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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Sep 02. 2020

1972년도 일기 18

중학교 3학년 때

2월 24일 목요일 날씨 맑음


학교에서 만나 일이 끝난 후 선생님 댁엘 갔다. 오늘따라 내 양말에 빵꾸가 나 고생을 했다. 심적으로. 선생님 댁에 가면 방에는 들어가야 하겠고  해서 택시 안에서 바늘을 들고 양말을 꿰맸다. 경화의 원조가 많았다. 선생님 댁을 찾아갔을 때 상상 외로 너무도 실망 등이 컸다. 차도 안 끓여 내옴은 물론 어디론지 우리를 피해 가 있는 집안 식구들에 대해 실망을 했지만 지난날의 나를 대조하여 반성해봤다. 선생님께서 내일모레 우리를 초대하신다고 하셨다. 기대가 된다. 멋진 선생님이시니까.


2월 25일 금요일 날씨 맑음


아빠가 부산으로 출장을 떠나셨다. 거기에 덜렁덜렁 쫓아 가느라 과외엔 늦긴 늦었지만 흐뭇하다. 27일에야 오실 것이다. 엄마와 시장을 돌아다녔다. 교복. 가방 등등 많이 샀다. 돈이 모잘라 석주 엄마에게 꾸기까지 했다. 신성 제복점에서 뺏지를 안 판다 하여 입씨름들을 하실 때 한 푼이라도 깎기 위하여 고생하시는 엄마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올려고도 하였다.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라도... 심적의 부담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서 공부를 잘해야겠다.


2월 26일 토요일 날씨 맑음


나의 정신상태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너무도 쓰러지기 쉽고 너무도 미약한 나의 마음 정신이다. 매일, 매일 결심을 해 놓으면 무엇을 한단 말인가. 실천은 그의 1/100 아니 1/10000도 안 되는 걸... 이렇게 계속 나간다면 경화도 계속 날 좋아할까? 공부도 못하는 계집을 누가 좋아할려고? 누구에게나 미움받고, 실망시키고. 정말 절망뿐이다. 이번 한 해는 아주 내 몸의 완전 희생이라 생각하고 건강 등은 돌보지 말며 왜 노력을 못하는가? 금년 한 해는 내 몸의 희생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정말 노력하겠다.


2월 27일 일요일 날씨 맑음


그는 온다.

              - 타고 오르 -


어제도 오늘도 그는 온다.

그리고 가 버린다.


친구여 이리 오라.

그리하여 그에게 내 머리에

꽂은 이 꽃을 갖다 드리라.


만일 누가 보내더냐고 묻거들랑

제발이지 내 이름을

일러 주지 말아 다오.


그는 그저 왔다

그대로 가 버리는 것이리니.


그는 나무 아래

먼지 위에 앉는다.


거기에 꽃과 나뭇잎 새로

멍석을 편다. 친구여.


그의 눈은 슬퍼 보인다.

그것을 보니 내 마음도 슬퍼진다.


그는 가슴에 품고 있는

일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왔다

가 버리는 것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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