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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r 28. 2021

89세 엄마 피부관리

우리 엄마는 젊을 때 정말 미인이셨다. 어디를 가건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엄마가 너무 예쁘시다고. 어린 내가 보기에도 우리 엄마는 참 예뻤다. 89세이신 지금도 참 고우시다. 나이를 듣고는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70인 줄 알았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게다가 주민등록증이 93세로 되어있으니 병원에선 의사도 간호사도 수술 침대 이동자도 깜짝 놀란다. 환자 바뀐 거 아니냐고. 하하 은근히 그런 감탄을 즐기는 듯도 한 우리 엄마. 나는 안다. 엄마의 최고 관심사는 미용이라는 것을. 피부관리를 받고 싶으실 게다. 그러나 엄마는 말한다. 


아이 내 나이에. 90 다 된 노인이 무슨! 사람들이 웃을 걸. 
엄마 그런 게 어딨어. 자, 나랑 같이 가요!


엄마 손을 꼭 잡고 집 앞의 많은 피부관리실을 하나하나 들어가 보기로 한다. 엄마 맘에 꼭 드는 곳이 나올 때까지. 집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고 앞에 있는 빌딩에 혹시 피부관리실이 있는가 본다. 오호 두 개나 있다. 그래. 저곳을 가보자. 엄마 함께 가서 보고 맘에 드시면 이야기하세요~ 그런데 두 개 모두 2층이다. 갑자기 계단이 겁나시는 가 보다. 


나 여기 앉아있을게 다녀오렴. 계단은 무서워. 
넵 알겠습니다. 여기 꼼짝 말고 계세요. 누가 맛있는 거 사준다 해도 따라가지 마세요. 


푸하하하 실없는 농담으로 엄마 얼굴에 웃음이 활짝 피게 해 놓고 다다다다 2층으로 달려간다. 무언가 세련되지 않은 아주 옛날 이발소 입구 같은 모습의 피부관리실. 똑똑. 반응이 없다. 벨이 없나? 이리저리 둘러보며 문을 힘껏 돌려 열어본다. 안 열린다. 그렇게 헤매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피부에서 광택이 반짝반짝 나는 머리를 뒤로 꽉 묶은 40대? 50대? 쯤의 날씬한 아줌마가 나타난다. 


아, 피부관리받으려고요. 
예약하고 오셔야 합니다. 


오홋. 사람이 많은가? 상담 좀 하겠다며 일단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무언가 지저분하게 방 안이 짐들로 꽉꽉 차 있다. 침대가 세 개 있고 거기 한 침대에 누군가 누워 얼굴 한가득 팩이 발라져 가면을 쓴 것 같은 모습이다. 이 분 혼자 팩을 바르느라 당장 나의 문 두들김에 반응할 수 없었나 보다. 혼자 할 수 있는 딱 한 명씩만 예약으로 받는 체제인가 보다. 


아, 네. 지금 당장 아니고요 알아보려 왔어요. 


해놓고 실은 89세 우리 엄마가 받으시려 한다며 지금 밑에 벤치에 앉아 계신다 하니 혼자 오실 수 있겠냐며 지금 팩도 다 발라 시간이 있으니 함께 어머니께 가보잔다. 오홋. 이렇게 친절할 수가? 앞치마를 두른 채 그녀는 나를 따라 엄마가 앉아계신 길가 공원 옆 벤치로 간다. 얌전히 엄마는 앉아계시다. 


엄마, 피부 관리하는 분이어요.
안녕하세요? 아니 89세라고요? 70대로 밖에 안 보여요. 와우.


90 다 된 노인이 혼자 오실 수나 있으려나 걱정되어 내려와 봤는지 얼마든지 혼자 오실 수 있겠다며 일단 예약을 잡고 피부관리를 받으시라 한다. 이따 엄마랑 올라가 보겠다고 말씀드리고 헤어진다. 기왕 알아보러 맘 잡고 나온 것. 이 상가에 있는 피부관리실은 다 돌아봐야 할 테니까. 하하 그래도 어르신네 힘드실까 봐 일부러 내려와 준 그녀에게는 참 감사하다. 별 일 없으면 꼭 그분께 가야겠다. 


벤치에서 한참을 쉰 엄마는 얼마든지 잘 걸을 수 있겠다 하신다. 넵. 그러면 저 피부관리실에 함께 가 봅시다. 하고는 엄마 팔을 단단히 붙잡고 엘리베이터를 향한다. 다만 한 층이라도 계단은 두려우신가 보다. 내가 엄마 팔을 꽉 붙잡고 가니 엄마가 팔을 빼신다. 왜?


내가 너를 붙들어야지 네가 내게 매달려서야 되겠느냐. 


푸하하하 그런가? 내가 매달린 꼴인가? 그래요. 엄마. 나를 단디 잡으세요. 엄마에게 팔을 내어드리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뚜벅뚜벅. 그녀가 나왔던 바로 그곳을 향해 간다.  


