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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Sep 21. 2020

추석 전 추석 나들이

코로나 때문에 

우리는 삼 남매다. 그 옛날에 아버지는 "가족은 언제나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승용차에 다 탈 수 있는 인원으로 산아제한을 하셨다. 그 어떤 가족행사에도 우리는 빠질 수 없었다. 그렇게 어딜 가건 다섯 명이 똘똘 뭉쳐 살던 우리 가족도 오랜 세월이 흘러 모두 흩어졌다. 아버지는 하늘나라에, 오빠는 미국에, 남동생은 캐나다에, 나는 울산에, 엄마는 일산에. 


추석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아무도 올 수 없다. 그래서 나라도 사람이 붐비지 않는 추석 일주일 먼저 엄마를 찾는다. 연세가 그렇게 있으신데 울산에 함께 살지? 노노노 세련된 할머니 우리 엄마는 홀로가 편하시단다. 친구분들도 많아 울산으로 훌쩍 떠날 수가 없으시단다. "지금은 괜찮아. 엄마는 건강하니까." 씩씩하게 홀로 잘 지내고 계신다. 코로나 때문에 한참을 못 오다 추석을 앞두고 이박삼일 여행길에 오른다. "우리 딸~" 하며 냉장고에 소주를 차갑게 마련해두시던 아버지 대신 술을 전혀 못하는 엄마가 오랜만에 오는 딸의 점심을 준비하신다. 우거지 된장국에 호박잎 쌈에 새로 갓 지은 콩밥에 꽈리고추 졸임에 멸치볶음에 김에... 어릴 때 먹던 밥상 그대로.

이런 거 얼굴에 달고 있으면 그것처럼 추한 게 없어.


엄마 얼굴 한복판에 손톱만 한 기미랄까? 검은 점 같은 게 생겼다. 그리고 조금씩 동글동글 검버섯이랄까 검은 점들이 주변에 있다. 엄마는 그것들을 깔끔하게 없애고 싶어 하신다. 그런데 우리 엄마. 연세가 있으신데. 병원 가시면 그나마 주민등록이 잘 못되어 92세로 되어있는데 92세 할머니가 얼굴의 검버섯 없애달라고 온다면 아, 뭐라 하지 않을까. "엄마 연세에 그 정도는 당연히 있어야지요. 아무리 피부과 간다고 하얗게 물광피부 될까요?" 살짝 말씀드려보니 이건 예의가 아니라 하신다. 추해 보인다는 것이다. 아, 난 90 다 된 어르신네 얼굴에 검버섯 있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 싶은데 말이다.


우리 엄마는 참 미인이시다. 옛날에 엄마랑 어디 시장에라도 가면 꼭 듣는 소리가 "앗, 엄마였어요? 언니 아니고?" 그렇게 우리 엄마는 동안이시고 미인이시고 미에 관심이 많으시다. 함께 목욕탕에 가면 나보다 훨씬 바르고 어쩌고 하는 게 많으신 멋쟁이 엄마다. 그 엄마도 늙으신다. 나가기만 하면 "참 예쁘시네요~"를 듣던 엄마도 나이가 든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얼굴과 팔과 다리에 검버섯도 생기고 주름도 생기고 하는 것 아닐까? 얼마나 아플 텐데 그걸 감수하시겠다는 걸까. 그냥 지금 모습 그대로도 우리 엄만 참 예쁜데 자꾸 그 손톱 크기의 희미한 기미 같은 점을 불편해하신다. 함께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할까? 지금 코로나로 위험한데 병원에 가서 90이다 된 어르신이 기미를 빼야 할까. 그냥 나이를 인정하고 검버섯이고 주름이 고를 편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걸까. 거울을 보며 보습 화장품을 계속 두들겨대시며 엄마는 얼굴 한 복판 그 거무튀튀한 것을 불편해하신다. 자세히 봐야 보이지 그냥 얼핏 보면 눈에도 잘 안 띄는데 엄마 눈엔 그것만 보이는가 보다. 팔에 돋은 검버섯도 싫어하신다. "벌써 달려갔지. 그런데 이젠 그런 것도 갈까 말까 망설여지는 게 영 의욕이 없다."라는 쪽으로 대화를 몰고 가기도 한다. 그러다 또 "요걸 없애야 할 텐데..." 거울 보며 푹 한숨을 쉰다.


