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미국에 사는 오빠가 엄마 집에 왔을 때 나에게 물어봤다. '내부자들' 영화를 꼭 보고 싶은데 어떡하면 되냐고. 그래서 어디 가서 어떻게 보라고 알려줬는데 엄마도 모시고 간단다. 80대 후반인 엄마가 그걸 다 이해하실 수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그렇게 엄마랑 점심도 먹고 극장 데이트를 하겠단다. 후에 물으니 세상에 오빠 걱정과는 달리 엄마는 지루해하시긴 커녕 끝까지 아주 잘 보셔 그야말로 멋진 데이트가 되었단다. 그러나 오빠의 이해가 좀 어려울 거라는 말 때문이었을까? 그 영화를 나도 보겠다고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다. 그러다 오늘!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다 문득 그 제목이 눈에 들어왔고 오빠의 그때 엄마와의 멋진 데이트가 생각났다. 오빠가 꼭 보고 싶어 했던 영화야. 엄마도 아주 재밌게 보셨대. 꽤 유명한데 우리 아직 안 봤네. 여보 우리 이거 볼까? 단편 소설보다는 길고 긴 장편 소설 좋아하듯 단편 영화는 싫다며 길고 긴 시리즈물만 즐겨보는 남편이 오호 오케이! 채널 고정. 뒹굴뒹굴 은퇴한 남편의 게으른 평일 오후. 빵도 굽고 커피도 타 와 자리 잡고 본격 보기 시작한다. 앗. 앗앗. 재밌다. 시작부터 너무 재밌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다 나온다. 이병헌 조승우. 조연급 배우들도 아주 연기파들. 오홋 재밌네. 폭 빠져서 본다. 손을 자르는 장면 등은 너무 잔인하지만 그래도 쫄딱 망한 깡패와 줄도 빽도 없는 검사가 하나 되는 과정이 훈훈하다. 드디어 한바탕 승리할 땐 절로 박수가 나올 지경이다. 아우 통쾌해. 하하. "밥은 꼭 먹고 다녀!" 꾀죄죄한 서점 골방 깡패 부하 아버지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 의리와 정이 넘치는 깡패, 정의감 넘치는 검사. 아, 저렇게 마음이 통할 사람 하나만 있으면 세상은 외롭지 않다. 그 어려운 중에도 곳곳에 튀어나오는 유모어들. 씨익 웃어버리는 여유. 아, 정말 잘 만든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