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뜰 Dec 18. 2020

장모님 부상으로 고생하는 사위

여보도 고생이 많네. 어떡하지?


걱정하는 내게 그래도 남편은 꼭 웃으며 답해준다. 내가 무슨 고생이냐 고생은 네가 하고 있지.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정말 고맙다. 그런데 내가 고생하고 있는 건 맞다.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한 손을 못 쓰시니 옷을 입혀드리고 이것저것 한 번 나가기 위해서도 나의 손이 많이 가는데 문득 정말 문득 짜증 비슷한 게 나려고 한다. 아, 그런 마음은 좋지 않은데. 그 마음은 어떻게든 엄마에게 전달될 테니까 속으로 마음을 돌리려 애를 쓴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그런 마음 깊어지기 전에 무조건 종잇장 뒤집듯 훽! 바꾸어버리니 바꾸어진다. 다행이다.


아, 그래도 무언가 힘들다. 별일 않는다는 게 더 힘들다. 엄청난 일다운 일을 했으면 보람을 느낄 텐데 그냥 손 붙들어 드리는 거, 밥 차리는 거, 화장품 치약 뚜껑 열어리는 거, 설거지하는 거... 그런 시시한 일들로 하루가 다 가니 정말 가끔은 미치겠다. 게다가 거실에서 TV를 보시는데 곁에 있으면서 무언가 내 거를 하려 하지만 영 집중이 안된다. 그러나 내가 지금 엄마를 돌봐드리면 되는 거지 나의 글 나의 댓글 나의 브런치에 찾아오는 분들을 일일이 신경 쓸 처지는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우리 집까지 일부러 찾아와 댓글을 달아주는 분들을 소홀히 한 적은 없는데 그대로 방치해두니 마음 한편이 영 무겁다. 게다가 누구 말대로 의욕적으로 하고 있던 나의 영어랑 성경필사랑 태국어랑 유튜브까지 그 모든 건 어떻게 될까? 모든 건 습관인데 매일 하던 그 모든 것들을 안 하니까 또 안 한 채로 흘러간다. 일을 뻑쩍지근하게 하는 것도 아니면서 시간만 흘러간다.  


김장거리를 잔뜩 봐놓자마자 엄마의 부상 전화를 받아 대충 해놓고 달려왔기에 동치미 무도 절여놓은 채다. 삼일이 지났으니 그걸 해결해야 한다. 다행히 동치미 담을 그릇에 절여놓고 왔다. 여보 단단히 준비하고 내 말대로 해. 생각나는 대로 그냥 집에 있는 것들로 담가야 한다. 양파 두 개 사과 두 개 냉동실에 통마늘, 생강, 파, 땡고추... 어디? 어디? 냉동실 왼쪽 맨 아래칸. 그래 있다. 이거 얼마큼? 한 줌 정도 반줌 정도. 그렇게 외워지는 냉동실 풍경을 떠올리며 남편에게 지시한다. 대파도 썰어 얼려놓은 걸 쓸 수밖에 없다. 할 수 없다 모두 그런 걸 사용해야 한다. 일단 집에 있는 것들로만 담고 생수를 채워 인증숏을 보내라 했더니 남편이 보낸 사진이다. 그런대로 동치미가 담가졌다. 졸지에 홀아비가 된 남편도 고생이 많다.


(사진:꽃뜰남편)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우리 맥주 한 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