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뜰 Sep 01. 2020

쎄븐 투 일레븐 다쉬!!!

까맣게 잊고 있었다. 본래 예쁜 사람이 더 얼굴에 신경 쓰고 날씬한 사람이 더 몸매에 신경 쓰듯이 점점 불어나는 몸매에 쎄븐 투 일레븐 따위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운동을 할 수가 있나 밖에 나가서 수다를 떨 수가 있나 오로지 집안에 콕 박혀서 남편과 함께 스물네 시간! 거기 쎄븐 투 일레븐이 끼어들 새는 없다. 그렇게 나의 쎄븐 투 일레븐은 까맣게 잊혔다. 쎄븐 투 일레븐. 그래도 구호를 쉽게 정해 오로지 기억에 남는 건 쎄븐 투 일레븐!!! 그거는 떠오른다. 너무너무 신나게 남편과 함께 밥을 먹고 나서 헥헥 너무너무 배가 불러 숨까지 꼴깍 차오를 때였다. 그럼 나의 쎄븐 투 일레븐은 어땠을까? 그걸 한 번 찾아놓고.


https://brunch.co.kr/@heayoungchoi/1418


그때야 어쨌건 그래. 난 다시 시작하리라. 나의 이 쎄븐 투 일레븐이 까맣게 잊힘은 바로바로 그 사골국 때문이리라. 아. 너무 맛있는 사골 국. 이번엔 제대로 끓였기 때문이다. 시골에 밭이 있는 우리는 밭농사하러 너무 안가 슬쩍 겁이 났다. 호박은 어찌 되었을 꼬? 사과는? 감은? 대추는? 그러나 새벽같이 일어나지 않아 이미 땡볕이고 그래도 문득 걱정은 되고 슬쩍 구경만 하고 올까? 하면서 그 시골에 가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잡초들의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그 밭을 하이쿠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나마 검은 부직포를 깔아놓은 곳만 빼놓고는 과일나무들 보다도 더 무시무시하게 자란 잡초들이다. 진드기에 물리면 어떡하나. 뱀이 나오면 어떡하나 조바심 떨며 그 무섭게 자란 잡초들 사이를 겨우 한 바퀴 돈다. 사과는 맛있게 열렸지만 새가 콕 찍어먹은 자국들과 그 자국으로 몰려든 까만 개미들로 접근조차 힘들다. 한두 개 멀쩡한 걸 똑 따서 먹어본다. 아. 너무 맛있다. 어떻게 해야 이 사과들을 새와 벌레로부터 지켜낼까. 에고 모르겠다.

 


그렇게 밭에서 물러난 우리는 온 김에 그 시골에 있는 농협에 들르게 된 것이다. 한우로 유명한 언양이니까. 그래 여기서 고기를 사자. 날도 덥고 밖에도 못 나가는데 오랜만에 사골국을 끓여먹을까? 너무 더운데? 코스트코에 가면 깔끔하게 정리해 둔 거 있는데 여기서 사? 그래 언양이 고기로는 유명하잖아. 그래서 뼈들 있는 곳을 보니 오늘 고기를 잡았는가? 앞다리 뒷다리 가득이다. 둥근 관절 부분에서부터 미끈하게 쭉 뻗은 뼈. 그리고 잘라져 스티로폼에 담겨있는 뼈엔 잡뼈라고 쓰여 있다. 안에서 고기를 정리하는 아저씨에게 묻는다. 저~ 사골 뼈를 사려는데요. 키가 크고 아주 잘생긴 우리 나이 또래의 그 아저씨는 그런데 무언가 몸이 어설프다. 움직임이 살짝 기우뚱이다. 그렇게 천천히 뼈가 있는 아이스 통 앞에 오더니 어느 게 좋을까요? 최고 좋은 걸로 골라주세요 하는 나의 말에 그 많은 뼈들을 뒤적뒤적하더니 정말 가장 잘 생긴 놈을 골라준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잡뼈는 무언가요? 이 통으로 된 것과 잡뼈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그 아저씨 힐끗 보더니 하나 덤으로 드리리다. 한다. 앗 분명히 15,000원인가 쓰여있던데? 아니 사골이 35,000원인데 15,000원짜리를 덤으로 준다? 아니 그걸 덤으로 주어도 되어요? 비싸던데요. 깜짝 놀라 되묻는 내게 내 맘이지. 하시는 게 아닌가. 앗. 앗앗. 그렇다면 이 아저씨는 이 농협 안 정육점의 사장님? 표정은 무뚝뚝한 채로 잘 생긴 앞다리인지 뒷다리인지 모를 도톰한 뼈를 찌이이잉 예쁘게 기계로 잘라 커다란 비닐봉지에 넣어주시며 그 잡뼈도 턱 넣어주신다. 하이고.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헉. 이게 웬 횡재? 웬일일까? 서울 말씨가 예뻐서일 거야. 하하 남편도 싱글벙글하다. 이상하게 남자들은 우리 여보야를 좋아하더라. 앗. 다음에도 저 잡뼈를 서비스로 주실까? 저분이 계시다면. 다음에 저분 안 계시면 어떡하지? 그럼 다시 그분 계실 때 오지. 그때 정말 잘 먹었다고 감사하면서 말이야. 하하 우린 뼈를 한 아름 받아 가며 기쁘다. 아는! 밥 묵자! 자자! 딱 이 세 마디라는 경상도 사나이들. 여자들도 억센 사투리. 거기서 살랑살랑 서울 말씨는 빛을 발한다. 나의 서울말이 그렇다. 어딜 가건 아! 그 서울말 쓰는 새댁? 학교에서도 엄마들이 선생님께 말하기 곤란한 게 있을 땐 나를 보낸다. 아무리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도 살랑살랑 나의 서울말엔 푸하하하 대부분 오케이! 하기 때문이다. 꼭 싸우는 듯한 억센 말들 사이에서 살랑살랑 서울말은 빛난다. 오늘도 나의 서울말이 빛을 발한 걸까. 어쨌든.