엄마 여기 오는 길을 잘 기억해두세요. 이 한가운데로 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서... 
글쎄. 너만 졸졸 따라다녀서 찾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이 엄만 그런 게 어딨어. 못 찾긴 왜 못 찾아. 
요즘 엄마가 그래. 


그렇게 그곳에 들어가려는데 그 바로 옆에 또 피부관리실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아니 이렇게 바로 옆에? 엄마 우리 이따 저기도 들러봐요. 살짝 귀엣말을 한다. 그래그래. 드디어 1층까지 내려와 준 그녀의 피부관리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무언가 침대 세 개인 그 방은 매우 어수선하다. 무슨 짐이 이렇게 많을까? 워낙 깔끔한 우리 엄마가 맘에 들어하시려나? 


아니나 다를까 상담을 마치고 전화드리겠다 하고 나오는데 너무 산만하고 아주 깔끔해 보이지는 않으니 다른 곳도 알아보자 하신다. 넵. 암요. 단번에 정할 수는 없지요. 바로 옆에 있던 피부관리실 문을 두드린다. 여기 역시 한참만에 문이 빠끔히 열리며 나이 든 별로 깔끔해 보이지 않는 여인이 나온다. 막 식사를 끝냈는지 김치며 반찬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 모야. 아까보다 더 지저분하네. 그런데 이 주인. 당장 받아보란다. 자기네는 다른 곳과 달리 혈을 짚어가며 하기에 어르신네들에게는 딱이라며. 지저분한 게 좀 꺼려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있을 때 엄마가 한 번 받아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그래 엄마 일단 받아보세요. 


일회용 회비만 내고 받기로 한다. 그럼 엄마 잘 받으시라며 나왔지만 어째 영 찜찜하다. 일단 너무 지저분하다. 아줌마도 전문가 같지 않고 말로만 어쩌려는 분 같다. 그러나 딱 일회 분만드리기로 했으니 경험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엄마가 관리받는 동안 난 또 다른 피부관리실이 있는지 빌딩을 샅샅이 뒤져보기로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오니 앗 일층 한가운데 피부관리실이다. 아까는 왜 못 봤을까? 그런데 문이 닫혀있고 전화번호만 있다.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하니 지금 잠깐 나왔는데 곧 오겠단다. 조금 있다 헐레벌떡 달려오는 분. 젊은 아가씨~ 는 아니고 젊은 새댁이다. 89세 어머니의 피부관리를 위해 상담 왔다고 하니 우리 어머니가...로 시작되는 그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지방에 계시는 어머니를 자기 집으로 모시고 왔단다. 갑자기 치매가 오셔서. 젊은 나이인데 에구. 


앉아있는데 계속 은은한 향내가 난다. 마사지실을 보여주는데 아주 깔끔하다. 지저분한 짐들이 없다. 그래 딱이다. 젊은 새댁이 힘차게 잘할 것 같다. 서글서글하니 말도 잘한다. 볼수록 무척 깨끗하다. 더 망설일 것 없다. 10회분을 즉각 결제한다. 그래. 바로 이 곳이야. 


제가 여기서 한 지 10년쯤 되는데 저희 샾 오픈 이래 최고령자십니다. 


하하 그렇다. 우리 엄마는 최고령자다. 일부러 엄마 계신 곳까지 내려와 준 분께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난 이 깔끔한 곳이 좋다. 엄마가 깜빡 잘하시니 꼭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네~ 저의 어머니처럼 잘 돌봐드리겠습니다. 


젊은 새댁은 말도 내 맘에 꼭 들게 한다. 아 좋다. 엄마는 일주일마다 미인이 되실 것이다. 이제 정했으니 지금 마사지받고 계신 곳으로 가자. 많이 지저분한 곳. 2층으로 올라가 그곳에 들어가니 아직 누워서 마사지를 받고 계시는데 주인과 끊임없이 대화중이시다. 끝나기를 기다려 하루치만 결제한다. 엄마도 그 젊은 새댁을 훨씬 좋아하시리라.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끝도 없이 말을 시키더라. 무언가 지저분해. 하하 불만이 쏟아진다. 1층 젊은 새댁에게 모시고 간다. 그녀 역시 깜짝 놀란다. 앗, 우리 가게 최고령자 시라 아주 할머니일 줄 알았어요. 어쩜 이렇게 고우세요? 젊은 새댁은 엄마가 좋아할 찬사를 마구 쏟아낸다. 하하 엄마가 환하게 웃으신다. 푸하하하  


참 깨끗하네~
그렇죠 엄마? 이제 매주 수요일은 여기 오시는 겁니다.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 것 아닐까. 더 이상 미에 관심이 없을 듯한 89세 엄마가 피부관리 등록에 기뻐하신다. 역시 엄마는 여자. 몇 세가 되어도 엄마는 여자. 아름다워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이시다. 그 마음을 충족시켜드렸다. 잘했다. 하하                                                                                                                                                                                                                         


(사진:꽃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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