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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an 24. 2021

고기 먹으러 갈까?

고기 먹으러 갈까?


헉. 이게 몬 일. 고기 먹으러? 도 이상하지만 외식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내 귀를 의심하며 다시 묻는다. 뭐라고? 고기 먹으러 가겠냐고? 응? 정말? 왜? 난 도저히 믿기지 않아 다다다다 속사포로 질문을 퍼붓는다. 오늘 무슨 날이야? 아니, 무슨 날이라도 그는 집밥을 고수하는 남자. 외식 자체를 싫어하고 집밥을 즐기는 남자가 느닷없이 나에게 고기 먹으러 가겠냐고 묻는다. 하. 도대체 무슨 일이?


서울에서 고생했으니까 위로해주려고. 


헉. 이 또한 이상하다. 혼자 사시는 엄마의 팔이 부러져 병원으로 어디로 다니느라 내가 요즘 서울로 수시로 다닌 건 맞지만 그래도 그동안 홀로 집을 지키며 그 역시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자기는 세상 편하게 있는데 내가 엄마랑 너무 고생한 거 같아 힘을 주고 싶단다. 금요일 헐레벌떡 내려왔는데 토요일 그가 이른 점심으로 고기를 먹으러 가잔다. 아주 유명한 곳이라 예약이 될까 싶지만 일단 전화해 본다. 두 명도 예약해야 되나요? 예약해야 한다며 11시 20분까지 오라 한다. 오예. 아침을 먹지 않고 이른 점심으로 숯불구이 양념 소갈비에 마지막 냉면까지 세트로 묶여 18,000원인 괭장히 크고 유명한 곳으로 가성비 괜찮다. 냉면 한 그릇 먹으려 해도 거의 만원인데 요거 아주 괜찮아. 했던 집으로 느지막이 일어나 눈곱만 떼고 간다. 우히히 신난다.


둘이만 오니까 여유 있네. 


이 곳엔 항상 어떤 모임으로 왔었다. 부부동반이면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그렇게 뚝 떨어져 앉아 서로 수다에 고기 굽기에 바빴던 곳. 고기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임에서 고기를 먹을 땐 정말 정신이 없다. 그러나 그와 단 둘이 오니 천천히 갈비 한 대씩 올려 이리저리 맛있게 구워 먹으니 한가롭고 참 좋다. 모임에선 굽는 사람만 계속 굽고 먹는 사람만 계속 먹는데 하하 우리 둘 이선 내가 굽는다. 그가 자꾸 가위랑 집게를 빼앗지만 내가 맛있게 구워준다. 


물냉 하나 비냉 하나 그리고 빈 접시요~


물냉도 먹고 싶고 비냉도 먹고 싶은 나는 항상 두 가지를 시키고 빈 그릇을 얻어 서로 덜어주어 물냉도 비냉도 다 맛본다. 그런데 물냉 비냉 그리고 된장찌개가 있어 잠깐 갈등한다. 그래도 여보는 밥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밥 귀신 남편이 그럴까? 살짝 망설이는데 내가 그냥 결론을 내린다. 에이 밥은 뭐 맨날 집에서 먹는데 뭐. 물냉 비냉 먹자. 그래. 그렇게 결론을 낸다. 비냉 물냉이 나오는데 물냉면은 시원하니 정말 맛있는데 비냉은 그게 아니다. 맵기만 하고 맛이 없다. 속이 거북한지 몇 젓가락 뜨다가 그가 멈춘다. 


된장찌개 시킬 걸 그랬나 봐. 물냉 하나 된장찌개 하나. 그랬어야 했네. 


내가 미안해 자꾸 말하니 그도 그게 나았을 것 같다한다. 밥을 그렇게 좋아하는 남편인데 물냉 비냉 다 먹고 싶은 맘에 그냥 밀어붙인 게 영 미안하다. 그럼 된장찌개! 하고 좀 크게 주장하지. 먹다가 멈추는 그를 보니 후회가 마구 밀려온다. 우리 삶에서 선택은 언제고 따라다닌다. 매 순간이 선택이다. 그걸 후회하지 않도록 탁월하게 선택하기란 참 쉽지 않다. 밥! 밥! 그래 그에겐 밥이 있어야 해. 항상 기억하자. 


우리의 오늘은 아주 느긋하다. 밥을 먹고 바로 그 앞에 있는 코스트코로 향한다. 이것저것 냄비도 들여다보고 소파도 들여다보고 온갖 전기 기기들을 들여다보고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중 떨어진 걸 사기로 한다. 이건? 아직 있어. 참자. 그래. 친구가 먹으라고 한 커다란 닭가슴살도 산다. 당근도 사야 하는데. 우아 거의 만원 돈이다. 양이 많다. 둘이 사는 데 그럴 필요 없다. 가는 길에 시장 입구에 잠깐 세워줘. 당근은 시장에서 사자.  


그리고 오늘 밤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임성한의 새 드라마가 정말 오랜만에 시작한다. 인어아가씨니 신기생뎐이니 난 그녀의 드라마를 좋아한다. 막장이니 뭐니를 떠나 일단 TV에서 눈을 못 떼게 한다. 재밌다. 그녀의 드라마가 시작한다기에 여보 나 오늘 9시엔 꼭 TV조선 봐야 해~ 약속해놓고 밤 9시 본방을 기다리는 마음은 정말 즐겁다. 그게 끝나면 강적들을 한다. 하하 즐거운 프로가 줄 줄이다. 괜히 기분이 좋다. 느긋하게 TV프로나 기다리며 비실비실 소파에 뒹군다. 그러다 보니 손이 컴퓨터로 가지 않는다. 할 거는 많은데. 


그 또한 스트레스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려고 생각하면 나야말로 할 거가 정말 많다. 유튜브를 한다고 방방 뛰며 그거 하루도 결방 않겠다고 그러잖아도 무거운 가방에 노트북이며 공책이며 책이며 가득가득 싸들고 서울에 갔던 나. 그러나 엄마와 함께 하니 절대 시간이 나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게 싸들고 왔는데. 방송 한 번 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러나 엄마 냉장고도 정리해드리고 청소도 해드리고 장도 봐다 드리고 이것저것 할 일이 태산이다. 가만히 앉아 방송을 할 여유가 없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내가 지금 유튜버로 떼돈을 벌 것도 아니요 호기심 천국으로 시작한 건데 스트레스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되지. 욕심부리지 말자. 시간이 될 때 마음이 내킬 때 하면 된다. 끝까지 NTL NNQ만 부르짖으면 된다. 아무리 늦었다고 생각되어도 NTL  NEVER TOO LATE!  NNQ  NEVER NEVER QUIT! 그래. 이거면 된다. 그것만 맘속에 지니고 있으며 느긋하게 시간 될 때 하자. 남편과 노닥거릴 땐 이거 저거 다 잊고 그렇게 마냥 노닥거려도 된다. 그래도 세월은 흘러간다. 두둥실 두리둥실 흘러가는 대로 놔두면 된다. 편안하게 게으름도 즐겨가며 그렇게 가자. 파이팅!


(사진:꽃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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