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무엇에 홀린 듯싶다. 헐레벌떡 겨우 나는 마지막 열차에 몸을 실었다. 하마터면 놓칠 뻔도 했다. 하이고. 헉헉.
어젯밤이었다. 많이 기력을 회복하신 엄마. 즐거운 마음에 샤워를 하시고 곱게 구립쁘를 마시던 중. 나 이것 좀 봐봐. 너 있을 때 이거 병원 좀 가자. 해서 엄마 머리 위를 보니 으힉. 동전만 한 검은 게 오돌토돌 나있다. 앗. 이게 뭐야? 아파? 아프진 않아. 그런데 미용실에서 점점 커진다고 레이저로 간단히 된다고 피부과 가라 했는데 매일 잊고 못 갔다. 너 있을 때 가자. 네! 그래서 오늘 밤 열차니까 낮에 다녀오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의 외출 준비는 정말 오래오래 걸려서 우리가 집을 나선건 점심까지 먹고 치우고 세시가 다 되어서였다.
이런 건 정통 피부과가 낫겠지? 내가 가던 피부과 있다. 거기 가자. 거긴 멀고 여기 가까운데 피부과 비뇨기과가 있는데 점 빼고 그런 것도 해. 정통 같지 않으니 정통 피부과 가자. 아니 엄마 우리 동네도 피부과랑 비뇨기과랑 같이 있던데? 거기도 정통일 거야 엄마. 그래도 거긴 피부미용 그런 거 중심인 거 같더라. 정통 피부과 가자. 해서 버스로 세 정류장 거리를 엄마랑 손 잡고 산책 삼아 걸어서 갔다. 왜 피부과는 비뇨기과랑 같이 있지? 글쎄 말이야 엄마. 피부과랑 비뇨기과랑 무슨 상관이지? 하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엄마 손을 꼭 잡고 천천히 엄마 보폭에 맞춰 걷다 보니 꽤 오래 걸려 도착했다. 아이고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정기휴일!
엄마 할 수 없다. 조금 정통으로 안 보여도 그곳 가자. 유명하다고 해서 점 빼러 가셨던 곳이란다. 무언지 진단이나 받아봅시다 하고 들어간 곳. 시술 들어가셨다고 이십여분을 기다려 진찰을 받았는데 너무도 명확하게 설명을 해주신다. 일단 이것은 검버섯인데 좋아 보이지 않아 반드시 없애야 하는데 없애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레이저로 하면 14일간 항생제를 먹어야 하는데 설사 쫙쫙하신다. 어르신께는 권하지 않는다. 머리도 감을 수 없고 치료가 끝나도 동전 크기로 흔적이 남고 머리카락도 나지 않는다. 우리 엄마는 주민등록상엔 만으로 93세로 되어있으니 아주 고령이시다. 그러니 그 반대 냉동요법을 권하는데 이건 목욕해도 되고 약도 안 먹고 그런데 문제는 비싸다는 거다. 어머니는 연세가 많으시니 이 방법을 권한다. 대충 그런 내용인데 아무나 못하는 방법이며 당신이 일본에서 기술을 연마해와 이 일대에 그걸 할 수 있는 의사는 당신뿐이란다. 서울대 연대 병원에서나 가능할까? 그 말에 포옥 빨려 들어가 당장 시술하기에 이르렀으니 우아 60만 원을 내고 정말 무엇에 홀린 듯 이제 막 회복된 엄마가 냉동치료라는 어마어마한 걸 받았다. 난 열차를 타러 가야 하는데.
약도 바르셔야 하는데 아, 그게 혼자 가능하신가? 하이고 참. 왜 그걸 꼭 이때? 아프지도 않으시다던데. 그렇게 해드리고 정신없이 열차 타러 달려왔다. 배는 고픈데 무얼 먹을 새도 없고 살 새도 없고 집 냉장고를 뒤져 찬 밥과 두부 콩나물 국을 꺼내 아예 국 속에 찬밥을 넣고 푹 끓여 엄마랑 정신없이 퍼먹었다. 아. 맛있다 엄마. 햄버거나 김밥보다 낫다. 근데 우리 오늘 무어에 씌었나 봐. 왜 갑자기 그걸 했을까? 그러게 말이다. 급하지도 않은데. 엄마가 기력만 회복해서 그걸 다 견뎌내시면 잘한 거고 없애야 한다니까. 그러나 어째 바가지를 쓴 느낌도 나고 너무 모든 게 얼떨결이라. 그러나 지금 아니면 엄마가 언제 가겠어. 잘했어 엄마. 나 열차 타러 가야 해. 이것만 잘 견뎌내시면 되는 거야 엄마. 약 잘 바르고.
그렇게 헐레벌떡 난 열차를 타러 달려 나왔고 엄마는 계속 전화가 온다. 물은 말 또 물으시고 또 물으시고. 그러니까 은박지 약이 저녁 식후? 빨간 건 식전? 배에 가스가 차서 한 다발 받아온 지난번 약을 이젠 혼자 챙기셔야 한다. 그리고 오늘 치료한 부분 약을 발라야 한다. 설명은 열심히 했는데 자꾸 다 잊고 물어오신다. 과연 엄마는 잘 해내실까? 하이고 엄마랑 나도 미쳤지 어쩌자고 가서 냉동치료를 받고 온 단말인가. 그냥 편안히 계시게 했으면 좀 좋은가. 엄마가 이런저런 올바른 판단 못하고 여기도 아프다 저것도 해야 한다 말씀하시는 건데 현명하게 판단 내리지 못하고 그저 엄마 하자는 대로 따라다니며 해드린 게 살짝 후회된다. 이제 와선 그걸 왜 우리가 꼭 지금 했을까? 하신다. 우리가 무언가에 홀린 게 틀림없다. 하이고다 정말.
추정자산. 1051만 원. 949만 원 손실 중.
LG생활건강. 411만 원 손실 중.
카카오 뱅크. 2만 원 손실 중.
하. 이젠 나도 지쳤다. 갈대로 가라. 더 내려가 봐라. 내가 꿈쩍이나 하나. 이렇게 내려갈 순 없다. 어차피 이건 그런 전략으로 들어온 거니 그냥 맘 편히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련다. 대신 여기서 살아나면 다신 이런 매매 안 한다. 파이팅!!!
너도 기다려주리라. 그냥 마냥 기다려주리라. 파이팅!
(사진: 꽃 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