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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un 14. 2019

마귀할멈이 된 느낌

씁쓸하여라



"감사합니다~ 서로 인사하세요~"


요가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이 끝나자마자 선생님께만 인사를 하는 듯하더니 휑~ 찬바람 쌩쌩 날리며 그녀는 그대로 발딱 일어나 휑하니 밖으로 나가 버린다. 흥체 피!!! 나에게 보라는 듯이. 무언가 말을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웃을까 미안하다 할까 어떻게 말할까 등등등 마음이 복잡하던 나는 그 발딱 일어서서 내게는 얼굴조차 안 돌리고 홱 돌아나가는 그녀를 보며 무어랄까 왕따 된 느낌이랄까 나이의 한계랄까. 아 씁쓸한 마음이다. "모... 저런 아가씨가 다 있어?" 감히 난 그렇게 말하지도 마음먹지도 못한다. 엉엉. 




우리 아파트 단지 노인정에서는 월, 수, 금에 요가 교실이 열린다. 난 몇 년째 매번 참석은 못해도 그냥 등록해놓고 시간이 되는 한 나가고 있다. 무언가 저녁때 일이 많이 생겨 한 달에 4번 정도밖에는 못 가고 있지만. 그래도 적을 두고 있는 한 계속 요가를 하는 듯하므로 난 중단하지 않고 회비를 내고 있다. 


이 요가 교실에는 월초가 되면 사람이 가득가득이고 월말이 되어가면 한산해진다. 그래서인지 매달 새 인원을 모집하고 그래서 다시 월초엔 사람이 가득가득 월말엔 한산 그렇게 반복되고 있다. 내가 월초임을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그래서일까. 아니 6월 14일이면 그리 월초도 아닌데 어쨌든. 


7시 10분에 시작하는 요가 시간에 대려고 난 오늘 서둘렀다. 간헐적 단식에 의하면 8시 이후 배부르게 먹는 것은 금물이므로 사실 배가 고프지도 않았지만 저녁때 안 먹는다는 뜻으로 요가 가기 전 한 30분 남은 시간에 난 서둘러 라면을 끓였다. 남편은 요가 다녀와서 제대로 차려주더라도 지금 배는 안 고프지만 그래도 요가 다녀와서 많이 먹으면 안 되니까 나는 저녁을 먹어야 했다. 간헐적 단식 그 시도 후 난 웬만하면 늦은 저녁은 하지 않고 있으니까. 사실 그 라면 안 먹어도 되었는데. 그럼 나의 정신은 더욱 맑고 참 좋았을 텐데. 그리고도 요가 다녀와서 좀 참는다면 안 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몸과 마음이 깨끗한 상태로 있으면 좋았을 것을. 영양에도 도움 안되고 다이어트에도 도움 안 되는 라면을 굳이 허겁지겁 먹어야만 했을까? 그러나 마음이 그리 되는 걸 어쩌랴. 그래도 요가 이후엔 아무것도 안 먹으리라는 기특한 생각에 박수를 쳐주고. 


아, 그런데 얼마나 맛있는지. 노란 양은 냄비에 끓인 라면에 조금 남아있는 찬 밥 한 두 숟가락 정도와 오이소박이, 총각김치만 꺼내 먹는데도 너무너무 맛있다. 알맞게 익은 김치와 라면의 조화라니. 국물은 먹지 말라던데 하, 뜨끈한 국물이 얼마나 얼마나 맛있는데 그걸 포기한단 말인가. 찬 밥 남은 것을 퐁당 떨어트려 싹싹 국물까지 다 먹고 나니 그야말로 배가 남산만 해지고 꼴까닥 넘어올 것만 같다. 그리고 7시 10분 전. 나가야 한다. 


난 항상 제일 먼저 도착하도록 애쓴다. 와이? 선생님 바로 앞에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7시 10분에 시작하지만 항상 7시 이전에 도착한다. 그때는 아직 거의 아무도 안 와 딱 가운데 선생님 보고 따라 하기 아주 좋은 그 명당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오늘도 그렇게 제대로 도착했지만 아, 너무 밥을 많이 먹었다. 누울 수가 없다. 일단 오면 제1단계, 롤러를 가슴 뒤 등에 두고 쭈욱 누워 팔을 위로 쭉 뻗고 다리는 아래로 쭉 뻗고 깊이 숨을 쉬는 것이다. 그 준비단계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나는 너무 배가 불러 그냥 똑바로 앉아 있었다. 점점 사람들이 몰려오고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그렇게 똑바로 앉아서 핸드폰을 열심히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떤 아가씨가 " 이 옷 좀 치워주세요." 하는 게 아닌가. "모지?" 하고 돌아보는 순간 그녀는 자기 매트를 깔려고 하지 않는가? 앗? 요건 또 모지? 나는 선생님 바로 앞 맨 가운데 자리 잡고 앉았기 때문에 내 양 옆으로 사람들이 와서 앉는데 내 왼쪽에 누가 와서 앉았고 내 오른쪽은 여유롭게 비어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아가씨가 왼쪽에 앉은 누군가와 나 사이에 매트를 깔겠다는 것인데 순간적으로 난 절대 이해가 안 되었다. 아니, 오른쪽에 이렇게 넓은 자리가 있는데 왜? 


