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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pr 29. 2019

은퇴한 남편과 24시간 함께

토닥토닥 싸움도 해가며 제2의 인생 시작 완전 다른 삶

흥! 내가 칵 죽어버리면 그게 행복이라고? 흥

그게 아니잖아. 말꼬리 잡지 마.


그렇다. 어쩌면 말꼬리 잡기 인지도 모른다. 새벽 두 시 넘어서야 잠자리에 든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렇게 되어버렸다. 왜 2시까지 있었느냐? 저녁 부부 모임에 갔는데 여자들은 모두 대화의 희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텔레비전 예능프로를 잘 안 보는 우리 집이라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른다. 안 되겠다 싶어 정확히 프로그램 명과 방송국 명 등 여러 가지를 묻는 내게 알쓸신잡에 나왔던 사람들이 하는 거라며 누구도 나오고 누구도 나오고 등등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알뜰신잡? 그것도 모르는데? 알뜰이 아니라 알쓸!!! 해가며 어떻게 그걸 안 볼 수가 있냐는 원성을 바가지로 듣는다. 음 꼭 챙겨봐야겠구나.  


여보 이거는 꼭 봐야 한대. 정말 정말 재밌대. 특히 배철수와 유시민 편은 꼭 보래.


TV 다시 보기에서 이 프로그램을 찾아놓고 남편을 TV 앞에 앉힌다. 배철수 편을 먼저 튼다. 처음에는 방송 진행 따라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빠져드는 가 싶더니 조는 것도 같더니 결국 자기 방으로 간다. 그런데 난 자정이 넘어가도록 배철수 편에 이어 유시민 편까지 주야장천 보고 있다. 늦었다. 어서 자자. 하는 남편 말에 흥! 콧방귀도 안 뀐다. 같이 보자니까 우쒸!  눈도 마음도 몸도 TV 고정! 꼼짝을 안 하며 마냥 시간을 흘려버린다.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며 우리 서로 스트레스 주지 말기. 자기 좋아하는 거 하기. 모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함께 끝까지 TV를 안 본 남편에게 무언가 꽁했던 나는 자꾸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스트레스 주면 나 자다가 칵 죽어버릴지도 몰라. 그랬는가 보다. 거기 응답이 그렇게 죽을 수만 있다면 그건 행복이지. 아마 그랬을 게다. 그런데 난 그걸 꼬투리 삼아 심통을 부린다. 흥. 모? 내가 칵 죽어버리면 그게 행복이라고? 흥흥흥 그게 아니잖아. 아무 고통 없이 갑자기 죽을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라는 거지. 안다 알아. 무슨 뜻인지 알지. 그러나 나는 지금 심통 중. 흥. 같이 TV 보자는데 그렇게 들어가 버린단 말이지? 흥흥흥. 말에선 남편이 나를 이길 수 없다. 그걸 아는 나는 그렇게 가끔 홱 돌변하여 흥흥흥 흥체피를 날린다.  


남편이 은퇴하고 우리에겐 새로운 패턴이 생겼다. 밥은 식탁이 아니라 꼭 밥상에 차려 둘이 맞잡아 들고 거실로 와 커다란 TV 앞에 내려놓고 바닥에 앉아서 먹는다. 그때만은 드라마 보기. 그래서 장르별 방송국 별 TV 드라마를 찾아 순회하고 괜찮다 싶으면 일단 제1편을 본다. 우리를 사로잡으면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드라마를 보며 밥을 먹으면 정말 많이 먹게 된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니까. 그러나 그 시간이 너무 즐겁다. 그렇게 과식을 하고는 너무 힘들어 조금 있다가 치우자. 그대로 둘이 퍼져 있다. 그러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커피 타오고. 그렇게 TV 드라마를 밥 먹을 때만은 함께 즐기는데 남편은 적당한 선에서 끝을 낼 줄 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안된다. 일단 보기 시작하면 그냥 주야장천 TV 앞에 고정되어있는 것이다. 과자도 그렇다. 어떤 과자 봉지를 뜯었다 치자. 난 그 봉지 끝장을 보아야만 하는데 남편은 적당히 먹고 끝낼 줄을 안다. 난 그게 안된다. 하이고. 그렇게 드라마는 어떻게 둘이 취향이 맞는 걸 잘 찾아내 함께 보는데 예능은 꼭 그런 건 아닌가 보다.


오늘도 절제가 안된 나는 심통이 얹어지며 새벽 2시 넘어 까지 꼼짝 않고 TV를 보다 남편 성화에 겨우 잠자리에 들게 된 것이다. 절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스트레스로 이어지며 어떻게 그렇게 나의 심통으로 빠지게 된 것이다. 착한 남편은 그런 나를 다 받아준다.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게 그렇게 온갖 사소한 것에 싸움을 걸며 나는 리타이어 맨이라는 남편의 은퇴 후 생활을 그런대로 적응해 가고 있다. 매일 집에서 나가던 사람과 단 둘이 24시간 함께 지내기 이거 보통 일 아니다. 그래도 자꾸 서방님을 괴롭히지 말자. 하 정말 별것도 아닌데 우린 또 싸울 뻔!!! 했다. 그래도 마무리는 우리 함께 잘 살자 파이팅! 했으니 다행이다.


아침잠이 많은 남편은 아직 쿨쿨이다. 그가 깨기 전 좋아하는 많은 걸 해놔야겠다. 그냥 이렇게 적고 보니 내가 참 나쁜 여자 같고 착한 남편에게 더더욱 잘해주어야지 하는 생각이 퐁퐁 든다. 그가 막 웃게 해야겠다. 매 순간이 행복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겠다. 글은 이게 매력이다. 쓰다 보면 그냥 마음이 다 평온해진다. 하하 그렇게 새 날 새 주일을 기쁨으로 감사로 사랑으로 시작하리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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