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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r 14. 2022

똥꼬 수술 12

샤워를 했다. 이건 마치 우리가 한 겨울이면 가던 태국에서의 골프 생활처럼 주부 천국이다. 밥도 청소도 빨래도 안 하고 그냥 나 좋아하는 것만 하다 보면 밥 줘 청소해줘 옷 새거 줘 푸하하하 그냥 룰루랄라다. 샤워라고 몽땅한 게 아니라 옷 입은 채로 고개 숙이고 머리만 감았다. 옷은 다 젖었지만 따뜻한 물이 콸콸 머리로 쏟아져 여간 시원한 게 아니다. 젖은 옷은 간호사에게 받아 가져 간 새 환자복으로 기분도 상쾌하게 갈아입었다. 새 아침의 시작이다. 앞 침대 분들은 퇴원 준비로 바쁘다. 이제 열 시가 되면 모두 조용해지리라. 그때 실컷 태국어 녹음을 해야겠다. 이제 무통주사기도 뺐다. 아침에 힘들게 주사 꼽은 채로 겨우 머리만 감았는데 억울하다. 이렇게 양손이 자유로워져 편하게 샤워할 수 있는 것을. 점심 지나고는 샤워를 해도 된단다.

앗. 거기 물 들어가도 돼요?
네. 괜찮아요. 주사 뽑은 자리 때문에 점심 이후 하시라는 거예요.


오호. 이제 모든 게 끝이다. 무통주사 빼고도 아프지만 않으면 완벽한데. 아픈가 안 아픈가 잘 느껴봐야지. 아침 식사 때까지 소변보고 좌욕을 끝내고 새로 먹을 물을 떠놓으면 되겠다. 하루 2리터씩 마시라는데 저 통이 오백은 되려나 저거 네 통을 마셔야 한다는 건데 난 어제 세 통을 마셨을 뿐이다. 더 마시자. 파이팅. 이 정도라면 모 아무것도 아니네. 반창고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무통주사를 뺀 자리가 벌겋게 부어오른다. 그리고 무척 가렵다. 간호사실에 가 벌겋게 부어오른 자리를 보여주며 아픈 걸 호소한다.

우리 병원엔 바를 연고도 약도 거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아, 어떡하나. 


진심으로 걱정해주더니 좋은 게 생각났다는 듯 냉장고로 달려가 얼음팩을 꺼내 주며 너무 가려울 때마다 환부에 대란다. 직접 닿으면 자극되어 더 올라오니 꼭 타월에 싸서. 그리고 냉동실에 넣었다 또 쓰고 하란다. 아, 친절한 간호사님. 그렇게 간호사실에서 처방을 받고 내 침대로 오니, 퇴원 준비를 마친 듯, 옷도 다 갈아입고 침대 옆에 서 있던 내 나이 또래 분이 묻는다.

혹시 어디 사세요?
A 아파트 살아요.
아. 맞군요. 어쩐지 살짝 보는 얼굴이 낯이 익다했어요. 그래서 물어볼까 했어요.


<계   속>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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