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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un 11. 2019

공공장소에서 책 읽기

용기가 필요하다



가방 속에서 쪼물딱 쪼물딱 거리다 결국 난 꺼내 들지 못했다. 시드니 쉘던의 Tell Me Your Dreams 손에 꼭 쥐어지는 아주 작지만 도톰한 책. 와이? 영어이고 괜히 티 낸다 싶을 것만 같고. 그렇게 책을 많이 읽어? 이런 데까지 와서? 그 많은 눈총이 쏟아지는 것만 같고. 내 나름 작아 손에 꽉 쥐어지고 신경 써 골라 핸드백에 넣어온 책이지만 그러나 영어라는 데에 책을 꺼내 드는 데에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왜 영어소설이었을까? 이번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이 모두 두툼하고 큰 책들이라 핸드백 속에 넣기에 좀 무리다. 오로지 요것만이 쏙 들어간다. 그리고 매우 재미있고. 


나는 지금 성가대 연습 중이다. 그런데 다른 파트가 연습하는 틈을 타 살짝살짝 읽어 내려가는 영어소설의 재미는 참 괜찮다. 이해를 위해 극도의 긴장을 요하고 집중이 필요하고 그 잠깐의 집중도는 노래 연습에도 이어져 정말 간간이 책을 보며 노래도 열심히 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이건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존재할 때 가능한 이야기다. 내 왼쪽에는 연세가 꽤 되시는 70대 후반의 권사님이 계시고 내 오른쪽에는 나보다 열 살쯤은 아래인 권사가 앉아 있다. 그런데 아무도 나처럼 다른 책을 꺼내지 않는다. 모두 성가대 책뿐이고 그리고 짬이 날 땐 서로서로 이야기를 한다. 건강에 무어가 좋아요. 어디가 아파요 그럴 땐 어떡하세요 등등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그런저런 이야기들. 물론 그 많은 이야기가 친목에는 도움이 되고 좋지만 말이다. 


문제는 또 내 왼쪽에 앉아계신 70대 후반의 권사님이시다. 내가 무언가 말을 걸지 않고 나의 책 속에만 빠져든다면 짬짬이 쉬는 시간에 그 권사님은 그야말로 벙어리가 되셔야만 한다. 내 오른쪽에서부터는 왁자지껄 할 이야기가 참 들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처음 자리 앉을 때 그 연세 드신 권사님께서 내 오른쪽에 앉으신다면 그러면 맨 구석자리인 왼쪽 끝에 내가 앉게 되어 내가 책을 읽는 것도 좀 괜찮을 듯도 싶은데 그런데 그 권사님은 항상 내 왼쪽 맨 끝자리에 앉으신다. 제일 일찍 오셔서 그 자리에 자리 잡고 앉아계신다. 저는 책을 봐야 하니 사람들과 이야기하시려면 제 오른쪽에 앉으세요. 할까 여러 번 목구멍까지 말이 올라왔지만 그래도 또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렇게 망설망설 세월은 흘러가고 있다. 


우리 성가대는 주일 아침 7시 20분까지 모여서 아침식사로 김밥을 먹고 연습을 시작한다. 그리고 8시 30분 예배 때 찬양을 하고 예배가 끝난 9시 반부터 11시까지 다시 연습을 한다. 아침 일찍 와서의 연습실과 예배 끝나고의 연습실이 다른데 그 연세 많으신 권사님은 아침에는 내 왼쪽 옆에 예배 후에는 나의 오른쪽 옆에 앉으신다. 그러므로 예배 후 연습시간에는 그분 곁에 이야기할 사람들이 쫙 있으니까 그 어르신을 조금 덜 신경 써도 된다. 


하지만 역시 책을 꺼내 드는 일이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아무도 성가책 이외에 다른 책을 꺼내 들지 않고 연습 이외의 시간에는 온갖 이야기 즉 수다로 시끌벅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자들이 합쳐지기 전 여자끼리의 소프라노 알토 연습시간에는 더더욱 수다가 만발이다. 거기서 책을 꺼내 들기란 정말 웬만한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다. 그렇다고 전혀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커피타임이며 다른 파트 연습시간이며 잠깐 쉬는 시간이며 그때마다 짬짬이 책에 눈을 돌리면 사실 꽤 많은 책장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냥 연습만 하는 것보다 책을 읽으면서 노래 집중하는 게 난 훨씬 재미있다. 


그러나 거기엔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하다. 남과 다를 수 있는 용기. 그냥 하하 웃으며 함께 수다에 동참하는 게 아무 말도 듣지 않을 수 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편안한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책을 들었을 때 그 시간들이 모아지면 꽤 많은 분량이 된다. 언제까지 주변 눈치만 살피다 그런 귀한 시간들을 모두 날려 보내려는가? 아니 그렇게 책 읽을 시간이 없어? 집에서는 모하고? 그래도 내가 책을 펴 드는 순간 주위 사람들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할 것만 같다. 그런데 아, 공개장소에서 읽는 책 이거 정말 집중이 잘 된다. 내가 친구에게 그런 이야길 하면 그 시끄러운 데서 무슨 책이 읽히냐며 그런 데서 책을 읽으려는 내가 이상한 거라고 한다. 그럴까. 


열차 대합실도 있고 병원 대기실도 있고 얼마나 많은 짬짬이 시간 낼 수 있는 곳이 우리 주위엔 많은가. 심지어 나는 평평한 길은 걸어가면서도 읽을 수 있다. 산들바람이 솔솔 불고 걸어가면서 읽는 책은 더더욱 머릿속에 팍팍 들어온다. 우리 동네 수변공원을 산책할 때 난 책을 읽으며 가고픈 심정이다. 많이 다녀서 빤히 아는 길 난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데 그때는 남편이 함께 가니 안된다. 남편과 함께 이야기를 하며 걷는 게 예의 같으니까. 책을 읽는다는 건 어찌 생각하면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무시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책 익을까? 하면서 함께 책을 갖고 가면 모르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래서 시드니 쉘던의 재밌는 소설책은 핸드백 속에서 만지작만지작 꺼낼까 말까 망설이기만 하다 그대로 집에 오게 되었다. 내가 용감하게 꺼내 들었다면 난 여러 페이지 읽었을 것이다. 그 자투리 시간이라는 게 무시 못하는데 그런데 곁에 누가 있을 때는 사실 책을 읽는다는 게 상대방에 대한 무시 같기도 한다. 그래서 난 종종 내 옆의 권사님께 양해를 구하기도 한다. 권사님 재미없으시지요. 그런데 제가 읽을 책이 있어서요 제가 책 좀 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또는 책은 너무 사람들 눈에 띄니까 슬그머니 핸드폰을 꺼내며 잠깐 제가 작업할 게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하고 브런치 글을 읽는다든가 한다. 그래야 난 무언가 시간을 알차게 보낸 것 같고 그렇다. 그냥 영혼 없는 이야기를 떠벌리며 날려버리는 시간들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아, 그래도 내가 책을 읽으면 곁의 권사님을 무시한 것 같아 아무래도 잘못한 것 같다. 그 권사님과 대화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아, 그러나 그 자투리 시간의 독서도 참 매력적인데. 하하 난 오늘도 갈등한다. 아무 눈치 안 보고 나 하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을 때 맘껏 책을 꺼내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러기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줄을 설 때나 기다릴 때 핸드백 속의 책 한 권은 나의 무료함을 달래준다. 그런데 아무도 안 꺼내 들고 있는데 혼자 불쑥 책을 꺼내 들기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가. 하물며 영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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