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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ug 26. 2020

경주 여행기 2

여고동창들과 2011년에

여고동창들과 2011년에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있는데 우리들의 끝없는 학구열은 놀랍다. 목이 쉬도록 설명해주는 길쌤도 대단하지만
한 마디라도 놓칠 새라 귀 기울이는 우리도 굉장하다. 꽤 춥고 배도 고픈데. 신문왕이 만든 감은사지를 보았으니 그의 무덤도 봐야지. 신문왕의 무덤으로 간다. 




별로 오는 사람 없어. 이런데 사람들 안 와. 길쌤의 말을 듣고 돌아보니 정말 아무도 없다. 오로지 우리뿐이다.
통일신라시대로 돌아가 그때 그 시절을 몸으로 느끼려 길쌤의 말에 목숨 거는 우리 같은 사람들 말고는 대부분 이런 곳에 별로 관심이 없는가 보다.




이렇게 무덤을 돌로 탄탄하게 받쳐놓은 양식이 얼마나 세련된 것인지 길쌤은 중국과 일본과 유럽과 비교하며 그 당시 우리 건축문화의 발달을 자상하게 설명한다. 아하. 그렇구나. 정말 그래. 하면서 비석 속의 흐릿한 글도 읽으려 애쓰고 손으로 직접  돌이며 비석이며를 만져본다. 오랜 세월 때문일까. 겉모양과는 달리 손에 닿는 돌들의 촉감이 너무나 부드러움에 또 놀란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빨갛게 노랗게 곱게 물들어있다. 그 멋진 단풍이 고궁과 어우러진 모습이라니. 이 멋진 가을 경주에!!! 그것도 여고 동창과 함께!!! 우리 나이 쉰 하고도 절반이 넘어가는데!!! 너희들 좀 많이 걸어야 하는데. 괜찮겠어? 네!!! 길쌤!!!! 바야흐로 먼 길을 걸어가게 생겼다. 도대체가 걷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친구들. 오른쪽으로 갈대밭을 끼고 걷고 또 걷는다. 모두들 운동화인데 오로지 정라만 예쁜 세무 구두를 신고 있다. 


내가 운동화 신고 간다는데
남편이 서울서 멋쟁이들 내려오는데 
운동화가 무엇이냐.
이 예쁜 구두 신고가!!!


해서 구두를 신고 왔단다. 거기다 무거운 가방까지. 그걸 아무도 못 들게 하고 낑낑거리며 혼자 들고 다닌다. 난 본래 이런 게 있어야 잘 걸어. 그러면서 절대 누구에게도 그 가방을 넘기지 않는다. 왕배려! 그러면서 길쌤과 처음 여행하는 정라와 난 깨닫는다. 앞으로 길쌤과 함께 하는 여행엔 무조건 배낭! 그리고 편한 운동화! 미술사에서 다져진 친구들은 이미 운동화와 배낭으로 잘 무장되어있다. 서울의 친구들은 한 달에 한번씩 모여 미술사 공부를 하고 있다.



당간지주!!! 한참을 걷다 커다란 돌기둥이 나타나자 태선이가 소리친다. 오우 공부 잘했네. 미술사를 함께 한 친구들이 칭찬한다. 그들에겐 익숙한 단어인가 보다. 뭐? 당간지주? 당간지주가 뭐야? 미술사 안 한 내가 묻는다. 길쌤이 설명한다.


절이 시작하는 곳으로 대개 이곳에 커다란 깃발을 달아두지. 
얼마나 큰 깃발을 꽂았을지 상상이 가지? 이곳을 시작으로 
저 끝까지 이 곳에 있었던 절이 얼마나 컸을지를 가늠할 수 있어.