"오른쪽으로 가지요? 여기 자리가 이렇게 넓은 데?"


난 말을 했다. 정말 이해가 안 되었으므로. 그녀가 매트를 깔고 들어오려면 내가 오른쪽으로 밀려나야 한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옆으로 좀 비켜주시겠어요?라는 것과 그냥 옷 좀 치워주세요 하고 그리 밀고 들어온다는 것은 아,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핸드폰으로 무언가 열심히 보고 있던 중이라서 그때의 상황을 잘 몰라서였는지는 모르겠다. 도리어 나를 이상한 듯 보는 그녀에게 다시 말한다. "이쪽 넓은 쪽으로 가세요. 왜 그 좁은 데로 가려고 합니까?" "알겠어요." 싸늘하게 말하더니 내 오른쪽으로 간다. 그리고 냉전이다. 캬.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그것이 좋아 계속하고 있는 요가. 그런데 오늘은 영 집중할 수가 없다. 옆의 그녀가 영 신경 쓰인다. 그냥 웃으며 옆으로 비켜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그랬을까 나는? 그런데 옆에 그렇게 넓은 자리 놔두고 왜 그리로 밀고 들어오겠다는 거지? 나보고 옆으로 밀려나라는 건데. 그래도 내가 나이가 있잖아. 그냥 웃으며 옆으로 비켜주지. 그러나 그러기엔 난 일부러 그 자리를 위해 아주 일찍 가는 건데 왜 그 좁은 자리를 밀고 들어오려는 그녀에게 자리를 비켜줘야 한단 말인가. 하. 그 자리가 거기가 거기지 한 방에서 수업하는 건데. 젊은 아가씨에게 그것도 양보 못하는가. 나이는 어디로 먹고? 온갖 비난을 해대는 나 자신의 한쪽 구석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리고 보니 이미 몇 년 진행되는 사이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시작 때는 꽤 많았었는데 어느새 다 떨어져 나가고 이제는 거의 젊은이들 일색이다. 거기 붙어있으면서 난 다른 곳에 전혀 신경을 안 쓰니 다닐 수 있었던 건데 문득 그런 일을 당하고 보니 내가 제일 나이가 많다는 것이 확 느껴진다. 




"미안하다. 내가 아까는 왜 그랬는지 내가 그냥 옆으로 비키면 될 텐데. "라고 말할까 어쩔까 나름 궁리하던 요가 시간 한 시간 내내 가 무색하게 그녀는 휑~ 싸늘한 바람을 날리며 퇴장해버렸다. 아. 정말 씁쓸한 이 마음. 언제 어디서나 막내였던 내가 이젠 어디를 가나 종종 대빵 어른이 되곤 한다. 그걸 잊어버리고 이렇게 마냥 막내일 때처럼 행동하다 된 통으로 고생하곤 한다. 왜 그랬을까. 좀 너그럽게 그냥 곁으로 비켜주면 안 되었을까? 그래도 참 이상하지. 왜 이미 사람이 앉은 나의 왼쪽 자리에 비집고 들어오려는 것일까? 오른쪽에 아주 넉넉하게 자리가 비어있는데? 그걸 어떻게 이해하나? 자기가 가운데 자리에 앉기 위해 나보고 옆으로 좀 물러나라는 이야기밖에 더 되는가? 왜 그녀가 넓은 그쪽으로 가면 안 되는 것일까? 아, 그냥 막 마음이 어수선한 밤이다. 아주 씁쓸하다. 이 모든 걸 무시하고 난 다시 요가에 갈 수 있을까? 그럼 가야지. 그녀가 무어라고 요가까지 안 가려한단 말인가. 그건 아니다. 그래도 너무 못된 마귀할멈이 된 듯한 느낌이고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아, 정말 엉망진창의 밤이다. 나이 먹는다는 것은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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