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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r 01. 2022

똥꼬 수술 1

난 내가 치질이라곤 생각도 안 했다. 항상 똥이 가늘게 나오고 물 설사를 주로 하기에 장에 이상이 있나 했다. 의사 선생님은 굵은 똥 누기가 너무 힘드니까 내 몸이 알아서 그렇게 묽고 가는 똥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한다. 치핵 때문에. 그것만 제거하면 아주 긁은 똥을 쉽게 눌 수 있을 거라 하신다.


별 증상이 없었는데 몇 주전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오랜만에 굵은 변을 시원하게 잘 보는데 앗 마지막에 아무리 힘을 주어도 조금 남은 게 나올 듯 나올 듯 안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을 화장실에서 난리를 겪었다. 마침 골프를 시작하던 중이었는데 내가 안 나오니 친구들이 전화하고 난리가 났다.

응. 나 잠깐만.


그걸 지켜본 친구가 항문 진료를 받아보라는 것이다. 그녀가 바로 그렇게 화장실에서 오래 있고 고통스러웠는데 치질 수술을 받고 아주 편해졌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치질이라면 무언가 손에 만져지고 피도 나오고 그러는 거 아닌가? 난 말도 안 돼 하는 식으로 콧방귀를 뀌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번 더 꼭 끝에 무언가가 남은 듯 마지막이 나오지 않아 고생하다 어느 날 으악 대변은 마려워 밀려 나오는데 끝이 아파 힘을 줄 수가 없는 무시무시한 고통을 겪었다. 그 말을 듣고 친구가 당장 항문 진료를 받아보라 한다. 설마 내가 치질? 말도 안 돼 했지만 그래도 화장실에 그렇게 늘 오래 있는 건 이상이 있는 거라고 자기 가는데 같이 가자 한다. 그래서 얼떨결에 항문 진료를 받게 된 것이다.


아플 땐 끔찍했지만 대개는 안 아프니 그런 건 다 잊고 수술을 왜? 얼떨결에 받은 진료지만 의사 선생님 말을 들으니 당장 해야 할 것 같아서 수술 날짜까지 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유튜브를 찾아보니 항문수술 절대 하지 마라는 내용이 많다. 그런 것들만 찾아보며 불안은 심해진다. 아프지도 않은데 왜? 아파도 하지 말라는 유튜브 내용인데 난 아프지도 않은데 왜?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거 아냐? 수술하려면 최소한 서너 개 병원을 돌아보라 하던데 난 어쩌자고 덜컥? 왜 쓸데없이 몸에 칼을 대느냐고 엄마도 펄쩍 뛰신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고 유튜브를 뒤져보며 불안해하는 나를 보며 친구는 그러지 말고 너의 고민을 그 의사 선생님께 가서 다 말해보라 한다. 그건 그렇지. 전문가 아닌 사람들에게 들어봤자 소용없지 사실. 그래서 담당의에게 찾아가 모든 불안을 털어놓는다. 수술 날짜를 잡았는데 아프지도 않아 수술할 필요 있을까 영 불안하다는 나의 고민을 다 들으시더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며 말씀을 하시는데 난 이미 치핵 3기이며 아프지 않다고 병 아닌 게 아니고 수술하면 아주 편해지니 수술하라 권유하신다. 무언가 말씀에 신뢰가 가 결심하고 수술받기로 한다. 캐나다에서 온 아들 떠나는 다음 날로 잡는다.


아들도 떠나고 쓸쓸하니 남편 혼자 남게 되었다. 삼 박사일 잘 다녀올게. 씩씩하게 집을 나선다. 아들 떠난 서운함이 채 가시기도 전 아내도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가방을 들어주고 운전을 해주며 영 서운해한다. 코로나로 보호자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병원에 데려다주고 그걸로 끝이다. 남편은 삼 박사일 휴가다 하하.


짐을 챙기는데 노트북도 넣었다. 아파도 삼 박사일 지루함을 달래는 데는 최고 이리라. 책도 한 권 챙기고 하하  병원 갈 때면 제일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들. 큰 애 낳을 때 입원 준비하며 책만 잔뜩 챙겨 엄마에게 무슨 애 낳으러 가는 병원 짐에 책들 뿐이냐 기막혀하시던 게 생각난다. 입원은 즉 여행 하하 나의 생각이다.


남편과 헤어져 씩씩하게 이층 입원실로 항하니 와우 여긴 완전 딴 세상. 일층의 그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조용하고 쾌적하고 깨끗하다. 간호사들이 반갑게 맞으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준다. 넓은 게 좋아 5인실을 택했다. 멋모르고 특실 신청했다 홀로 외로워 죽을뻔한 적 있기 때문이다. 함께 고통받은 환자들은 되도록 여러 명이 함께 할수록 좋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하하


옷을 다 벗고 환자복 입고 관장하게 나오란다. 침대 위에 옆으로 누워 간호사 앞으로 궁둥이를 쭈욱 내미는 치욕스러운 포즈를 취한다. 이상한 액을 주입한다. 오분 간 꾹 참고 화장실 가서 한 번만 쓰윽 누고 오란다. 오분? 모르겠다. 병실 안을 왔다 갔다 걸으며 느릿느릿 숫자를 세는데 한 삼십 되었을까 으힉 정말 못 참겠다 화장실로 직행. 쿠앙 똥이 쏟아질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다. 모지? 너무 적은 시간이었나? 더 참다 왔어야 할까? 힘을 주어 대변을 본다. 영 속이 불편하다. 한바탕 쏟았지만 꼭 더 나올 것만 같다. 한참을 그렇게 더 누려고 똥과 씨름하고 있으니 간호사가 달려와 어서 나오란다.

똥이 더 나올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느낌일 뿐 예요. 어서 뒤처리하고 나오세요.


간호사의 재촉에 미진하지만 재빨리 뒤처리를 하고 나간다. 수술실로 입장이란다. 간호사들 데스크 옆 자동문에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크게 쓰여 있는데 그게 수술실이다. 스윽 열려 들어간다. 오홋 드라마에서 보던 거대한 둥근 조명이 있는 멋진 수술실을 연상했으나 이게 웬걸 그냥 무슨 창고 같은 곳에 동그마니 기다란 침대 하나 있을 뿐이다. 산부인과와 완전 거꾸로인 침대라고나 할까. 파란 수술복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나도 모르게 구십도 인사를 한다.

긴장하지 마세요.


나의 인사에 경직됨이 묻어났나 보다. 그 침대 한쪽 끝에 궁둥이를 안으로 밀어 앉으란다. 척추마취를 시작한다며 힘을 빼고 등을 둥글게 굽히란다.   

긴장하지 마시고요.


아무래도 내 몸에 너무 힘이 들어가는가 보다.


 <계   속>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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