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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ug 05. 2021

밭농사

요즘 우리는 넷플릭스 삼국지에 빠져있다. 중국에서 만든 드라마인데 재밌다. 마침 삼고초려로 제갈공명을 불러오는 그 장면이라 조금만 조금만 더 하다가 세상에 새벽 2시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늦잠을 각오했지만 7시에 눈이 반짝 떠졌다. 그래서 화장실을 갔는데 습관적으로 들고 간 핸드폰에 톡이 온다. 오잉? 이 아침에? 후배 S다. '언니 오고 있수?' 앗! 앗앗! 앗앗앗! 오늘이? 수요일! 하이고. 지난주 우린 철떡 같이 약속했었다. 날이 더우니 수요일 새벽 5시에 각자 집에서 출발하기로. 그게 이제야 생각나다니? 하이고 아. 이를 어째. 전화를 돌린다. 어떡하냐. 지금 일어났다. 까맣게 잊었어. 언니! 전엔 잘 기억하더만. 일부러 부담 주는 것 같아 전화 안 했는데! 하는 게 아닌가. 막걸리만 한 병 사들고 와. 해서 우리는 부리나케 일어나 세수만 하고 커피랑 막걸리를 사서 밭으로 향했다. 하이고 오오오 미안해라. 해는 이미 그 열기를 쏟아내고 있다.


도착해보니 고구마밭에서 김을 매고 있다. 서둘러 합류한다. 우리의 아이디어가 성공이다. 파란 그물망을 쳐놓았더니 새들이 하나도 건드리지 못했다. 사과가 온전한 모습으로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작년 이맘때쯤엔 모두 새들에게 헌납되고 멀쩡한 사과가 하나도 없었다. 사과나무는 흡족한데 주위를 둘러보니 그야말로 풀천지. 싸악 베았었는데 한 삼주만에 우아 그 풀들은 그때보다 더 크게 자라 우리 키를 넘는다. 세상에 나무도 아닌 풀이! 호박은 간간이 잡초 사이에서 잎이 보일 뿐 열매를 찾기란 그야말로 보물 찾기다. 울타리를 치고 고구마 두 단을 심어놓은 곳 조차 풀로 뒤덮여있다. 그 풀들을 새벽에 온 후배 S부부는 몽땅 뽑아놓고 있었다. 아, 미안하고 고맙고. 우리가 가져간 막걸리와 커피와 함께 그녀가 싸온 것들로 일단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우리가 할 일, 고구마 순 굵은 걸로 따기.


여자들은 고구마 밭으로 들어가 고구마순을 잘라 가방에 넣었고 남자들은 맛있게 열린 사과들을 솎아내기도 할 겸 작년을 보면 혹시 수확을 못할까 보아 일단 챙겨 먹기로 해서 사과를 땄다. 땡볕이라 조금 뽑았을 뿐인데 얼굴은 땀범벅이 된다. 그만 그만~ 모든 일을 쉬고 우린 커다란 나무 아래 모인다. 그리고 우리가 뽑은 고구마순을 몽땅 돗자리에 쏟아낸다. 그치. 집에서 버리려면 음식물 쓰레기도 대단한데 여기서 합시다. 해서 후배 S, 그녀 남편, 나의 남편 그리고 나 네 명은 커다란 나무 아래 솔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모두 고구마 순에 매달렸으니 집에서 그렇게나 힘들던 껍질 벗기기가 여기선 잘도 된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 두둥실 깔깔 푸하하하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에 그 힘든 일이 하나도 힘들지 않게 어느새 끝난다. 그렇게 뒤늦게 합류하여 반찬거리를 한 아름 해왔다. 이 고구마순에 싱싱한 고등어 넣고 조려 먹으리라. 엣 헴.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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