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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Feb 03. 2021

일천 번째 글

문득 나의 브런치를 보니 지금까지 발행한 글의 숫자가 999라 적혀있다. 999 무언가 말을 해줘야 할 것 같다. 1,000이라고 찍히게 되는 글은 매일 쓰는 것들과는 달라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무작정 일천 번째 글이라 제목을 적어놓고 쓰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 남편과 함께 백화점에 다녀왔다. 모처럼 중국집에 들러 짜장면과 짬뽕도 먹었다. 우리 집 믹스커피 바리스타 남편은 지금 커피를 타고 있고 나는 일천 번째 글을 두들기고 있다. 아무리 추워도 환기의 귀신인 남편은 오자마자 집안 모든 창문을 서로 맞바람 치게 뒷베란다 앞 베란다 활짝 열어놓고 환기 중이다. 으이그 바람 차네. 그래도 참아야 한다. 옷을 입어. 하고는 막무가내로 하루 몇 번씩 그는 온 창문을 활짝 활짝 다 열어젖힌다. 휘잉휭 앞 산에서 서늘한 바람이 우리 집 따뜻한 공기를 다 밀어낸다.


우리가 왜 백화점에 갔느냐. 어느 순간부터 백화점 가는 게 절로 뜸해져 거의 백화점에 안 가는데 오늘 왜 갔느냐. 하하 드디어 중국어 수업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전에부터 그렇게 중국어 타령을 한다. 자연을 좋아하는 그는 중국 장가계 관광에서 뿅~ 가더니 여행하면 중국의 기막힌 풍경을 최고로 꼽는다. 그래서 우린 중국에 자주 갔다. 그러면서 내가 태국어를 탐하듯 남편은 중국어를 탐하게까지 되었다. 백화점 문화센터~ 쉽게 신청했으나 입문반은 많지가 않다. 거의 일 년 전에 시작했지만 첫 수업을 듣고 나면 꼭 전화가 온다. 인원수가 안되어 강의가 취소된다고. 그렇게 3개월마다 딱 한번 씩만 수업하고 수업료를 되돌려 받고 또 삼 개월 있다 신청하고 한 번 듣고 다시 취소당하고 수업료 되돌려 받고 기다리고 삼 개월 후 다시 신청하고. 하하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오늘 드디어 우린 수업을 하게 되었다. 여전히 완전 처음 시작하는 입문반은 우리 둘 뿐이지만 선생님 수업이 그 앞에 있어 나온 김에 수업을 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 첫 수업을 했다.


우리 아들 나이 또래의 예쁜 중국인 아가씨가 선생님이다. 세상에 수업하며 들으니 그 어려 보이는 아가씨가 애가 둘이란다. 한국에 온지는 11년 되었다는데 한국어는 아주 많이 서툴다. 중국어는 배울수록 쉬워요 한국어는 배울수록 어려워요. 한국어가 서툰 이유를 그렇게 말한다. 그래도 얼마나 열정적으로 가르치는지 남편과 나는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 아주 열심히 공부했다. 접수하는 분이 우리 둘 뿐이라고 했는데 한 분이 더 있었다. 내 나이 또래의 여자분이다. 옛날에 했기 때문에 앞의 중급반을 신청했는데 깡그리 잊어 너무 어려워서 입문반부터 다시 해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반엔 세명의 학생이 수업을 듣게 되었다. 목청껏 소리치며 중국어 성조와 발음을 익혔다.


남편과 나는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밥 먹으며 TV 드라마를 보고 미스 트롯을 보고 영어공부를 하고 이제 중국어 공부도 한다. 난 태국어를 하니까 안 해도 되지만 의리상 남편과 함께 한다. 남편은 혼자 백화점 문화센터 같은 곳엔 죽어도 못 가는 캐릭터니까. 당당하게 내가 헤치고 나가 등록해주고 드디어 수업을 받게끔 만들었다. 남편은 왜 그렇게 소극적일까? 영어도 가만히 있으면 다 잊겠지? 하면서도 그냥 가만히 있는다. 내가 효과 좋다고 전화영어를 무료 테스트받게 해 레벨을 받고 등록시켰다. 그렇게 밥상을 잘 차려주어야만 겨우 숟가락을 뜬다. 내키지 않아 하던 그도 이젠 일주일에 두 번씩 오는 젊은 원어민 선생님들의 전화를 즐겁게 기다리는 듯하다. 이제 중국어도 시작이다. 의리의 내가 함께 예습하고 복습한다. 하고 싶다면 어떻게든 뒤져 일단 시작하지 그냥 마음만 있을까? 그렇게 우린 생각과 행동이 아주 다르다. 난 일단 저지르고 본다. 그는 신중 신중 또 신중 하하 그러나 내겐 게으름으로 보일 뿐이다. 푸하하하 어쨌든 한가로운 겨울 한낮에 우린 함께 학생이 되어 중국어 수업을 하고 왔다.


가끔 그는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이 인생 최고 행복인 것 같다고. 맘껏 게으를 수 있고 맘껏 하고픈 것 할 수 있어서란다. 웬만한 것 다 내려놓고 그냥 따뜻한 햇살 아래 여유롭게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그는 행복이라 말한다. 아등바등할 것도 안달을 떨 것도 없다. 그러려니~ 하고 내일 무슨 걱정이 닥치면 그때 걱정하고 오늘 이 순간은 그냥 그렇게 즐겁잔다. 하하 천 번째의 글은 이렇게 남편과 나의 중국어 첫 수업을 기념하게 되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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