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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Dec 27. 2021

90세 엄마 홀로 기차 여행

우리나라 좋은 나라~

젊어 보이고 예쁘세요~


얼떨결 나온 나의 대답에 깔깔 나도 웃고 그녀도 웃었다. 그녀는 KTX 행신역 직원이다. 90세 어르신께서 혼자 여행하시는데 혹시 도움받을 수 있을까요? KTX 고객센터에 문의하니 친절하게 알려주었고 하라는 대로 신청을 하니 보호자로 등록된 나에게 행신역에서 전화가 왔던 것이다. 엄마의 인상착의를 묻는 그녀에게 앗 울 엄마가 무슨 옷을 입으셨을까? 어떻게 말해야 하지? 하다가 나온 말이다. 나도 참. 네. 일단 나가볼게요~ 어설픈 나의 답에도 끝까지 명랑한 그녀. 하하  감사합니다~

어떻게 딱 알아보더라.


행신역에 도착하자마자 안내를 받은 엄마가 감탄하신다. 연식이 오래된 나는 내 카카오 택시 앱으로 먼 곳의 엄마를 태울 수 있다고는 생각 못했다. 그래서 대곡역에서 내려 경의선을 타고 행신역 가기까지 몇 번을 엄마에게 주입시켜드렸다. 앱 없이 택시 잡기가 얼마나 힘든지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떠나기 직전 교통카드가 없다는 게 아닌가. 코로나 때문에 안 다녀서인지 아무리 찾아도 없단다. 교통카드가 없다면 보증금 돌려받고 어쩌고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엄마 좀 더 찾아보세요~ 했으나 끝내 못 찾았고 난 카카오 택시를 부랴부랴 어떻게든 해봤던 것이다. 출발역은 당연히 내가 현재 있는 곳에서만 가능한 줄 알았는데 이리저리 눌러보니 오호 출발역을 달리 할 수 있다. 아하.

엄마~ 택시를 집 앞으로 보내니 걱정 말고 내려가세요~


앞에? 긴가민가 하며 내려가셨다는 엄마는 문 앞에 딱 서있는 택시에 놀라고 너무 좋은 기사님에 놀랐단다. 게다가 행신역에 도착하자마자 단정한 제복의 예쁜 아가씨가 어떻게 딱 알아보고 열차 안 엄마 자리까지  안내해주었다며 우리나라 좋은 나라~ 가 연방으로 터져 나온다. 하하 네~ 우리나라 좋은 나라~ 나도 덩달아 기쁘다.  

이번에 신경주역이라는데 여기 내리는 거 아니지?
아, 네. 절대 거기 내리시면 안 돼요. 그다음 역이어요.


잘 오시고 있는지 남편은 자꾸 전화해보라고 한다. 조용한 열차 안에서 따르릉 전화벨 울리고 전화받고 갑자기 시끄럽게 되는 런 상황이 얼마나 당황스런지 잘 아는 열차 베테랑 나는 노노노! 무소식이 희소식이야. 딱 잘라 거절하는데 계속 다그치더니 이제 내 준비 하라고 전화드리란다. 앗. 그치.  말은 필요하겠다 싶어 전화를 드렸더니 동대구역을 출발했다 하신다. 그다음 역에 내려야 하니 준비하시라고 단단히 말씀드렸던 것이다. 대개 동대구 다음이 울산역인데 아뿔싸! 중간에 신경주 역을 들르는 열차였던 것이다.

거봐 전화 안 드렸으면 승무원이 알아서 챙겼을 텐데.


혼란만 드린 것 같아 전화하라 재촉한 남편에게 툴툴댄다. 클날 뻔했잖아. 그래도 신경주역이라고 내리지 않고 전화를 주시다니 90세 우리 엄마 정말 세련이시다. 울산역에 도착한  우리는 차가 워낙 많아 주차할 엄두도 못 내므로 남편이 주변을 돌기로 하고 나만 내려 후다닥 열차 서는 곳으로 달려간다. 꼼꼼히 묻는 KTX 고객센터 전화 속 직원에게 휠체어 필요 없어요. 행신역에서 좌석까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혹시 내리는 곳을 지나칠지 모르니 승무원 내리는 곳만 챙겨주니다. 내려서는 제가 마중 나가니 전혀 도움 필요 없어요라고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인데.


그런데 6호차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휠체어. 혹시? 아이 그럴 리가. 다른 불편한 분이 있는가 보군. 우린 휠체어 필요 없다고 분명히 말했는 걸. 그런데 하필 6호차? 혹시? 아이 그럴 리가 없어. 드디어 열차 도착. 사람들 속에 파묻혀 우리 엄마가 내린다. 크리스마스라서 일까 정말 사람 많다. 엄마~


그런데 이상하다. 승무원은 6호차 끝부분에서 내리고 엄마는 6호차 앞부분에서 내리신다. 모지? 휠체어는 빈 그대로다. 휠체어를 몰고 온 직원과 열차 승무원이 의아해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다. 앗. 그럼 우리 엄마 때문에? 열차도 떠나고 승무원도 떠나고 사람들도 떠나고 텅 빈 플랫폼에서 직원이 엘리베이터에 빈 휠체어를 싣는다. 함께 따라 탄다. 혹시... 물어본다.

노인 분 부축 필요하다고 연락받아서요.


앗? 그렇다면 우리 엄마를 위한 거란 말인가. 아니 그렇게 친절하게 묻고 또 묻던 전화 속 직원은 어떻게 전달한 걸까? 괜히 휠체어가 동원되고 정작 도움받아야 할 내리는 곳 기기는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난 다시 엄마에게 묻는다. 정말 승무원이 안 왔냐고.

아니, 아무도 안 왔어.


그래도 여행 오랜만에 정말 잘했다는 엄마. 그런데 어디서 착오가 생긴 걸까. 빈 휠체어를 밀고 가는 그분에게 괜히 미안하다. 의사소통에 착오가 있었나 봐요. 저는 분명히 휠체어 필요 없다고. 또 여긴 제가 있으니 안내 필요 없다고 말했거든요. 그분이 웃는다. 정말 이하다. 어디선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만 빼면 90세 울 엄마 홀로 기차 여행! 정말 완벽다.


(사진: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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