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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Sep 06. 2020

24시간 집콕의 피해

코로나! 어서 물러가라

어쩌면 코로나는 핑계였을 수도 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지만 우리는 걸을 수 있었다. 걸어야 했다. 우산 쓰고 얼마든지 걸을 수 있는 산책로였다. 그러나 그와 나는 제쳤다. 아무리 집 앞 산책로라도 코로나도 위험하고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등등의 이유다. 몇 시간째 쏘파에 척 들러붙어있다. 난 길게 누워서. 그는 그의 특별 리클라이너 의자에 눕는 듯 앉아서. 비밀의 숲에서 거짓말의 거짓말에서 한번 다녀왔습니다 돈 안 내고 보는 재방송까지. 미쳤다 미쳤어. 그도 나도 등짝이 뽄드로 붙인 듯 철썩 쏘파에 붙어버렸다. 왜 그럴까.


라면 때문이었을 게다. 그러니까 모든 건 순식간이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무언가 건전한 삶의 태도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가 라면 먹을 래? 했다. 밤 9시가 되어갈 즈음이었다. 물론 나는 며칠 째 쎄븐 투 일레븐을 실행 중이므로 당연히 노노노 했어야 했다. 그런데 비도 부슬부슬 분위기 있게 내리는 이 밤, 게다가 난 막 무슨 글을 읽었느냐. 신문에서 중년의 뱃살은 다르게 빼야 한다. 젊을 때처럼 무조건 굶는다든가 그런 방식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배가 고프지 않게 해주어야 하고 제시간에 항상 먹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막 배가 고파진다. 배고프게 하면 안 된다고? 아, 배고파. 그러나 세븐 투 일레븐 간헐적 단식 다이어트 16시간 동안 안 먹기를 하니 대변도 굵직하니 아주 좋고 뱃속도 편하고 똥배도 들어가는 거 같고 그 좋은 상태를 어긴다는 것이 싫기도 하다. 아, 어떻게 할까?  


빨리 결정해. 라면 물을 두 개 들여놓을까 한 개 들여놓을까로 그가 묻는다. 아 어떡하지? 먹지 말아야 할 것 같은데 먹고 싶어. 그럼 먹어. 두 개 한다. 그래 일단 하고 아주 조금만 먹지 모. 그렇게 시작되었다. 신라면 아주 매운 라면에 땡고추도 넣고 파도 넣고 그리고 누룽지도 넣고. 너무 매운 건 안 좋아. 매우 합리적인 그는 수프를 반만 넣지만 나는 노노노 라면은 제맛 그대로 내야지. 수프를 몽땅 넣고 땡고추에 파에 넣을 건 다 넣어야지. 나는 갓 익힌 고슬고슬 쫄깃 면발, 그는  푹 익힌 쫄깃 면발.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둘의 라면 세계. 각자 한 냄비씩. 하하. 자기 취향대로.


쎄븐 투 일레븐으로 허기진 나에게 뽀골뽀골 아흥 너무도 고소한 라면 끓는 냄새. 아, 맛있겠다. 그래. 모든 원칙은 어기라고 있는 거구.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는 거구. 한 번쯤 일탈을 부리는 맛도 있어야 하는 거고. 모든 것 잊고 맛있게도 냠냠. 한 냄비씩 각자 취향에 맞게 끓인 라면과 열무김치 총감 김치 오이지무침의 밥상을 낑낑 둘이 맞들고 거대한 TV 앞으로 온다. 우리의 루틴 밥 먹으면서는 재밌는 드라마 보기. 딱 비밀의 숲 할 시간에 맞춰 우리는 자리에 앉는다. 그때부터이리라. 우리의 건전함이 사라진 것이. 비밀의 숲과 거짓말의 거짓말 그 인터벌 시간에 먹은 것 후다닥 치우고 커피를 끓여온 것 빼고는 새벽 두 시가 되도록 쏘파에 척 들러붙어 TV에 눈 고정이었으니까. 아흑.


문제는 그 이후다. 한 번 무너진 나의 건전한 생활은 도미노처럼 와르르르 무너지기 일쑤다. 그걸 끊어내야 한다. 어젯밤 그랬다 치자. 아 밀려드는 후회. 쎄븐 투 일레븐을 했을 때의 그 상쾌함이 이 아침엔 없다. 어젯밤 먹은 라면으로 꾸물꾸물 뱃속이 불편하다. 더부룩~ 아, 싫어 이 느낌. 그렇다면 한 번 무너졌다고 완전히 몽땅 무너져야 할까? 난 하나도 못 지킨 사람? 쓸데없는 여자? 집에서 늘어지게 게으른 여자? 노노노 그거 아니다. 오늘은 새날. 아직 시작되지 않은 깨끗한 하루. 이걸 어젯밤의 그 찜찜함으로 망치게 할 수는 없지. 암.


집콕을 지겹다 하지 말자. 모처럼 집에서의 귀한 시간이라 여기자. 한 번 무너짐에 온통 나 자신을 파괴로 몰아가지 말자. 딱! 끊어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실수는 언제나 할 수 있다. 그걸 느끼는 순간 딱 끊어내면 된다. 그 지저분한 마음을 끌고 올 필요는 전혀 없다. 이렇게 되새길 필요도 없다. 그냥 뚝!!! 끊어내면 된다. 난 오늘 새 하루를 멋지게 시작하리라. 내가 좋아하는 깔끔하게 먹고 사뿐하게 운동하고 책 읽고 음악 듣고 글 쓰고 그런 하루를 만들리라. 어제까지의 나는 몰라. 지금 이 순간을 최고로 만들면 돼. 파이팅!!!


베란다 철제에 맺힌 빗방울 (사진:꽃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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