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뜰 Dec 23. 2020

CT촬영 딱하나 했을 뿐인데

그야말로 하루 온종일 CT촬영 딱 하나 했을 뿐인데 그런데 나의 마음은 왜 이럴까. 왜 시도 때도 없이 나의 마음은 변하는 것일까. 그냥 마음이 우울하고 무겁고 답답하고 그렇다. 그걸 엄마에게 내색할 수는 절대 없다. 저녁식사를 하고 난 좀 집에 가서 나만의 시간도 갖고 싶건만 엄마는 당신 대변볼 수도 있으니 그때 내가 있어주었으면 한다. 당연히 그래야겠지. 아무래도 큰 거를 하려면 힘들 테니까 내가 있어야지. 아무리 간병인이 함께 하는 간병 통합 병동이라 해도 내가 있어야겠지. 내가 편하시겠지. 그렇게 있는데 화장실 가려던 엄마는 전화를 받고 세월아 네월아 통화하신다. 화장실은 언제 가시려고?


화장실 기미가 쏙 들어가 버렸다.


한참 통화 후에 하시는 말씀이다. 난 빨리 집에 갔으면 좋겠는데 에구. 하루 종일 있으니 병원 공기가 나빠서일까? 저녁 7시쯤 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아, 난 이 곳을 빨리 탈출해야 한다. 그런데 엄마의 통화는 길기만 하다. 몰려오는 친구들 전화에 일일이 답하는 게 만만치 않다.


그러게 말이야.
첫눈 온날 내가 미쳤지 그때 왜 산책을 나가냐.
살얼음판에 미끌 넘어져서 팔이 똑 부러졌잖아.
운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야.


엄마의 이야기는 끝이 없는데 그게 하나가 아니라 전화 오는 대로 몇 통 화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대변 보고픈 맘이 쏙 들어갔다면? 그 기미가 다시 보일 때까지 내가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을까?


엄마 나 갈게. 이따 혹시 기미가 보이면 이걸 눌러요.
여긴 간병인 통합시스템이라 간병인이 상주하고 있어.
그 간병인 비용으로 일부러 하루에 만 육천 원씩 더 내는 곳이야.
미안해하지 말고 혼자 못할 것 같으면 꽉꽉 누르세요.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고 나온다. 드디어 탈출이다. 얏호.

 

(사진:꽃뜰)

CT촬영실의 저 하늘은 참 맑기도 하다. 평화 그 자체다. 하루 종일 할 일이라곤 CT촬영 하나. 5시쯤 가게 될 거라더니 3시쯤 내려가란다. 걸을 수 있지요? 네. 링거액을 바퀴가 달린 걸이에 걸고 함께 나간다. 전에 것은 휙휙 잘도 돌아갔는데 이번 것은 영 바퀴가 뻣뻣하다. 함께 움직이기가 너무 힘들다. 엄마랑 둘이 링거 걸이 들고 낑낑대며 겨우 CT촬영실에 도착한다. 역시 여기서도 내가 할 일은 없다. 그 앞에 엄마를 모셔놓으니 그다음부터는 기사님들께서 일사천리로 해결하신다. 깔끔하게 촬영을 마치고 씩씩하게 혼자 걸어 나오는 엄마. 흔들린 것 같다고 다시 촬영한다며 엄마를 촬영실로 다시 데려가더니 얼마 후 괜찮다고 그냥 가란다.


이제는 임시 우리 집인 병상으로 가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우아 사람이 너무 많다. 순진하게 지하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문이 쓱 열려 타려고 하니 내려가는 거다. 그걸 탔어 야했다. 몇 번을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으려 하나 내려갈 땐 텅 비었던 것이 올라올 땐 꽉꽉 아주 꽉꽉 사람이 차있어 환자복에 링거액을 주렁주렁 매단 엄마는 절대 탈 수가 없다. 그렇게 엘리베이터 몇 대 놓치고야 정신이 퍼뜩 든다. 그렇지. 내려갈 때 타야 하는구나. 텅 빈 채 내려가려는 엘리베이터를 잠깐만요. 내려가요~ 하면서 엄마랑 뛰어든다. 그럼 그렇지. 지하 3층에 오자 대기하던 사람들로 엘리베이터 안은 순식간에 다 차 버린다. 우리가 타려던 지하 1층에서 겨우 문은 열리나 아까 우리가 당한 것처럼 단 한 명도 더 탈 수가 없다. 그렇게 별일 아닌 것들로만 하루가 또 지 나간다.           


(사진:꽃뜰)
아, 내가 정말 힘들다. 엄마에게 내색할 수도 없고.

뭐라 할 말이 없네.. 언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니?
도와줄 사람을 쓸 수 있는 상황인가?  

