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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Oct 28. 2020

배려

책 들고 가도 돼요?

네? 그런 걸 질문한 분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글쎄요. 핸드폰 정도는...

넵. 그럼 핸드폰.


대기실 의자에 앉아 읽고 있던 책을 놓고 간호사가 불러 앞으로 나갔던 나는 후다닥 내 자리로 돌아와 핸드폰을 들고 안으로 들어다. 나는 오늘 정기검진으로 대장내시경을 하는 날이다. 수면내시경이라 보호자가 꼭 함께 해야 한다. 남편이 나의 보호자다. 대학병원이라 아침부터 몰려드는 환자들이 어마어마하다. 어제부터 금식하고 그 이상한 액체를 500미리 500미리 물 오백 미리 또 새벽에 500미리 500미리 물 오백 미리. 하이고 끔찍한 그 과정을 모두 끝내고 남편과 함께 병원에 왔다. 9시 예약이니 첫 타임이려니 하고 아주 일찍 8시 20분에 도착했는데 9시 되어서야 접수를 받는 것은 물론 그때가 되고도 내가 제일 먼저 왔지만 뒤에 온 사람들이 먼저 들어간다.

내가 제일 먼저 왔는데 왜 뒤에 온 사람이 먼저 들어가요? 하고 물어볼까 여보?


아서라. 하하 직접 간호사에게 묻지는 못하고 남편에게 눈짓하니 역시 점잖은 나의 서방님. 급한 것도 없는데 다 때가 되면 부르겠지. 가만있으라 한다. 그치? 무슨 사정이 있겠지? 그래도 난 무려 삼 개월 전에 예약한 건데. 그래. 아마도 낙하산이겠지. 그치? 푸하하하 실없는 이야기를 소곤소곤 주고받으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으니 드디어 내 이름을 부른다. 반가움에 대기실 의자에 읽던 책을 놓고 간호사 앞으로 튀어나갔다가 들어오라니까  물었던 것이다. 책을 가져가도 되냐고. 왜냐하면 언제나 그 안에서 기다림이 꽤 길었던 기억이라 책을 읽고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그런데 눈이 참 예쁜 앳된 간호사는 깜짝 놀라며 그런 질문을 받아본 게 처음이라며 어쩔 줄 모른다. 에고. 핸드폰 정도는. 하는 말에 책은 내려놓고 가방에서 핸드폰을 들고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라카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번호를 네 개 눌러 잠그고 나오라는데 라카 어디고 옷을 넣고 네 개 번호를 넣으나 불발이다. 아무 소리도 안 나고 그대로 열린다. 고장? 옆에 해봐도 또 옆에 해봐도 안 잠긴다. 우쒸. 매번 옷을 옮기고 누르고 옮기고 누르고 한 다섯 번 만에 딱 한 군데가 잠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옷을 옮기지 말고 되는가부터 체크할걸. 열다 보니 앞사람 옷 들어있는 칸도 그대로 열린다. 잠기는 곳 찾느라 늦어진 나는 기다리고 있는 간호사에게 미안해 문 잠기는 게 없어 찾느라 늦었다고 말한다. 

네 그렇지요? 거의 다 고장 났어요. 귀중품 없으면 그냥 나오시면 돼요.


아니 그 말을 왜 인제? 들어갈 땐 꼭 잠그고 나오라더니?  내참. 책 이야기에 답을 못했다 생각해서일까? 이 간호사 나를 무척 신경 써준다. 누우라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브런치 글을 읽고 있는데 수액 하나 꼽는다며 링거액을 들고 온다.

핸드폰 보시기 편하도록 아래에  놔드릴까요?
아, 그래도 되나요? 네, 감사합니다.


그래서 대개 링거를 꼽는 정맥이 오돌오돌 잘 보이는 팔꿈치 안쪽이 아닌 거기서 좀 내려가 손목과 팔꿈치 한가운데에 주삿바늘을 꼽기 시작하는데 이상하다. 이런 링거 주사는 금방 되던데 왜 이리 오래 걸릴까? 정말 한참을 조몰락조몰락 뭐 하는 걸까?


아 잘 안되면 그냥 쉬운 곳 하세요.
괜찮아요.


그리고는 다시 조몰락조몰락


힘을 뺄까요?
괜찮아요. 지금 상태 좋아요.


그리고도 한참을 조몰락조몰락. 도대체 무얼 하는 걸까?  


앗 붓는다. 안 되겠어요.


헉 뭐지? 다급한 목소리. 죄송해요 하더니 큼지막한 반찬고를 턱 붙이더니 나보고 꾹 눌러주라 한다. 그리고 맨날 피 뽑는 곳. 팔꿈치 안 정맥이 드러나는 그곳으로 간다. 앗 겨우 일분도 안돼 됐어요. 한다. 뭐야 이렇게 쉽게 될걸 그렇게 오래?


에구, 저를 배려해주려다 더 힘들게 되었네요.


난 진심으로 미안하다. 


네, 그렇게 되었네요. 


간호사가 웃는다. 


꾹 누르고 계세요.  한참 파랗게 멍이 들어있을 거예요.


배려가 그렇게 되었다. 하하 그나저나 크게 멍들면 어쩌나. 에구 테프 두 갤 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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