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뜰 Sep 03. 2022

태풍 힌남노 대비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며칠 째 그렇게 비가 오고 있다. 태풍 힌남노 때문이었나 보다. TV에선 연일 겁을 주고 있다. 어마어마했던 파괴력이 기억에 선명한 사라 태풍보다도 매미 태풍보다도 더 무서운 태풍이라고. 함께 밭농사를 하고 있는 후배 S에게서 전화가 온다. 언니, 사과만이라도 따와야 하지 않을까요? 태풍 오면 다 떨어질 텐데요. 비가 와서 밭에 들어갈 수나 있을까? 마침 토요일 새벽은 좀 소강상태라니까 그때 잠깐 다녀와요.


그래서 오늘 새벽 눈곱만 떼고 집을 나섰다. 밭으로 향하는 길. 소강상태는 커녕 비가 무시무시하다. 밭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거 아닐까? 잠깐 그쳐주면 좋겠네. 걱정하며 갔는데 밭에 도착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쏟아지던 비가 살짝 멈춘다. 요즘 보기 힘든 허수아비 홀로 우리 밭 앞의 커다란 논을 지키고 있다. 노랗게 익은 벼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참 아름다운 동네다. 구비구비 산과 하나씩 들어서는 멋진 전원주택들.


살짝 익은 대추. 아직 모두 익지는 않아 S가 제사상에 놓는다고 제일 크고 예쁜 거 7개를 챙겨간다. 나는 제사를 안 드리니까 그냥 좀 더 익을 때까지 두기로 한다. 알이 작으니 태풍에서도 살아남을 거야 하면서. 비가 다시 심해진다. 서두르자. 우산을 써도 온 몸이 다 젖는다. 재빨리 빨갛게 익은 사과만 대충 딴다. 운명이고 팔자야. 태풍에 떨어질 놈은 떨어지고 남을 놈은 남겠지. 그렇다고 지금 안 익은 놈을 딸 수는 없어. 어차피 못 먹기는 마찬가지니까. 


마침 그 동네에는 멋진 정자가 있다. 비가 쏟아지지만 그 정자 안은 말끔하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라 쓰여있어 우린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올라가 올해의 수확물 사과를 촤르륵 바닥에 쏟는다. 그리고 너 하나! 나 하나! 너 둘! 나 둘! 너 셋! 나 셋! 나누는 작업을 한다. 여기서도 제사상에 홀수로 필요하다 하여 제일 크고 잘생긴 놈들 세 개를 S에게 우선 배정한다. 하, 정말 맛있을 게다. 


밭에서 조금만 나오면 이렇게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정자가 있다는 건 참 행운이다. 비는 계속 내린다. 제발 태풍 힌남노가 아무 피해 안 주고 지나가면 좋겠다. 아직은 분위기 좋게 비가 내리는 정도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비 오는 풍경은 기가 막히다. 마침 S 남편이 정성껏 커피를 타 모두에게 돌린다. 비는 점점 강해진다. 쏴아 쏴아


(사진: 꽃 뜰)




매거진의 이전글 눈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