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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Dec 29. 2020

포항행 기차라니

빨리 내리세요 빨리!


헉! 이게 몬 일? 엄마가 혼자서도 잘 계시게끔 이것저것 챙겨드리고 헐레벌떡 기차역으로 돌진한 나는 들어오는 기차를 탔고 그리고 차가 떠나기까지 좌석에 앉아있었다. 이제 보니 사진에도 찍힌 뻔한 포항행이라는 빨간 글씨가 왜 안보였을까? 그것은 무의식일 게다. 시간에 맞춰 역에 오면 열차는 도착했고 그 열차는 항상 예정대로 떠났으니까. 


가만히 앉아서 열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스튜어디스처럼 머리를 깔끔하고도 예쁘게 올백으로 하고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승무원이 무전기를 들고 오더니 열차표를 보자고 한다. 평상시에 없던 일이라 이게 웬일? 하면서 핸드폰의 표를 보여주니 잘못 타셨어요. 빨리 내리세요 빨리! 하더니 어디로 무전을 넣어 여기 잘못 타신 분 있어요. 하며 큰 일이라도 난 듯 허겁지겁 말하는 게 아닌가. 너무 깜짝 놀라 아니 두시반 기차 맞는데요 물어보니 어서어서 내리란다. 기차가 막 떠나려는 중인가 보다. 승무원이 하도 다급하게 내리라고 해 벗어놓은 옷이랑 가방이랑 정신없이 챙겨 들고 헐레벌떡 일단 내린다. 도대체 왜? 시간은 두 시 반인데? 나의 열차가 떠나는 시간인데? 그리고 보니 열차에선 포항행이라는 새빨간 글자가 반짝반짝 빛나며 움직이고 있다. 난 저걸 왜 못 봤을까? 


플랫폼에 내리고 보니 사람이 꽤 많다. 그리고 나오는 방송. 광명역에서 신호기가 고장 나 열차가 30분 연착한다는 안내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찌감치 역에 도착한 나는 밀폐된 대기실에 들어가지 않고 곧바로 플랫폼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대기 중인 기차가 있으므로 올라탔기에 아무 안내방송도 듣지 못했고 여느 때와 같이 우리 집에 데려다 주려니 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많은 안내를 했을 텐데 난 하나도 듣지 못했을까? 아님 안내가 없었을까? 아니 안내방송이 있었으니 저 많은 사람들이 바로 앞에 있는 이 열차를 타지 않고 있었을 것도 같다. 난 마침 걸려온 친구의 전화로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었던 것이다. 원인은 그것 같다. 내가 안내방송을 전혀 못 들은 것이. 나의 그 역에서의 행동은 거의 루틴과 같기에 안내방송을 들을 필요도 없었고 하던 대로 행했던 것이다. 하. 내참. 


어쨌든 그렇게 30분을 기다렸다. 그리고 새로 도착한 열차를 탔다. 안내방송이 계속 나온다. 지연되어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보상을 해준단다. 역 창구에서도 해주고 코레일 앱에서도 해준단다. 오호? 보상을? 얼마를? 궁금하여 코레일 앱으로 들어가 본다. 나의 페이지를 누르라해서 눌러보나 아무 보상도 없다. 어? 왜 아무것도 없지? 내 거만 빠졌나? 그럴 순 없지. 승무원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보상해준다는데 여기 없네요. 어디로 들어가는 건가요? 물어보니 일단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해야 그 보상이 뜬단다. 도착시간이 얼마나 지연되었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란다. 


하. 그렇구나. 도착해서 재빨리 나의 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세상에 이만 칠천사백 원이나 보상해준단다. 와우. 30분 기다렸을 뿐인데 오만 원 넘는 기차값 거의 반을 보상해준다. 하하 아 요거 괜찮네. 나야 모 집에 가는 거니까 30분 늦으나 마나 별 차이 없어 이만 칠천사백 원이 마치 행운의 돈 같은데 그러나 촌음을 다투어 시간 약속을 한 사람들에겐 참으로 난감한 일이겠다. 


하. 그래도 역에 내리자마자 안내원들이 쫙 깔려 보상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자세히 적힌 안내장을 나누어주고 죄송하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한다. 난 아무 불편이 없었기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게다가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창가 쪽 좌석 하나만 예약을 받기에 옆에 아무도 없이 두 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다만 기차 안에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는 것은 불편한 점이다. 마스크를 꼭 하고 있어야 하고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 점심 먹을 새도 없이 엄마 홀로 지내시기 불편함이 없도록 이런저런 것들을 챙겨드리다 온 나는 배가 고프다. 엄마가 바나나랑 귤이랑 싸주셨다. 요걸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순간에 안내방송이 나온다. 절대 열차 안에서 무얼 먹으면 안 됩니다. 하. 그런데 배가 고프다. 먹을까 말까. 바나나로 쓰윽 손이 간다. 일단 껍데기를 한입 크기만큼만 벗기고 잘라 승무원이 없을 때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한입 쏙 넣고 즉시 마스크를 쓴다. 와우 성공. 푸하하하 요렇게 난 승무원 몰래 바나나 한 개를 야금야금 다 먹는다. 아, 맛있다.


밥도 해서 냉동실에 하나씩 꺼내 드실 수 있도록 해놓고 냉장고에도 꺼내기 편하도록 위치를 바꾸어가며 반찬을 해놓고 엄마 일주일만 잘 견디세요~ 하고 홀아비가 되어있는 남편에게 온다. 동치미를 담그고 나름 살림을 하며 홀로 지낸 서방님. 하하 그렇게 집에 도착하니 사방에 나의 손을 기다리는 일거리 천지다. 와우 난 어쩜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요로코롬 꼭 필요한 존재일까? 하하 피곤하지만 바삐 손을 움직인다. 


(사진:꽃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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