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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Dec 26. 2020

팔 부러진 엄마랑 메리 크리스마스

어쩜 이렇게 예쁘냐~
그렇죠 엄마? 너무 예쁘죠? 


난 신이 났다. 예상대로 엄마가 깜짝 놀라며 감탄을 하기 때문이다. 음하하하 잘했어. 마침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퇴원하는 엄마랑 할 수 있는 게 무어 있을까? 그렇지! 크리스마스 파티를 엄마랑 단 둘이. 전날 엄마 보살핌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퇴근한 나는 바빴다. 특별한 케이크를 준비하고 싶었다. 근처 제과점에서 사는 케이크 말고 엄마 혼자는 드셔 보지 못했을 특별한 케이크를. 


쿠팡을 뒤졌다. 인터넷으로 주문해 본 적 없는데 크리스마스 케이크로 검색해보니 촤르르륵 무척 많은 종류의 케이크들이 나래비를 선다. 게다가 밤 12시까지만 주문을 하면 다음날 새벽 7시에 문 앞에 대령해준다니. 와우 정말! 마카롱이 위에 예쁘게 올라앉아있고 와인색이 예쁘게 빛나는 레드벨벳 케이크를 주문한다. 정말 내일 새벽에 문 앞에 와 있을까? 


퇴원하는 엄마를 맞이하기 위해 걸레질까지 깨끗하게 해 놓고 잠이 든다. 새벽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 앞에 나가니 와우 커다란 박스! 아니 아주 작은 케이크 같았는데 이리 큰 박스가? 어쨌든 새벽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여와 사과 박스 보다도 더 큰 박스 가운데를 칼로 푹 잘라 열어보니 우주선 같은 동글동글 스티로폼 박스가 들어있다. 그걸 드러내 뚜껑을 열어보니 세상에 뿌연 비닐봉지가 나오고 그 안에 아름다운 자태를 보일 듯 말 듯 숨기고 케이크가 들어있다. 가만! 요걸 냉동실에 넣나? 냉장실에 넣나? 냉동되어 배달됩니다~ 하는 것 보니 나도 냉동에 넣어야 될까? 아니 먹으려면 냉장실에 두어 녹여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뒤져도 냉장고에 넣어야 되는지 냉동실에 넣어야 되는지가 안 쓰여있다. 어디 넣지? 냉동실? 냉장고? 아, 어떡하지? 어디 넣어두나 에라 모르겠다. 냉동실에 두자. 안전하게. 


그리고 병원에 가 퇴원수속을 마치고 엄마를 모시고 왔다. 짜잔~ 엄마 맞이 겸 크리스마스 파티용 케이크입니다~ 이따 밤에 할 거 뭐 있냐. 지금 먹자. 하여 봉지를 뜯으니 아주 예쁜 케이크가 등장. 엄마 우리 커피 해서 케이크 위의 마카롱 하나씩 먼저 먹읍시다. 후다닥 커피를 타 와서 매력적인 꽃분홍의 마카롱을 엄마에게 권한다. 나보고 예쁜 색 먹으라 하시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퇴원자이므로 엄마가 드셔야 한다며 양보하고, 난 안 매력적인 옅은 베이지색을 먹는다. 맛있다.  


거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본론 케이크에 들어가서. 냉동실에서 꺼내온 케이크 그 어느 곳에도 칼을 꼽을 수가 없다. 즉 너무 꽁꽁 얼어서 자를 수가 없다.  엄마, 냉장실에 넣었어야 되나 봐. 할 수 없다. 그냥 뜯어먹읍시다. 하고는 포크를 들고 케이크를 끝에서부터 야금야금 긁어먹기 시작했다. 푸하하하 케이크를 이렇게 먹을 수도 있구나. 마치 쥐새끼가 파먹듯. 네 괜찮아요. 이렇게 계속 파먹어가지요 뭐. 하하


그런데 크리스마스 파티는 밤에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넵 요건 퇴원 축하용 파티. 이따 밤엔 크리스마스 파티~


그렇게 대낮의 축제가 끝나고 한밤중이 되자 미스 트롯을 한다. 그에 맞춰 아까 파먹다 냉장실에 둔 예쁜 케이크를 가져온다. 살포시 녹아 입에서 살살 녹는다. 원하는 대로 자를 수도 있다. 진작 냉장실에 넣을 걸. 커피? 맥주? 맥주! 이게 웬일. 술 전혀 못하던 엄마가 맥주! 라니? 돌아가신 술 좋아하는 아버지가 그렇게 엄마 술 좀 먹이려 애쓰셨건만 실패하셨는데 이게 웬일인가. 엄마가 맥주!라고 하시다니. 하하 


밤 12시가 훌쩍 넘어가기까지 이 애는 어떻고 저 애는 어떻고 정말 잘하네 아 안타깝다 평을 해가며 크리스마스 파티가 트롯 파티가 된다. 케이크와 함께 맥주도 함께 한밤중 트롯 파티를 하다 보니 팔 부러진 건 까맣게 잊으신 듯 노래 평하기 바쁘시다. 어쩜 저렇게들 잘하냐? 트롯의 매력에 푹 빠져드신다. 나도 함께 빠져든다. 팔 부러진 엄마랑 메리 크리스마스다. 


(사진:꽃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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