가 아니다. 흥 흥흥! 전화를 하지 그랬어. 전화했지. 받지도 않더라. 흥! 싸늘하게 내뱉고 다시 입 일 미터. 찬바람 쌩쌩. 왜 전화 온 걸 몰랐을까? 전화기를 만지며 많이 미안해한다. 그래도 나. 화 풀지 않는다. 못됐다. 앞만 주시하며 집에 도착한다. 닦고 그대로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한 마디 없이. 흥!


그리고 새벽. 나 때문에 망쳐진 어젯밤이 못내 아쉽다. 그냥 막 후회가 밀려온다. 그 잠깐의 순간에 왜 화내는 쪽으로 맘이 기울었을까?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반갑게 맞이했다면 우리의 어젯밤은 얼마나 즐거웠을까. 모든 게 아차 하는 순간이다. 마음먹기 따라 한 순간을 망쳐버릴 수도 멋지게 만들 수도 있다. 그가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어야지. 그가 좋아하는 고구마를 구워놓을까?



끊임없이 이런 것들을 반복하며 어쩌면 남자 여자 그렇게 함께 하는 법을 터득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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