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서 며느리가 왔다. 나의 아들 즉 남편은 놓아두고 두루두루 일을 보러 살짝 혼자만 왔다. 서울 친정에 묵으면서 떠나기 전 우리를 만나러 왔다. 바쁜 일정이기에 우리도 잠깐만 그 애를 보기로 한다. 바닷가로 가 회를 먹고 카페에 가 커피를 마시면 되겠다고 하니 남편은 그래도 집에 와야지 한다. 하지만 시간상 그것은 안될 것 같다. 상황 따라 하기로 하고 기차역으로 간다. 우리 차를 못 찾으면 어쩌나 남편이 운전대를 잡고 나는 대합실로 뛰어가 기다린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애를 발견한다. 아니 그 애가 나를 먼저 발견하고 어머니~ 하며 반갑게 다가온다. 머리가 많이 길었다. 화장도 곱게 했다. 눈썹도 길게 붙였다. 가볍게 내 옆에 와서 달랑달랑 매달리듯 팔짱을 낀다. 잘 있었느냐 인사를 나누며 남편이 기다리는 곳으로 간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 했던가. 하하 너무 반가워하는 남편. 그렇게 나의 아들 없이 그 애만 태우고 바닷가로 간다.
한정식, 회, 오리, 떡갈비 중 먹고 싶은 것을 고르렴 예약해두게.
저는 회 먹고 싶어요.
그래서 예약해둔 바닷가 횟집이다. 사람이 무척 많은데 일찍 예약을 해두어 바다가 훤히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는다. 바로 앞에 파도가 넘실댄다. 며느리에게 듣는 나의 아들 이야기는 또 다른 감회를 불러온다. 때맞춰 밴쿠버에 있는 아들에게서 보이스톡이 온다. 깔깔 푸하하하 즐거운 대화다. 짧은 시간이기에 우리는 많은 대화를 하는 쪽으로 스케줄을 잡는다. 요즘 아주 적은 양의 술에도 음주단속에 걸릴 수 있어 안 마신다는 핑계지만 남편은 술을 못한다. 그러나 며느리도 술은 좀 하는 것 같고 나도 술을 좀 한다. 그래서 우리는 소주를 한 병 시킨다. 회에 소주가 빠질 수 없지. 며느리랑 나랑 주거니 받거니 쨍그랑 잔까지 부딪쳐가며 술을 마신다. 남편은 그저 허허 웃으며 둘 다 얼굴이 발개지네. 시어머니랑 며느리의 한 잔이라. 보기 좋다. 추임새만 넣는다. 회는 삼분지 일 정도 남았고 그리고 아직 매운탕 까지는 나오지 않은 상태인데 며느리랑 나랑 단 둘이서 소주 한 병을 다 마셨다.
어떻게 할까? 적당하긴 한데 한 잔 더 할까? 새로 한 병 가져올까?
네! 어머님. 한 병 더 마셔요.
어쭈~ 남편의 기막혀하는 모습. 며느리랑 나랑 둘 다 발갛게 달아오른 상태. 에잇. 그래 우리가 언제 또 이렇게 마시겠냐. 내가 우리나라에 새로 나온 맛있는 소주 소개해줄게. 하고는 술병들이 좌악 늘어져있는 냉장고로 간다. 깔끔하게 생긴 파란 진로 새로 나온 소주. 16도라는 것. 맑은 그 소주를 꺼내온다. 병마개를 따서 며느리 잔에 콸콸 부어주고 어머님 제가요~ 하고는 그 애가 내 잔에 붓는다. 그리고 아빠 잔엔 찬 물. 하하 그렇게 우리는 파이팅하며 소주잔을 쨍그랑 부딪고 신나게 마신다.
와우 어머님 이거 너무 맛있어요. 아주 상쾌해요.
그치? 내가 서울의 술 잘하는 친구들에게서 알아온 거야.
거긴 술 소식이 빨라. 테라도 거기서 알아왔는 걸.
