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뜰 Mar 07. 2019

예의상 노! 를 못했을 때

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여

차라리 가지 말걸. 지금 도망치듯 겨우 한 시간의 강의가 끝나기를 기다려 그곳을 빠져나온 나는 후회가 물밀듯 밀려온다. 아니면 끝자리에 앉던가. 가운데 한가운데 앉아 나오지도 못하고 일단 한 시간은 채워야만 했으니까. 그도 나의 눈길을 느끼고 강의 내내 불편했으리라. 아, 차라리 가지 말걸.


작년엔가 이 즈음에 그가 말했었다.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시간 나면 와보라고. 그는 남편회사의 동료. 그런데 난 그가 강의하는 쪽에 별로 관심이 없으므로 "네." 하고는 그냥 가지 않았다. 여기는 도서관이고 그 어떤 구속에서 벗어나 어떤 강의를 듣거나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선택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한다는 것에 대한 기쁨을 신나게 누릴 때니까  아무리 남편 회사 동료라 할 지라도 나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싹 무시하고 나니 그 후 도서관에서 부닥칠 때마다 그렇게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는 거다. 미안하고 정말 괜히 죄지은 것 같고. 아, 그 이상한 감정이라니. 

 



그렇게 세월은 흘러 어느새 일 년 전 다시 그때쯤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그를 도서관에서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하는 그. 오늘 새롭게 강의를 개강한다고 시간이 있으면 와보라고 한다. 일단 그때처럼 "네." 했다. 그래도 난 또 안 갈 판이었다. 나는 지금 무슨 강의를 듣는다거나 그런 것보다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책 보고 내가 좋아하는 브런치 작가 글 보고 댓글 달면서 교감을 나누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중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자꾸 드는 생각. '너무 야박하지 않아? 넌 교만한 거야. 그러지 말아야지. 네가 무어라고. 그러지 말아라. 너의 하루 긴 시간 중에 그 몇 시간을 할애 못한다는 말이냐.  게다가 바로 이 도서관에서 하고 일부러 와서 말해주는데 말이다.' 그래서! 난 이런 거 정말 좋아하지 않지만, 피츠 제럴드의 소설도 신나게 읽고 있는 중이었지만 모두 덮고 갔다. 그가 새로 시작한다는 강의실에.



사람이 많다. 명단을 적는다. 이미 자리가 꽈 차있기도 했고 기왕 온 거 제대로 들어야지 해서 한가운데 맨 앞 빈자리에 앉았다. 나도 참. 그렇게 별로 내키지 않는 분야라면 맨 끝자리에 앉았다가 살며시 빠져나왔어야 옳다. 그렇다면 이렇게 마음의 갈등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정말 내가 원치 않는 강의였다. 이것은 그의 강의가 별로였다라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나의 관심이 전혀 가지 않는 분야라는 것이다. 한 시간을 어떻게 참았는지 모른다. 난 내가 별로 관심 없는 분야의 것에 한 시간씩이나 꼬박 앉아서 들을 여유는 없다. 아. 




다행히 2시간 강의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다. 10분 쉰다며 일단 강의를 끝낸다. 인사도 않고 나는 무조건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렇게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예의상 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내가 그냥 '노!' 했다면 '죄송해요 저는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어요!'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냥 두리뭉수리 네~ 해놓고는 마음이 불편하고 무언가 미안해 강의실까지 가고 이렇게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다니. 




어렵게 얻은 도서관에서의 나만의 멋진 시간을 한 시간이나 강탈당한 것이 아 난 너무 싫다. 중간에 빠져나온 나를 보고 그는 또 마음이 얼마나 불편할까. 차라리 가지 못한 것만 못하게 되었다. 난 왜 이렇게 항상 판단의 실수를 하는 것일까. 얼마나 많이 살아야 인생을 멋지게 실수 없이 살 수 있을까. 내참. 

매거진의 이전글 발목 잘린 타이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