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섭

by 꽃뜰


아니 선배님, 어쩜 이렇게 무거워요?


화장실 간 새 내 가방을 들고 기다리던 후배들이 난리다. 그 가방 안에는 나의 노트북이 들어있다. 웬 후배들이냐. 요즘 나는 여고 총동문회 홈페이지의 대대적 개편에 차출되어 거의 매주 젊은 웹디자이너와 후배인 컴퓨터 업체 사장 그리고 총동문회 회장 총무 등 7명 정도와 함께 합숙 훈련하듯 엄청난 회의를 거듭하고 있는데 거기서 친해진 후배들이다. 그들의 노트북은 내 거보다 훨씬 큰데 매우 가볍다. 그런 이야기를 파리에 있는 아들과 가족 단톡 중에 하니


엄마 제가 최신형 노트북 사드릴게요.

엄마 노트북 괜찮다. 글만 쓰는 건데 그런 거 필요 없다. 괜히 돈 낭비하지 말아라.


헉! 엄마 한 마디에 최신형 운운하는 아들도 놀랍지만 거기 딱 일침을 놓는 남편도 놀랍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사실 그런 것도 같다. 무거울 뿐이지 난 이 노트북을 얼마나 잘 쓰고 있는가. 2년 전인가? 핸드폰에 코 박고 글을 쓰는 나를 딱하게 여긴 남편이 매장으로 데리고 가 노트북을 사줬다. 여기서도 모든 게 극과 극인 남편과 나. 기왕 사는 거 아주 최신형이어야지가 나의 주장이고 글만 쓸 수 있으면 되지 쓸데없이 낭비할 필요 없다가 남편 주장이었다. 그 절충으로 진열 상품을 싸게 사는 꼼수를 택했다. 같은 가격대에서 또 경쟁이 붙으니 작고 가벼운 건 크고 무거운 것보다 머리가 좋지 않다. 머리냐 가벼움이냐. 물론 난 머리를 택했다. 그래서 내 노트북은 무겁다. 그래도 진열품이니 그렇게 머리 좋은 애를 저렴한 가격에 샀다고 쾌감을 느끼는 남편이다.


엄마에게 최신형 노트북을 사주겠다는 기특한 애에게 도대체 왜! 딴지를 거는가 말이다. 아들이 선물한다는데 왜? 정말 이해가 안 간다. 막 진행하다가 그래도 아버지 말이 중요하고 또 아버지가 반대하는데 그대로 사는 것도 아니라 우리의 대화는 멈췄다. 하도 기가 막혀 다음 날 공칠 때 난 엄마들에게 그 이야기를 한다.


장가가면 끝이야.
지금 혼자라 그런 것도 사주는 거야.
준다 할 때 얼른 받아.
점점 그런 일 없어져.


다들 덥석 받으라고 난리다. 남편이 허락 안 해 지금 멈춘 상태라 하니


아니, 당신이 돈 대는 것도 아니면서 왜 막아?
그게 왜 남편 허락이 필요해?
그냥 받아. 빨리 받아.


모두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난 아들에게 즉시 카톡을 날린다.


엄마는 꼭 갖고 싶다. 최신형 사주라.

넵. 그럼 엄마가 아빠 잘 설득하세요. 주문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아빠 허락 없이 사는 게 영 찜찜한가 보다. 한밤중에 다시 전화가 온다. 아빠를 함께 설득해보잔다. 그래서 보이스톡을 스피커폰으로 해놓고 3자 대화를 시작하지만 그는 여전히 반대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그는 항상 너그럽지 않다. 서로 자란 환경이 달라서일까? 나는 서울 한복판에서 자랐고 그는 충청도 시골에서 자랐다. 물론 커서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어쨌든 그는 내가 어려서 과외공부 할 때 시골 냇가에서 발가벗고 멱감았다. 그래서일까. 그 어떤 기본 문제 특히 돈에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에게 맞춰 주려 애쓰지만 아, 정말 나는 힘들다. 왜 아들이 사주겠다는데 저렇게 한사코 말릴까? 아내가 무겁게 낑낑대며 서울을 다니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가? 생각하니 너무 섭섭해서 다시 입이 쑥 앞으로 나온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큰 일도 아니다. 아들이 사주면 좋고 아니면 아닌 대로 내가 조금 무거운 거만 참으면 된다. 그는 그렇게 절약으로 살아왔기에 어쩔 수 없다. '쓸데없는 낭비는 절대 않는다.'가 마치 그의 가장 중요한 생활 철학 같다.


아빠 말이 맞는 것 같다. 살 필요 없다.
아니 그런데 무겁기는 정말 무거워.
무겁기는 하나 글 쓰는 데는 아무 지장 없다.
아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엄마 꺼가 지금 꼬지 기는 엄청 꼬지다.


이미 프랑스 파리는 깊고 깊은 밤. 쿨쿨 자고 있을 아들에게 하릴없이 사달라 사지 마라 이랬다 저랬다 카톡만 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