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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r 05. 2019

발목 잘린 타이즈

일명 레깅스라는데 밑에 양말을 신어 말아? 

난 항상 치마 속에 타이즈를 입는다. 발까지 달린 것. 그런데 예쁜 후배가 내게 타이즈를 선물했는데 안에 털도 있어 따뜻한데 그런데 발목이 없다. 발목이 똑 잘려있다. 하하 요걸 레깅스라 한단다. 따뜻하고 좋은데 그런데 발목이 없으니 영 골치 아프다. 양말을 어떻게 신느냐 말이다. 레깅스 위로 올라오게 신을 것인가. 아니면 아래로 내려오게 짧은 양말을 신을 것인가. 한 번은 레깅스 속으로 긴 양말을 신어보았다. 그랬더니 레깅스 겉으로 속에 신은 양말이 불룩 튀어나오는 게 영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레깅스 겉으로 양말을 신어보았다. 하. 그건 더 이상하다. 어떻게들 신나? 좀 살펴보니 주로 젊은 아가씨들이 신었는데 그 밑에는 발목 근처도 오지 않는 짧은 양말을 신고 있네. 그래서 이번엔 나도 그렇게 폼 잡고 요 발목 잘린 타이즈 밑에 평소 잘 안 신는 아주 짧은 발목양말을 장롱에서 뒤져 찾아 신고 열차를 탄다. 


오늘 꽤 중요한 자리에 간다. 그래서 원피스를 차려입고 그러나 아직 추우므로 예쁜 후배가 준 발목 없는 따뜻한 타이즈 일명 레깅스를 입고 그 아래 장롱 속에서 겨우 찾은 두툼한 발목양말 그리고 약간 편한 운동화 같은 구두. 음 좋았어. 먼 길을 가도 끄떡없을 상태. 얼마든 걸을 수 있다!!! 그런데 발목도 채 안 오는 짧은 양말을 신었더니 양말과 레깅스 사이가 벌어져 나의 속살이 나오고 그리고 바람이 솔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잔머리를 굴려 레깅스를 발아래로 쭉 내려 뒤꿈치부터 발바닥 중간 정도까지 가도록 하니 오홋 그냥 타이즈 신은 것 같고 깔끔하다. 아하~ 참 잘했쓰~  



그렇게 오래 열차를 타고 내려 좀 걸어 회의석상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음...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곳이다. 신발을 벗으려는 순간 열차 안에서 발아래까지 쭉 내린 레깅스가 걸려 그 와중에 재빨리 레깅스를 양말 위로 올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아뿔싸 급히 들어가 앉아서 보니 에구 발아래로 쭉 당겨서 신었던 바로 그 자리가 불룩 아주 불룩하게 늘어나 있어 에고에고 그렇게 보기 싫을 수가 없다. 커다란 거실 같은 곳에 쏘파가 대형으로 한 세트씩 여러 세트 있고 그곳에 발을 벗고들 앉아있으니 약간 늦게 도착한 내가 들어가면서도 시선을 끌었을 텐데 아... 모든 사람이 나의 볼록 튀어나온 레깅스 발목 뒷부분만 보는 것 같다. 에고에고. 나의 신경은 자꾸 내 발목에만 갔으니 이 볼록 늘어난 부분을 감추기 위해 다시 발아래로 레깅스를 끌어내려야 할까? 그럴까? 그러면 더욱 사람들 시선을 끌 텐데? 아 정말 이렇게 쭉 늘어난 레깅스를 보는 거 정말 어렵네. 에구 어쩜 이렇게 흉할까. 그 대형 쏘파들 앞으로 단상이 있고 회의는 계속 진행 중인데 나는 나의 발목에 온통 신경이 쓰여 회의 내용엔 잘 집중도 못한다. 바보. 그래도 정말 이 불룩 늘어나 있는 부분 너무 흉하다. 그래서 주섬주섬 다시 레깅스를 양말 아래로 끌어내린다. 아... 그런데 그렇게 해놓고 보니 반은 양말이고 거기 레깅스가 발아래까지 내려와 있는 것도 정말 이상하다. 에구에구에구 나를 고생시키는 발목 잘린 타이즈. 그냥 발까지 있는 타이즈 신고 오지. 아 왜 이 발목 잘린 걸 신고 왔을꼬? 에구구구




정말 사람들은 나의 발목 부분만을 보았을까? 회의가 진행 중인데 나의 발목에 신경이나 썼을까? 후회되는 건 어쨌든 내가 신고 온 것이라면 일단 자신감을 갖고 나의 패션입네 하고 더 이상 거기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때의 중요한 회의에 집중했다면 그래서 더욱 사람들과 회의 관련으로 적극 토론을 했다면 좋았을 걸 하는 점이다. 난 내 발목에 신경 쓰느라 회의는 건성건성, 무언가 집중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발목은 나를 못살게 굴었다. 어디서나 그렇다. 중요한 것이 무언지를 깨닫고 이런 마이너 한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좋을 텐데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제대로만 굴러가진 않는다. 가끔은 이렇게 원치 않는 방향으로 중요한 순간이 흘러가 버리기도 한다. 

 


회의와 식사와 모든 행사가 끝났다. 나의 온 신경을 잡아먹은 나의 발목 없는 타이즈. 일명 레깅스. 그렇게 중요한 자리에서 중요한 걸 못하게 만든 나의 발목 없는 못된 타이즈. 그걸 보고 있자니 바보 같던 내 모습에 에고고고 한숨만 나온다. 이것저것 이야기도 싫어 일찌감치 회의가 끝나는 대로 역으로 오니 나의 열차 시각보다 많이 이르다.  대합실에 자리 잡고 앉아 있으려니 열차가 도착할 때마다 한 무더기씩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무심코 보고 있다가 그렇지! 오호. 아주 절호의 찬스! 느긋하게 대합실 의자에 앉아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발을 살피기 시작한다. 레깅스 신은 발들을 찾아랏! 오예!!! 


헉. 그런데 모냐. 어쩜. 레깅스 아래는 맨발이 제일 많네. 레깅스를 발견한 순간 위로 보면 멋쟁이 젊은 아가씨들은 대개 맨발로 멋진 구두를 신고 있다. 하이고 안 추운가? 맨발로? 발이 무척 아플 텐데? 맨발로 구두? 에고고고. 그리고 레깅스 아래 운동화 같은 것에도 맨발 또는 아주아주 잘 보이지도 않는 발목 아래 양말이다. 하이고~ 레깅스 밑에는 양말을 안 신는 걸까? 아님 아주  짧은 발목 티? 색깔은? 같은 색으로? 아무 색이나? 아무리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어도 정답을 모르겠다. 에잇 다음엔 절대 저거 신지 말아야지. 해보지만 그러나 그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 신발까지 하나로 쭉 이어지는 그런 타이즈도 별로 없다. 거의가 레깅스인데 어김없이 하얀 발목이 나와있더라는 것. 내가 그토록 패션에 무감각이었던가? 하이고 나도 참참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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