아하... 아하... 그리고 그 뒤로 사천왕 사지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금지구역으로 철망이 쳐져있고 초록천이 뒤덮여 있다. 곳곳에 커다란 돌이 드러나 있다. 그래. 발굴 현장을 들어가 보자고. 진흙 밭을 걸어 발굴 현장 안으로 쑤욱 들어간다. 이렇게 이곳에서 파내고 이렇게 드러내서 요렇게. 길쌤의 설명. 귀 기울이는 우리들. 오토바이 소리. 아저씨 소리.


나와요 나와!!!


철문 앞에서 본 관람시간 오후 5시까지. 지금 이미 그 시간을 훨씬 넘은 늦은 시간. 네! 네! 지금 나가요! 고분고분 씩씩하게 대답하며 살짝 그래도 발굴 현장 끝까지 살금살금 다 구경하고 나온다. 발굴 현장을 나온 이제부터가 진짜. 



달빛기행. 지금까지는 어두워도 평탄한 차도 옆 인도를 걸어왔지만 이제부턴 험난한 산길을 가야 한다. 선덕여왕릉은 낭산 중턱에 있기 때문이다. 아주 깜깜하다. 앞으로 옆으로 뒤로 소나무가 빽빽하다. 이렇게 깜깜한 데 갈 수 있을까? 걱정을 마. 이게 있거든. 짠. 작지만 강렬한 빛이 나온다. 길쌤이 자신 있게 내놓는 쪼끄만 플래시. 8명이 아주 쪼끄만 길쌤의 등산용 플래시 하나에 의지하며 깜깜한 밤 산길을 헤쳐 나간다. 가만 오늘이 음력 13일. 보름이 다가왔으니 달빛이 있을 거야. 그리고 보니 칠흑 같은 어둠은 아니다. 부드러운 빛이 있다.


아. 저 하늘을 봐.
어마나. 거의 보름달이네.
달님. 달빛.


이게 바로 달빛기행이야.
아, 무언가 따스하게 느껴지는 이 빛.
이게 바로 달빛이구먼.


무시무시하지만 우린 여러 명이니 무섭지 않아. 게다가 우린 여고 동창생. 멋지지 않아? 몽달귀신 달걀귀신 머리 풀어헤친 처녀귀신 다 나오라 해. 우린 무섭지 않아. 으히히히.. 으스스... 그래도 쫌 무섭긴 하지? 발들 조심해. 나무들 스치는 바람소리뿐. 사방이 캄캄한데 조용히 달님이 길을 비춰준다. 달빛에 빛나는 시골길이라니. 드디어 둥글고 커다란 선덕여왕릉이 나타난다. 희끄무레 달빛 아래 선덕여왕릉을 구경한다.


미실이 진짜 있었어?
비담은 그렇게 잘 생겼어?
선덕여왕이 진짜 쌍둥이였어?


헤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본 기억을 더듬어 슬슬 질문한다. 우리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고 길쌤 또박또박 역사에 근거해 답해준다. 도도한 달빛 아래 왕릉이라니. 어디서 이런 구경을 할 수 있겠어. 아쉽게 선덕여왕릉을 뒤로하고 산 중턱에서 내려온다. 한참 산길을 내려가니 마치 분황사처럼 생긴 커다란 네모 탑이 나타난다. 능지탑으로 왕을 화장하던 곳이란다.

능지탑? 무언가 능지처참이 생각나. 나랑 미애랑 깔깔댄다. 거기서 우린 다시 지전 보살이 있다는 절을 향해 더욱 깊은 산길로 돌진. 달빛기행이 이루어진다. 한참을 가니 아주 조그마한 절이 나오고 희미한 불빛. 개가 한 마리 나와 커엉- 짖더니  다시 들어간다. 착한 개. 사람들이 많이 와서 길들여졌나 봐. 딱 한 번밖에 짖지 않아.

한쪽 구석을 플래시로 비추니 지옥을 장악한다는 부처가 나온다. 언제 어디서나 부르기만 하면 후다닥 달려 나온다는 지전 보살. 그의 모습을 달빛 아래 한참 감상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쌤의 부처 이야기. 커엉. 가끔 개소리가 들리며 밤이 아주 깊어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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