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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ug 23. 2020

경주 여행기 1

여고동창들과 2011년에


난 사실 동네 운전밖에 하지 않았다. 조금만 장거리가 되어도 남편이 한다. 아니면 아예 비행기나 열차를 탄다. 그리고도 운전이 싫어 웬만하면 걸어 다닌다. 그런데 신경주역까지 나 혼자 가야 한다. 남편은 고속도로로 어떻게 진입해 어디로 나가서 어떻게 가라고 다음 지도를 받아놓고 꼼꼼히 가르친다. 그렇게 무수히 다닌 길을 모르냐며 한 숨을 푹푹 쉰다. 푸하하하 나는 길치.  


신경주역은 정말 멀다. 오달 달달 떨며 좁은 길도 고가도로도 거쳐 도착하니 친구들이 이미 와 있다. 서울에서 친구들은 KTX를 타고 신경주역으로 오고 포항의 정라와 울산의 내가 차를 갖고 가 함께 여행하기로 했던 것이다. 문숙이가 길 안내자로 내 옆에 앉아 티맵을 켠다. 제일 먼저 숙영 식당.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맛있는 식당. 우리들의 첫 만남이자 첫 식사. 비빔밥에 온갖 야채와 나물이 맛있다. 



후식으로 황남빵. 즉석에서 구어 나오는 것 호호 불며 먹기. 숙영 식당에서 나와 황남빵까지 걷는다. 한쪽에선 계속 빵이 구워져 나오고 그걸 사가려는 사람들이 번호표 들고 줄로 서있다. 한 상자를 시켜 즉석에서 한 개씩 나누어 먹는다. 앗 뜨거워. 호호 호오호호 불어가며 먹는다. 아우 맛있어. 이 빠삭한 껍질 좀 봐. 이 두툼한 팥 좀 봐. 아응 너무 맛있다.



자. 이제 배불리 먹었으니 오늘 우선 멀리 가보자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감은사지 삼층석탑. 무언가 평안함을 주는 풍경. 너른 평야와 저 멀리 바다. 바로 앞의 강.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대왕의 업적을 기려 왕권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지. 이 절의 바닥은 아주 특이하게 되어있어. 대왕암에서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킨다는 대왕이 이 물줄기를 타고 감은사(대왕님의 공덕에 감사해서 지은 절이라는 뜻)에 와서 부처님 말씀을 듣고 간다 하니 용이 드나들 수 있게 물이 흐르도록 바닥에 일부러 공간을 만들어 둔 거야. 그래서 아주 특별한 절이야. 이곳이 복도 자리. 이곳이 강당. 중당. 끝없이 이어지는 길쌤(아는 게 너무 많아 친구를 우린 그렇게 부른다.)의 설명을 들으며 뾰옹뿅 타임머신 탄 듯 통일신라시대로 간다. 




이견대. 대왕암이 가장 잘 보이며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다. 길쌤이 들려주는 만파식적 설화.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이야기야. 신라 제31대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동해안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었는데, 다음 해 작은 산 하나가 감은사 쪽으로 떠내려오고 있다는 전갈을 받아. 일관은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이 왕에게 성을 지키는 보배를 주려는 것이니 해변에 가서 받으라 하지. 왕이 기뻐하며 이견대(利見臺)에서 바다에 떠 있는 산을 바라보다 사람을 보내 살펴보니, 산의 모양이 거북의 머리와 같은데 그 위에 대나무 한 줄기가 있어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가 되는 거야. 다음날 대나무가 하나 되자 7일 동안이나 천지가 진동하고 비바람이 몰아치지. 바람이 자고 물결이 평온해지기를 기다려 왕이 그 산에 들어가니, 용이 검은 옥대(玉帶)를 가져와 바치겠지. 왕이 산과 대나무가 갈라지기도 하고 합해지기도 하는 이유를 물으니 용은 그것이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릴 상서로운 징조라고 하며 대나무가 합해졌을 때 베어다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평화로울 것이라고 해. 왕이 사람을 시켜 대나무를 베어 오자 산과 용이 갑자기 사라져. 왕이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 천존사에 두었는데, 이것을 불면 적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비가 올 때는 개이며, 바람과 물결도 잠잠해지는 거야. 그래서 이 피리를 만파식적이라 하고 국보로 삼았는데, 효소왕 때 기이한 일이 일어나자 만만파파식적이라고 했어. 이 설화는 결국, 왕권을 강화하고 귀족들의 힘을 억누르려고 했던 신문왕이 이미 고인이 된 아버지 문무왕과 김유신의 권위를 빌리려 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 삼국통일의 과정에서 두 사람이 가장 큰 공을 세웠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 결국 신문왕은 화백회의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왕의 직접 명령을 받는 집사부 시중의 힘을 강화시키고, 관료 전을 지급하고, 귀족의 녹읍을 폐지하는 정책을 펼 수 있었어. 



이견대에서 보니 정말 저 멀리 대왕암이 한눈에 들어온다. 파도와 함께 아주 멋지게. 우린 그곳에 걸린 모든 현판을 읽어간다. 누군가 읽기 시작. 한자에서 약간 머뭇. 미경이가 큰 소리로 그 많은 한자를 줄줄 읽어나간다. 우리 모두 귀 기울여 그 뜻을 음미한다. 바닷가로 나가니 수학여행 온 학생들로 시끌벅적. 바닷바람과 파도를 잠시 즐기고 다시 출발.



대왕암에 갈매기가 가득하다. 날이 추워진다. 땅거미가 몰려온다. 여기 파도 기억나? 우리 여고 때 바로 이 경주로 수학여행 왔었잖아. 그때도 이렇게 파도를 배경으로 사진 찍었는데. 파도 배경은 여기 아니고 부산 해운대였을걸? 여기선 토함산에 갔지. 우리의 수다는 끝이 없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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