하하 남편이 술에 관심 없으니까 난 술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 다만 서울 모임 갈 때 주류팀에 끼게 되면 술에 대한 반짝반짝 소식들을 한 아름 얻어온다. 거기서 연태주도 마셔봤고 데낄라도 마셔봤고 테라도 마셔봤고 새로 나온 맑고 깨끗한 진로 소주도 마셔봤다. 하하 이름하여 덕수 56 골프에서 말이다. 그걸 이야기하며 남편 즉 나의 아들에게 가서 자랑하라며 난 그 새 소주 맛을 보여준다. 하하.
그 애도 나도 얼굴이 발갛다 못해 시뻘겋게 닳아 오른다. 회가 좀 남았는데 매운탕이 도착한다. 우리 이거 샤부샤부 먹듯 해 먹자. 팔팔 끓고 있는 매운탕 국물에 두툼한 회를 젓가락에 꽉 집어 들고 좌삼삼 우삼삼 휘휘 저으며 살짝 익혀 생고추냉이 장에 톡 찍어 먹으니 오홋 또 색다른 맛. 맛있다. 우리 안주로는 최고다. 어머니 정말 맛있어요. 하하 그렇게 나랑 며늘애는 한 톨의 회도 남김없이 싹싹 다 샤부샤부를 해 먹는다. 얼큰한 매운탕이 우리의 소주잔 속도를 빠르게 한다.
어허. 이 속도 봐라. 점점 잔 비우는 속도가 총알 같잖아.
남편의 추임새에도 속도가 붙는다. 푸하하하 어느새 두 병 째 소주를 한 방울 남김없이 깡그리 비운다. 난 그야말로 알딸딸이며 얼굴이 시뻘건데 며늘애는 나보다 센가 보다. 얼굴이 나처럼 심하게 벌겋지는 않다. 그 애가 나보다 두 병에서 한 잔 더 마셨는데 말이다. 하하 그걸 어찌 아느냐. 내가 따라주려는 순간 이미 그 애 잔엔 자기가 따른 걸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어서 마셔. 네가 나보다 한 잔 더 마신 거다. 하하 그렇게 우리는 잔 수를 세어가며 꼭 같이 나누어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알딸딸 정신도 오락가락하고 배가 너무 똥똥하게 불러 살짝 바닷가를 걷기로 한다. 고깃배가 떠있고 파도 한 방울 없는 잔잔한 바다. 그러나 아주아주 짙푸른 바다.
아, 바닐라딜라이트요?
커피 사주겠다는 말에 하하 며느리는 그 커피를 기억한다. 난 브런치에 올렸던 '계핏가루를 왜 넣었을까?'를 우리 가족 방에 올렸던 것이다. 그래. 그 글을 적고 나서 보니 그게 할리스 커피에서 아주 유명한 인기 있는 커피라더라. 기차 시간이 다가오기도 하고 다른 곳 커피보다 꼭 할리스 커피의 그 바닐라 딜라이트를 맛 보이고 싶어 우리는 바닷가를 걷다 울산역으로 간다. 그리고 내가 바닐라 딜라이트를 쏜다. 셋이 쨍그랑 커피잔을 부딪고 마신다. 음 이거 맛있네. 믹스커피사랑 남편도 좋아한다.
어느새 열차 출발 시각은 다가오고 떠나는 새 아가에게 미련이 남아 기차 타는 곳까지 함께 간다. 그거 참 어색한 순간인데 그래도 남편이 원해서 우리는 그거 한다. 열차 타는 거 지켜보고 열차가 떠나기까지 서서 막 손 흔드는 그거. 어두운 창으로 며느리가 손 흔드는 게 흐릿하게 보인다. 열차 안에서는 이 밖이 잘 보이지만 열차 밖에서는 안이 보이다 안 보이다 한다. 그렇게 열차는 떠나갔다. 칙칙폭폭이 아니라 쒱! 번개 같은 속도로. 우리 큰아들의 아내가 떠났다. 열심히들 살아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