엄마, 공원 산책은 기본이지요? 

해가 강해서 저녁을 드시고 나서야 공원에 나갔는데 너무 깜깜하니 무섭더라며 이젠 해가 있을 때 나가려 한다는 엄마. "네~ 그래요, 저녁 먹기 전에 다녀와요 우리. 그래야 저녁밥이 맛있지요." 둘이 무조건 나간다 손을 꼭 잡고. 엄마 집 앞에는 바로 공원이 있다. 할머니가 산책하기 꼭 좋을 만큼의 아담한 정원이다. 힘이 되면 세 바퀴도 네 바퀴도 돌고 힘이 안되면 한 바퀴만 돈다. "매일 꼭 운동하세요 엄마." "그래 이 공원이 가까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단다." 한 바퀴 더? 한 바퀴 더? 무려 네 바퀴를 돌았다. 운동기구는 괜히 찝찔하니 만지지 않기로 한다. 혹시 또 알아? 코로나 확진자가 만지고 갔을지. 조심조심. 아무것도 만지지 않고 마스크 단디 쓰고 공원만 살짝살짝 가뿐하게 걷고 온다.


저녁 먹고 들어갈까?


어느새 깜깜해진다. 먹거리 가득한 그곳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가자 하신다. 노노노 엄마 냉장고에 무어가 있는지 체크도 해야 하고. "제가 다 차릴 테니 엄만 그냥 가만히 계세요." 집에 오자마자 엄마는 "정말 나 TV만 봐?" 하시며 거실 쏘파로 가시고 "네~ 엄마, 제가 다 차려요~" 냉장고를 뒤져 돼지고기 삼겹살 구이와 콩나물국 등으로 잽싸게 한 상 차린다. "엄마~ 오세요~ "하핫. 그리고 잠시 뒤 "아니 엄마 이건 완전 초토화라 말해야겠어. 어쩜."  식탁 위의 한 상차림이 그야말로 싹싹 비워지고 하얀 접시만 남았다. "맛있어요?" "그래 정말 맛있다."하하 어쩜 엄마도 나도 이렇게 밥을 잘 먹을까? 푸하하하


다 치우고 커피도 한잔씩 하고 요즘 너무 재밌는 거 있다고 엄마를 꼬셔 '비밀의 숲'을 보고 있는데 파리에서 작은 아들의 보이스톡 전화가 온다. "나도 있다~" 남편이다. 가족 단톡 방이다. "아 우리 손주~ " 할머니도 가세한다. "할머니~ 보고 싶어요~" "우리 손주랑 고스톱 한 판 해야 하는데~" "네~ 할머니, 제가 가면 고스톱 한 판 해요. 엄마랑 연습하세요." "내가 지난번 네 아빠 돈이랑 싹쓸이 해오지 않았냐. 그런데 둘이서도 고스톱이 가능하냐?" "네, 할 수 있어요." "그럴까? 엄마 고스톱 한 판? 하하" "코로나 때문에 이게 뭐냐. 보고 싶은 우리 손주도 못 보고." 모처럼 손주와의 통화로 우린 한참 푸하하하 웃음을 쏟아낸다. "엄마~ 어서 자요. 우리~" 엄마의 커다란 돌침대 속으로 함께 들어간다. 엄마 손을 꼭 잡는다. 옛날 아버지 이야기하며 우리 어렸을 때 이야기가 까만 밤 줄줄이 이어진다. 


(사진:꽃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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