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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Sep 05. 2020

경주 여행기 3

여고동창들과 2011년에

그 긴 산행을 끝내고 이젠 밤도 깊었지. 저녁을 어디 맛있는 곳에서 먹을까? 경주 순두부집을 지나칠 순 없지. 번호표 받아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정말 유명한 집이 있지만 우린 너무 지쳤고 게다가 그곳은 너무 사람이 많아 대접받기가 힘들다. 차라리 한가한 순두부집을 가자. 맷돌순두부집이라는 한옥집으로 가 제대로 한 방 차지하고 앉아 맘껏 우리의 피로를 푼다. 능지 버섯탕? 생전 처음 보는 버섯 탕을 먹고 해물파전까지. 밑반찬이 아주 깔끔하고 맛있다. 이대로 숙소로 가도 되겠지만 다시 경주 탐험에 나섰으니....  



첨성대. 밤이 되니 모든 곳에 조명이 밝혀지며 아주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커다란 능에도 나무에도 은은한 불빛. 아, 너무 멋있다. 디지털 학습관에 들어가 첨성대 역사이야기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 첨성대 가운데 뚫린 구멍으로 들어가면 그 안에 흙이 쌓여 있고 그곳에 사다리가 지그재그로 놓여있어 높은 꼭대기까지 안에서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조상님들의 지혜. 도대체 돌의 크기가 제각각인데 어떻게 이렇게 둥글게 쌓을 수 있었을까? 미술을 전공한 미경이가 심각하게 고민한다. 끝도 없이 넓은 잔디밭에 드문드문 둥근 왕릉들. 나무. 그리고 첨성대. 그들을 빛내주는 은은한 조명. 하늘에는 별. 달님까지. 모든 것이 어우러져 경주의 밤이 너무 아름답다. 우린 마냥 걷는다.  



와인을 종이컵에 마실 순 없지. 정라랑 나는 와인 잔을 챙기기로 했다. 마구 쓰는 것 있다고 정라가 6개 챙기고 난 두툼한 크리스털 2개를 챙겼다. (미혜가 들고 있는 잔. 하도 두툼한 크리스털이라 깨질 걱정은 없어 들고 갔는데 집에 와서 보니 그 밑바닥이 얇은 유리로 되어있고 거기에 금이 가있다. 두툼하다고 전혀 크리스털 취급 안 하고 마구 구박한 게 쪼끔 미안하다.)  미경이는 사과를 얇게 저민다. 정라는 브리치즈를 부채꼴 모양으로 잘게 썰고 그 위에 코냑을 붓고 꿀을 붓고 호두 가루를 뿌린다. 어디 방바닥에 차릴 까? 와인 잔이 놓이고 사과 저민 것, 워터크래커, 치즈 등이 놓인다. 한쪽에선 와인 병을 제대로 따느라 법석이다. 자. 병을 살살 돌리면서 이렇게 멋지게 따라야지? 와인 한잔씩. 안주. 워터크래커 위에 치즈. 치즈 위에 사과 그리고 아삭. 쨍그랑! 잔을 부딪치며 소리친다. 호홋. 해!! 당!! 화!!! 해가 갈수록!! 당당하고!! 화려하게!!!



한화콘도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태선인 아침산책. 미혜의 동작에 맞춰 우리 모두는 요가를 한다. 요가는 절대 무리하면 안 돼. 자기에게 맞는 정도만 해야지 아플 때까지 하면 탈이 난다~ 오케이~ 잠자리 바뀌었다고 대변 못 보신 분. 자.. 나를 따라 해 보셔. 미애가 배꼽 주위를 두 손가락으로 꾸욱 꾸욱 누른다. 우리도 따라서 꾸욱 꾸욱 열심히 누른다. 자... 이제 신호가 올 거야. 역시... 조금 있으니 정라가 신호 온다고 화장실로 향하고 조금 있다 미애, 그리고 미경이. 나. 줄줄이 화장실로 향한다. 하하.



오늘은 굴불사지 석조 사면 불상으로 첫 시작을 한다. 낭산 자락을 올라간다. 마침 낙엽비가 쏟아진다. 우아.. 이것 좀 봐. 빨강. 노랑. 낙엽이 우수수. 마치 비가 하늘에서 내려오듯 낙엽이 우수수 하늘 위에서 내려온다. 바위를 돌아가면서 불상들이 있다. 자 봐봐. 아미타불 옆의 보살들. 너무나 요염하지 않아? 에스라인이 보이는 듯 하지? 우리는 각기 다르게 새겨진 보살들을 보고 또 본다. 그러나 아주 조심조심. 왜냐하면 이곳이 기도 효험이 꽤 큰 곳이라고 그날도 간절히 기도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조용히 아주 조용히 하며 그들의 기도를 방해 않으려 애쓴다. 곳곳에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서울대 합격, 공무원 시험 합격 등등. 기도가 이루어진 사람들이다. 아미타불은 언제나 동쪽을 보고 서 있다. 불상 있는 곳이 서쪽이기에 부처님이 보는 곳은 언제나 동쪽이다.



문숙인 사면에 새겨진 불상들의 특징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자상하게 설명해준다. 그 사면불상위로 대나무가 양옆으로 쭉쭉 솟은 길이 있다. 백률사 가는 길이다. 그 길을 올라가며 우린 다시 우수수 낙엽 비를 맞는다. 어마나 어마나 너무 멋있어. 이 단풍. 이 가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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