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만 아니면

by 꽃뜰

아무리 바빠도 밥 먹을 땐 드라마~ 하하. 그 선택권은 나에게 있으니 넷플릭스에서 골라놓으면 아주 싫지 않는 한 그는 본다. 그렇게 골라낸 게 '바람이 분다'. 김하늘 감우성 배역이 좋다. 처음엔 그냥 그저 그런 드라마인가 보다 하고 보는데 앗 그게 아니다. 세상에. 이 남자가 치매라니? 이 젊은 남자가? 시들시들 맥없이 가다 우리를 팍 끌어당기는 전환. 삼십 대 후반의 너무 사랑해서 결혼한 젊은 부부인데 남자는 아기가 뭐 필요하냐며 절대 안 갖겠다 하고 여자는 아기를 꼭 가져야만 하겠다 한다. 왜 그럴까? 왜 아기를 안 가지려 할까? 에고. 그 젊은 남자에게 알츠하이머, 치매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짐 되는 게 싫어 자기가 치매라는 사실도 숨기고 막무가내로 아기를 안 가지겠다고 한다. 여자는 아기를 안 가질 거면 이혼하자 하다 결국 이혼한다.


모 그렇게 진행이 되는데. 음, 본인이 치매라는 사실을 숨기고 남자는 그녀가 정을 떼도록 그렇게 모질게 몰아간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공주처럼 잘 모시겠다더니 이것저것 잔소리만 늘어가는 남편이 영 이해가 안 된다. 그렇게 진득한 남자의 사랑이야기가 아름답게 펼쳐지는데 우리는 조금만 보고 꺼야 했다. 일을 해야 했으니까. 아, 그리고 그 남자 주인공에게는 어릴 때부터의 친구가 있는데 그들의 우정도 멋지다. 그런 친구 하나만 있어도 이 세상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무사히 김치를 다 담갔고 화장실이며 거실이며 청소도 후다다닥 해치우고 손님을 맞았다. 밤 10시가 넘도록 많은 이야기를 했다. 옥계 계곡으로 일박이일 캠핑을 다녀오자는 신나는 이야기를 한참 쏟아놓고 그들은 퇴장했다. 퇴직한 그들 중 한 명이 캠핑카를 만들었고 그걸 타고 계곡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오자는 것이다. 회도 먹고 돼지고기도 먹을 거다. 이미 여행을 떠난 듯 우린 들떴고 신났다.


늦은 밤 그들이 떠나고 나니 무언가 허전하다. 잔뜩 먹어 배는 부르지만 그래도 식사는 아니지 않은가. 라면 끓여먹을까? 아니 어제 사온 코다리냉면! 그래 그게 좋겠다. 밤 11시가 넘었는데 우리도 참. 냉면이라니. 거실에 크게 펼쳐져있는 방금 전까지 왁자지껄 떠들며 먹던 흔적 위에서 남편과 나는 코다리 냉면을 먹는다. 맛있다.


그런데 한밤중에 꾸역꾸역 먹었더니 아침까지도 속이 더부룩하다. 요런 느낌은 참 싫다. 16시간 공백일 때는 쏙 들어간 배와 함께 무엇이고 할 수 있는 자신감이 퐁퐁 솟았는데 지금은 영 아니다. 이 기분이 이어지면 나쁘다. 자학으로 빠지려는 마음을 붙들어 매야 한다. 그거 하루 못했다고 큰일 나는 거 아니다. 다시 하면 된다. 포기만 아니면 돼! 그래 바로 요거. '난 아무것도 몰라요~ 7시 이후에 안 먹을 뿐야요~' 지금까지 잘 해왔고 잘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아!


(사진:친구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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