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뜰 Sep 03. 2020

태풍 마이삭

아니, 여보. 이렇게 밤 새 있어야 해?



아, 미치겠다. 팔이 떨어져 나갈 듯하다. 폼도 엉거주춤이다. 창문 바로 앞에 커다란 소철 화분이 있어 나의 자세는 영 불안정이다. 세 쪽으로 나뉜 거실 베란다 창문은 가운데 유리가 3.5미터 정도 그 양 옆으로 1.3미터 정도다. 유리와 유리 사이가 마이삭 태풍에 들썩들썩 당장이라도 팡! 터져버릴 것만 같다. 그걸 막기 위해 커다란 유리와 작은 유리가 겹쳐지는 부분을 양 쪽에 서서 딱 붙여주고 있다. 그래도 베란다 유리창문을 붙들고 서서 보호하라는 말은 못 들은 것 같은데.


공학도 말을 무시하나


여보 이건 아닌 것 같아 하면 당장 들려오는 공학도 어쩌고 소리. 그래그래 알았어. 문과는 이럴 때 쪼그라들 밖에. 한 밤중 태풍 마이삭에서 우리의 베란다 유리창을 지키고자 양쪽에서 유리창 물리는 부분을 꽉 힘주어 붙들고 서 있는 부부. 하하. 그 폼이 너무 웃긴다. 아, 그런데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태풍 마이삭의 위력은 대단하다. 위잉윙 흔들흔들 무시무시하다. 덜커덩덜커덩 빵빵해진 유리창이 그대로 터져버릴 듯한 격렬함. 


여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


태풍 끝날 때까지. 아이 그건 아니다. 더욱 바람이 거세지는 듯싶더니 파팍 거실의 등이 나간다. TV 재난방송에서 정전사태가 속출한다는 뉴스가 나오던 순간이다. 새벽 2시 반. 사방이 깜깜하다. 바람만 위잉윙 유리창은 덜컹덜컹. 창문을 당장이라도 박살 낼 것만 같은 거센 바람. 밖도 안도 캄캄절벽이다.


지금 혼자 있다면 참 무섭겠네


그래 둘이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여보두? 나야 워낙 어둠을 무서워하니까 여보 있는 게 안심이지만 남자는 모 안무서울 테니 내가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 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남자도 무섭지. 그래? 몇천 세대 커다란 아파트 단지 전체가 칠흑 같은 어둠이다. 덜컹덜컹 유리창을 붙들고 서서 무시무시한 태풍의 위협에 아무것 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며 나누는 대화가 정겹다.


문을 다 잠그자


밤새 유리문을 지킬 수는 없다고 판단 철수 명령을 내린다. 대신 베란다 안 쪽에 있는 문들을 모두 꽁꽁 잠그라 한다. 와이? 혹시 태풍에 베란다 유리문이 레일을 벗어나 쓰러져도 안에서 안전하기 위해서란다. 그러나 무슨 위험 사태가 벌어진다면 도리어 도움 요청하기 힘들어지는 것 아닐까? 안에서 문을 꽁꽁 잠가놓고 있으면 구조를 받으러 나갈 수가 없잖아. 고개를 갸우뚱하는 내게 공학도를 뭘로 보나 다시 그 말이 떨어진다. 내참. 공학도 공학도. 네네 공학도님, 문학도는 물러가겠나이다. 그렇게 집안의 모든 문을 꽁꽁 쳐 닫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위잉윙 윙윙 19층 우리 집에서 느끼는 태풍의 위협은 대단하다. 정말 저 큰 유리창이 빵! 터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이고. 무서워.


<사진:꽃뜰>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니 해님이 반짝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있다. 우와. 어젯밤의 그 무시무시한 태풍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러나 전기는 아직이다. 정전 세대가 너무 많아 복구가 지연되고 있단다. 여섯 시간 이상 더 있어야 가능하단다. 아, 전기가 안 들어오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나가자!


집 앞의 산으로 나가보니 사방이 막혀있다. 출입금지. 간밤의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을 치우는 중이란다. 한쪽으로 살짝 개방된 곳으로 가보니 사방에 부러진 나무들이 어젯밤의 무시무시함을 보여준다. 뿌리째 뽑혀도 있고 반이 뚝 잘라져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도 있다. 예쁜 산책로가 그야말로 온통 아수라장이다. 태풍 마이삭이 남긴 잔해를 보며 어젯밤의 두려움이 살아난다. 대자연의 위협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무력감. 둘이 마음을 합쳐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꽃뜰>


매거진의 이전글 쎄븐 투 일레븐 다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