그렇게 잘생긴 국물 잘 우러날 듯한 뼈를 가지고 집에 온 우리는 실로 오랜만에 커다란 스테인리스 두툼한 들통을 꺼냈으니 애들 다 떠나고 둘만 있는 우리가 그 커다란 들통에 해 먹을 것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뼈를 몽땅 스텐 양푼에 담고 물을 담아 푹 잠기게 한 채 반나절 정도 두어 피가 충분히 빠지게 한 후 사골 국 끓이기 작업에 들어간다. 커다란 들통에 물을 7부쯤 붓고 팔팔 끓인다. 그 옆에서 그냥 보통 쓰는 냄비 중 가장 큰 냄비에도 물을 붓고 팔팔 끓인다. 그 냄비의 물이 팔팔 끓을 때 피를 뺀 사골 뼈들을 다시 한 개씩 집게로 잡아 흐르는 물에 몇 번 더 헹구고 그 팔팔 끓는 물속에 담근다. 그렇게 여러 개 넣어 어느 정도 데쳐지는 듯 나쁜 물이 빠진 듯할 때 다시 그걸 건져 너무 정확히 기름으로 보이는 것들은 가위로 잘라 내고 팔팔 물이 끓고 있는 커다란 들통 속으로 퐁당 넣는 것이다. 아, 땀은 펄펄 나고 한 개씩 그렇게 하려니 얼마나 손가락이 아픈지. 에구. 이 무더위에 너무 큰 일을 벌였다. 정말 덥다. 손가락에 힘도 빠진다. 그래도 결국 그 많은 뼈들을 다 집어넣었다. 부엌문을 꼭 꼭 닫고 이제 본격적으로 끓인다. 뽀골뽀골. 


한 두 시간쯤 고았으려나. 여보 이라와~ 둘이 낑낑 그 들통을 들어 국물만 냄비에 따라낸다. 밑을 받쳐. 머리 치우고. 커다란 들통 속 팔팔 끓는 사골 국을 가지고 둘이 어쩔 줄 모른다. 내 머리통이 그의 시야를 가리고 비켜 비켜. 아니 그 밑에 더 뒤를 잡아. 그렇게 무겁고 뜨거운 들통을 난 밑에서 들어주며 겨우 국물만 덜어내는 데 성공. 다시 뼈들만 남은 커다란 들통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이번엔 뒷베란다로 나간다. 아무리 부엌문을 꽁꽁 닫아도 냄새가 진동을 하니까. 아깐 너무 뜨겁고 무거워서 못 옮겼지만 이젠 뼈만 남았으니까 얼마든지 옮길 수 있다. 뒷베란다 가스레인지 위에 놓고 창문을 활짝 열고 물을 가득 부어 다시 팔팔 끓인다. 


한 두 시간쯤 지나 2차가 완성되자 우리는 다시 낑낑 국물 빼내는 작업을 한다. 아까 냄비에 받아놓은 국물을 좀 식었으므로 커다란 김치통으로 옮기고 다시 냄비에 그 뜨거운 국물을 받아 놓는다. 이제 3차. 다시 물을 붓고 두시간 정도 달인다. 그렇게 3차까지만 한다. 뼛속에서 인이 나와 몸에 안 좋으니 3차까지만 하라는 소리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그래서 3차까지만 우려내고 과감히 그 뼈를 쓰레기통에 다 버렸다. 남편은 저 뼈가 반질반질 해질 때까지 더 달여도 될 텐데 어디서 또 그런 소리를 들었는고? 못내 아쉬워한다.   


뼈를 없애고 1차 2차 3차까지 우려낸 국물을 모두 그 커다란 들통에 담는다. 그리고 팔팔 끓인다. 세 개를 합체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팔팔 끓자 이제 작업 끝. 차갑게 식기를 기다려 커다란 김치통에 넣어 냉장고에 넣는다. 다음 날 아침 위에 하얗게 굳어있는 기름을 걷어내니 짜잔~ 와우 여보. 웬만한 곰탕집 국물 저리 가라네. 우뭇가사리처럼 찐득찐득한 그것을 냄비에 덜어 팔팔 끓이니 뽀얀 국물로 변한다. 와우. 팔팔 끓을 때 마늘과 땡고추를 넣고 일부러 새로 사 온 싱싱한 대파를 송송 썰어 곰탕 집에서 먹듯 소금 후추와 함께 듬뿍 넣어 먹으니 아 너무 맛있다. 거기 잘 익은 총각김치를 척 척 담가 밥을 말아먹으니 어느새 한 그릇 뚝딱. 너무 맛있다. 그 덕에 나는 쎄븐 투 일레븐은커녕 배가 불러 헥헥거릴 정도로 꾸역꾸역 많은 밥을 먹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늦은 밤에. 


직장 다닐 때 새벽에 일어나는 게 제일 싫었던 남편은 늦잠 자기를 즐긴다. 난 그대로 둔다. 그러면 그는 아홉 시에도 일어나고 열 시에도 일어난다. 그걸 제일 행복해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아침은 늦어질 수밖에 없고 모두 뒤로 밀리니 저녁은 밤 여덟 시나 아홉 시쯤에야 먹는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먹던 나는 이제야 정신을 차린다. 건들지 마! 나 쎄븐 투 일레븐 다시 할 거야. 7시 이후엔 절대 안 먹어. 아무리 맛있는 사골국이 유혹해도 먹지 않으리. 파이팅.  


<사진:꽃뜰>


매거진의 이전글 아... 엄마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