아 몰라. 오늘은 마음이 많이 그래. 괜히 막 눈물이 나오네. 그냥 그래.  
만사 제치고 올라와서 이게 며칠째야 끝도 알 수 없고. 엄마에게 내색할 순 더더욱 없고 엉엉

정말 힘들겠다... 이것저것 다 챙겨야 할 테니...
도와줄 사람 쓰는 걸 연구 좀 해봐라.


그냥 마음이 한량없이 아래로 아래로 추락해 난 엄마를 뺀 우리 친정 형제들만의 단톡 방에 푸념을 한다. 미국에 사는 오빠가 놀라서 금방 답을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고 나니 맘이 편해지는 게 아니라 더더욱 엄마에게 죄를 짓는 것만 같고 마음이 영 안 좋다. 그래. 이런 불편한 마음은 아예 그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 그래. 내 특기. 내가 잘하는 거. 휙! 싹둑! 획! 방향 바꾸기 실시!


오빠~ 걱정하지 마. 이제 마음 다스리기 했어. 사실 그렇게 힘들 것도 없어.
그냥 마음이 많이 울적해져서 어디 풀 데가 없어서 해본 소리야. 파이팅!
하하.. 역시 내 누나야... 꿋꿋하게 열정적으로.... 좀만 기둘려..
내가 가서 누날 도울 테니.. 그때까지만...


(사진:꽃뜰)


나의 훽 마음 돌리기에 캐나다에 사는 남동생이 답을 한다. 힘들다 칭얼대고 나니 마음이 영 그렇다. 사실 그렇게 힘들 것도 없다. 다만 무언가 내가 아닌 허공에 붕 뜬 것만 같은 세월 흐름에 나의 마음이 갈피를 못 잡은 것이다. 밥을 해가서 과일과 함께 밥상에 쫘악 펼쳐놓고 엄마랑 함께 먹는다. 병상 침대 위에 식탁을 펴고 엄마는 긴 쪽으로 난 짧은 쪽으로 마주 앉아 병원 밥과 집밥을 함께 먹는다. 마침 고등어 구이가 나왔다. 지글지글도 아니고 약간 식어빠진. 하하. 고등어구이는 네가 구운 게 훨씬 맛있다. 그렇지 엄마? 병원 반찬 타령을 해가며 나의 반찬을 칭찬해가며 우리의 밥상에선 이야기가 흥미진진이다. 이런 시간을 또 언제 가져볼까. 그래 내가 무어가 힘들고 무어가 바쁘단 말이냐.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


엄마~ 주방장이 정말 좋아하겠다. 식판 완전 초토화야.
이렇게 깔끔하게 싹싹 다 먹을 수 있을까? 하하


그렇게 신나게 밥을 먹고 나면 이제 커피타임이다. 그러나 잠깐!


엄마~ 커피는 양치 후에 깔끔한 입으로.
그치그치 양치질 먼저 해야지.


최화정의 파워 쇼에서 들은 대로 나는 엄마를 이미 오래전부터 무장시켜 왔다. 커피는 양치 후에! 식판을 치우고 식탁을 제자리로 제쳐놓고 붕대 칭칭 감은 한쪽 팔을 조심하며 칫솔 치약 물컵 타월을 들고 링거 꽂은 받침대를 굴리며 엄마를 조심조심 화장실로 모시고 간다. 88세 이 나이까지 충치 임플란트 하나 없어 우리보다 더 갈비를 잘 뜯으시는 엄마. 비결은 바로바로 정성껏 이 닦기인데 그래서인지 꼬박 15분을 닦으신다. 그 긴긴 시간을 기다려 드리고 화장실도 기다려 드리고 마지막에 손을 닦아 드리고 수건으로 물기를 짝 없애드린다. 다시 잘 안 돌아가는 링거 걸이를 끌고 침대까지 모셔다 드린다.


그리고 드디어 커피타임~ 집에서 가져간 믹스커피 두 봉을 들고 탕비실로 직행. 일부러 가져간 예쁜 도자기 컵에 믹스커피를 쏟아붓고 팔팔 끓는 물을 정수기에서 뽑아 부어 조심조심 엄마에게 온다. 아~ 이 기막힌 커피 향~ 커피잔끼리 쨍그랑~ 하하 이런 시간을 기뻐해야지 무어 타령을 하고 있느냐. 내 시간이란 게 무어라서? 에잇 그냥 휙 종잇장 뒤집듯 감정도 그냥 휙휙 바꾸어 버릇하니 쉽게 바꿔진다. 잘했다. 휙휙 좋지 않은 감정은 고민할 것도 없다. 그냥 싹둑 잘라버리거나 종잇장 뒤집듯 훽 바꾸어버리면 된다. 그러면 삶은 또 그렇게 흘러간다. 파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드디어 수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