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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Nov 18. 2020

카페에 몰려온 술 취한 남자들

아, 어마어마하게 시끄럽다. 술 취한 남자들이 몰려왔는데 벽에 딱 붙어 있는 내 자리 바로 옆에  테이블을 길게 늘여 한 십여 명이 앉더니 아주 큰 목소리로 떠들고 있다. 아무리 주변이 시끄러워도 웬만하면 집중이 되는데 아, 이 남자들 정말 심하게 목소리가 크다. 


그래서 나는 이어폰을 꺼내 유튜브에서 내가 좋아하는 말러 교향곡 6번을 골라 듣는다. 좀 크게 해서 듣는데도 이 남자들 바로 곁에서 얼마나 시끄럽게 떠드는지 그 크게 시작하는 둥둥 둥둥 북소리가 잘 안 들릴 지경이다. 이 와중에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참 대단하다.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 자리를 뜰 수도 없다. 내 자리 바로 곁에 붙어 있어서 내가 움직이는 순간 모두 바라볼 것 만 같아서. 


노트북에 코 박고 그저 내가 하던 일을 할 뿐이다. 이 카페에 여기 말고는 자리가 없나? 그렇게 휘익 둘러보고 싶지만 옆자리의 저 많은 남자들과 행여 시선이 맞부딪칠까 그러지도 못한다. 아, 술 취한 남자들인데 너무너무 시끄럽다. 카모마일을 주문해 마시고 있는데 이쯤에선 새로 뜨거운 물을 받아 재탕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못하겠다. 규칙적으로 손가락만 움직이는 시체가 되어 꼼짝 못 하고 있다.  


저 여자는 이렇게 시끄러운데 과연 집중이 될까? 
혼자 이런 카페에서 무얼 하고 있나?


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를 흘끗 거리는 것도 같다. 내게 향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목소리들이 너무너무 크다. 나는 지금 독후감을 쓰는 중이라 읽는 책을 책꽂이에 척 걸쳐두고도 있는데 무언가 힐끗거림을 느낄 수 있다.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같다. 요즘은 저렇게 몇 시간이고 앉아 자기 일하나 보더라 류의 이야기가 들리는 것도 같다. 좀 좋은 소재거리일까. 술이 많이 취한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회사 사람들이다. 회식 후 차를 마시러 왔는 가보다. 유난히 목소리 큰 사람이 자꾸 이쪽을 흘끗거리는 걸 느낄 수는 있는데 난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돌리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 가고 카모마일에 물을 채우러 가지도 못하고 있다. 이렇게 신경이 쓰이기는 처음이다. 그런데 이 남자들 정말 시끄럽다. 카페를 전세 낸 걸까. 이렇게 시끄럽게 해도 되는 걸까. 왜 하필 카페 맨 구석 담벼락에 탁 붙어 앉은 나의 바로 옆자리란 말인가. 하이고.


내가 잘 못 한 게 아니야. 
자기 집 안방인 양 시끄럽게 떠드는
저 사람들이 문제인 거지. 
그래 꿋꿋하게 내가 할 일을 하자. 


겨우겨우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아,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심하게 시끄럽고 노골적으로 이쪽을 힐끗거리기까지 한다. 그래도 난 모른 척 노트북을 두들긴다. 아, 나는 용감하여라. 남편과 오후 산책을 끝내고 그냥 흘러가고야 말 저녁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 집 앞 나의 아지트 카페로 향했다. 그런데 오늘 같은 날은 처음이다. 집으로 가지도 못하겠고 화장실도 못 가겠고 처음 위치 고대로 그냥 키보드만 두들기고 있다. 


이렇게 시끄러워도 그냥 글만 쓰시려는가? 


그걸 시험이라도 하려는 듯 술 취한 남자들이 더욱 큰 목소리로 떠들고 있다. 난 꼼짝 못 하고 있다. 분명 저 남자들이 잘 못하고 있는 건데 내가 왜 이렇게 쪼그라들까. 당당하게 그래. 내 할 일을 하자. 파이팅! 


(사진:시애틀의사진잘찍는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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