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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r 08. 2022

똥꼬 수술 9

앗. 앞 침대 사람 전화하는 소리를 들으니 내일 퇴원이란다. 아니 난 이렇게 멀쩡한데 와이 3박 4일이고 앞 침대 분은 2박 3일일까? 토요일인 오늘 원장님이 출근 안 하셔서 나는 간호사님이 치료해주셨다. 앞팀 담당의는 주말에도 나와서 봐주기 때문일까? 난 월요일 의사 선생님을 뵙고 퇴원해야 되기 때문에 3박 4일 있는 걸까? 하하 물어보기도 그렇고 궁금증만 모락모락이다.


무통 주사 꼽아놓은 곳이 근지러워 죽겠다. 나는 테이프 알레르기가 있다. 그래서 함부로 파스도 붙이지 못한다. 시뻘겋게 되기 때문에. 너무 가려워 간호사실에 가 말해본다. 

제가 테이프 알레르기가 있는데 너무 가려워요.
아, 그러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하더니 메모한다. 테이프 알레르기. 그리고는 아프셨겠다며 무통 주사를 붙인 테이프를 몽땅 종이테이프로 바꾸어 붙여준다. 이제 괜찮을 거예요. 친절한 간호사님들. 테이핑이 끝나갈 때쯤 조심조심 물어본다.

우리 방 사람들 모두 내일 퇴원하는가 보아요?
네.
앗 그렇다면 난 별로 아프지도 않은데 왜 하루 더 있어요?
아, 그건 원장님들마다 스타일이 달라서 그래요. 남자 원장님은 꼭 3박 4일 하십니다.


헉. 우리 방에서 나 혼자 그 남자 원장님께 수술받았기 때문에 나만 내일 퇴원 아니다. 그나저나 5인실에 그럼 내일 일요일이니 수술 환자가 들어올 리는 없고 나 혼자? 에고.

그럼 나 혼자만 있어요?
방엔 없지만 밖에는 사람들 많으니까요.


에고 어쨌든 혼자다. 그래 혼자서 실컷 태국어나 녹음하면 되겠구나. 다들 나가고 나면 커튼을 몽땅 걷어야겠다. 아주 환하게. 지금까지도 커튼 속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누가 입원해있는지 얼굴도 잘 모른다. 그대로 그렇게 퇴원들을 하는구나. 점심 식사 후 복도로 나가 주말이라서일까? 홀로 앉아있는 간호사님께 조용히 물어본다.

저기요 제가 녹음할 게 있어서 그러는데요 저기 끝에 빈 방에 들어가서 녹음 좀 해도 될까요?
아, 215호실요? 네. 그러세요.


오홋. 안될 줄 알았는데 기꺼이 허락해준다. 그래서 룰루랄라 신바람이 난 나는 잽싸게 내방으로 가 노트북을 챙겨 들고 215호실로 간다. 빈 침대들만이 덩그러니 놓여있고 창으로는 환하게 해님이 방긋방긋이다. 너무 해가 들지도 않고 너무 문 앞도 아닌 가운데 침대로 가 식탁을 올리고 그 위에 노트북을 놓는다. 하하 완벽한 녹음 분위기. 호홋. 어제 갔던 휴게실도 괜찮지만 뻥 뚫려있어 녹음 중 느닷없이 간호사들 말이 들려와 낭패했었다. 그들 또한 나의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웠을까. 병실은 조용하게 녹음이 가능하고 내 소리가 아무 곳에도 들리지 않으니 그야말로 완벽이다. 푸하하하.  


신나게 녹음을 하고 내 병실로 돌아왔다. 여전히 커튼이 쳐진 채 매우 조용한 분위기다. 이제는 어떻게 이 지루한 병원 시간을 채우느냐? 그 지루함과의 싸움인 것 같다. 내게는 태국어도 있고 재밌는 소설책도 있고 노트북도 있고 그리고 울트라 22 따끈따끈 새 폰까지 있으니 걱정할 필요 전혀 없다.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다. 파이팅. 하하


그런데 방안에만 오래 있으니 머리가 띵하다. 똥꼬는 전혀 아프지 않다. 무통주사는 내일까지 들어간단다. 약이 하나도 안 들어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직 남았나 보다. 종이 테프로 갈았어도 테프 붙인 곳이 아파 죽겠다. 똥꼬는 안 아프고 쓸데없는 곳만 아프네 내참. 하이고 가려워. 손이 가요 손이 가. 자꾸자꾸 테프 붙인 손목을 긁고 있다. 간호사 데스크에서 깔깔 푸하하하 웃음소리가 요란하다. 내내 혼자 있더니 교대하느라 셋이 모였는가 보다. 시끌벅적 재밌다. 하하. 그렇지. 저 젊은 나이에 무엇인들 안 재밌을까.


<계   속>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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