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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Oct 11. 2020

울산 화재 그 현장을 가보다

엄마~ 괜찮아요? 지금 난리 났는데


응? 모가? 우린 모르고 있었다. 울산에 어마어마한 불이 났다는 것이다. 파리에 있는 아들이 걱정되어 보이스톡을 한 것이다. 밤도 늦었고 우린 막 잘까말까 하던 중이었다. 그래? 놀라며 TV를 켜니 우아 무시무시한 화염 속 아파트. 우리가 늘 다니는 대형마트 바로 앞에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 우리 집에서 한 두 블록인가 세 블록 정도 떨어진 곳이다. 멀리 우리 집에서 직통으로 보이는 곳. 그때부터 새벽 세시 까지 뜬 눈으로 뉴스를 지켜보고 베란다 밖으로 저 멀리 가물가물 불꽃을 지켜보곤 했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무시무시하게 불이 온 빌딩에? 반복되는 불타는 순간의 뉴스 장면을 볼 때마다 아찔하다. 아, 어떡하나. 저 안의 사람들은 어떡하나.


다음날 아침 일찍 뉴스를 켜니 모두 진정이 되었는지 크게 뉴스로 다뤄지지는 않고 있다. 아, 괜찮은가 보다. 두두두두 헬기 소리가 요란하다. 멀리 우리 집에서 보이는 그 현장은 시커멓게 변해있고 여전히 검은 연기가 퐁퐁 솟아나고 있다. 우리 집 앞에 있는 커다란 호수에서 물을 길어 그곳에 퍼붓는가 보다. 둥근 통을 단 헬기가 바쁘게 왔다 갔다 한다. 조용하던 TV는 밤 9시 뉴스에 본격적으로 다루어진다. 그때 화염 하며 그 현장이 생생하게 보도된다. 미국에서 캐나다에서 서울에서 부산에서 곳곳에서 뒤늦게 그 뉴스를 접한 친구들이 전화로 안부 묻기 바쁘다. 아, 뉴스의 전파력이라니.


저녁때 우린 현장엘 가보기로 한다. 매일 하는 산책을 수변공원이 아닌 화재현장으로 잡은 것이다. 걷기는 마찬가지니까. 다만 공기는 좀 안 좋겠지만 그래도 이런 현장을 그냥 넘길 순 없지. 산책하듯 걸어서 도착하니 와우 매캐한 냄새. 여전히 타는 냄새가 나고 있다. 그리고 각 방송국 차량이 있고 밝은 조명 아래 어젯밤 TV에서 본 기자가 멘트를 연습하고 있다. 아마도 저녁 9시 뉴스를 위함인가 보다. 소방차도 바쁘게 왔다 갔다 한다. 바닥에 그날의 위험을 알려주듯 깨진 유리며 불에 탄 패널들이 널브러져 있고 TV수사극에서 보던 폴리스라인인가 그런 노란 줄이 뺑 둘러 쳐져있다. 위로 올려다본다. 아, 너무 끔찍하다. 어쩌나. 저 살림을 다 어쩌나. 에고.


기자들 한 무리, 소방대원 한 무리, 우리처럼 그냥 올려다보는 사람들 한 무리. 그렇게 뭉터기 뭉터기 있는데 그들 사이로 누군가 젊은 남자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을 한가득 쟁반에 들고 왔다 갔다 바쁘다. 아, 저렇게 커피들을 마시는구나. 하하 그렇게 살짝 지켜보고 부러워도 했는데 옆의 소방대원들에게도 커피가 나누어진다. 연신 그 남자는 수고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한다. 아, 그렇지. 소방대원들 너무 수고 많은데 아, 저렇게 커피를 나누는 모습 너무 괜찮다. 우리도 소방대원들에게 무언가 드려야 하는 게 아닐까. 그냥 그 젊은이에게 마구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여전히 불탄 자리를 보고 있었다. 그때


커피 한 잔 하세요.


하면서 우리에게까지 그 따끈따끈한 커피가 오는 게 아닌가. 헉. 아니에요 아니에요. 우리는 아무도 아닌 걸요. 그냥 화재현장 보러 왔어요. 놀라서 손사래를 치니 이 젊은 총각 웃으며 그래도 드세요~ 하는 게 아닌가. 작은 종이컵이 아닌 카페에서 보는 조금 크고 단단한 컵 안에 담긴 따끈한 커피를. 미안해서 자꾸 사양하는데 자꾸 드시라 한다. 아, 그럴까요 그럼? 감사합니다. 남편과 나 둘이서 한 잔만 할게요. 감사합니다. 우린 아무도 아닌데. 하면서 한 컵을 받으니 또 다음 사람을 위해 달려간다. 그런데 누구세요? 이미 저 멀리 가고 있는 그에게 나는 누구에게 얻어먹는 커피인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 큰 소리로 묻는다. 아, 요기 벤츠입니다. 아하. 그 벤츠구나. 화재현장에서 소방대원들에게 장소를 빌려주고 차에 식사까지 대접했다는 바로 그 벤츠. 아, 지금까지도? 그 회사의 배려가 참 따뜻하다. 코로나로 어려운 이때 더 큰 어려움을 겪게된 아파트 주민여러분들 너무 안타깝다. 빨리 모든게 복구되길 기도드린다.


화재 그다음 날 (사진:꽃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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