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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Nov 22. 2022

LA공항 도착

미국 여행 2 (221120 - 221207)

LA공항 도착. 30년 전에 난 이 공항에 왔었다.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오빠 집으로 무조건 미국 여행을 왔던 그때의 그 감동과는 많이 달랐다. 거대하게만 보였던 공항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다. 보이는 사람들도 금발의 멋쟁이들 보다는 노숙자 같은 모습의 사람들이 더 많다. 미국인이라는 그것만으로 주눅 들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결혼하면서 대기업에서 외국인 회사로 옮긴 나는 미국인 비서를 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1980년에는 결혼을 하면 아무리 좋은 직장도 그만두는 게 거의 정석처럼 되어있었다. 임신하여 배가 부른 채로 회사를 다닌다? 그건 상상도 못 했었다. 그래서 알아서 결혼을 앞두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가끔은 아무도 그만두란 사람 없었는데 그냥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거의 불문율처럼 되어있는 결혼 하면 직장 그만두기를 안 할 용기는 없었다. 그런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외국인 상사만은 예외였다. 결혼하고 나서도 다닐 수 있는 직장!으로 유명했다. 다행히 취직이 되어 결혼 후엔 외국인 상사에서 미국인 비서를 했다. 본사에서 손님이라도 여러 명 오면 미국인이라는 그것만으로 괜히 주눅 들고 쩔쩔맸던 기억이다. 전화로 다다다다 하는 지시를 잘 못 알아들어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렇게 대단해만 보였던 미국인데 화려한 인천공항을 거쳐서일까 LA공항의 모든 것이 실망 그 자체다. 이랬나? 옛날에도 이랬나? 


대학시절엔 영어 회화를 배우러 용산 미군기지 장교 사택에 갔다. 장교 아내들이 영어를 가르쳤다. 꽤 비싼 수업료를 냈던 기억이다. 용산 사택 문 앞에서 우리를 가르치는 그 미국 아내분이 나오기까지 덜덜 떨며 기다려야 했던 시절. 집으로 들어가면 화장실에 포근한 양탄자가 깔려있고 좋은 향이 나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수업 중간에 따끈한 코코아와 쿠키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게 얼마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비행기에서 내려 계단을 내려오는데 무슨 서류를 다 작성해 놓고 있어야 한다는 글이 크게 쓰여있다. 앗 그렇지! 비행기 안에서 입국 서류 노란 종이에 미리 써놓았던 기억인데. 스튜어디스들이 미리 준비하게 해 주었었는데 이번엔 왜 그런 준비를 안 시켰을까? 어떡하지? 걱정하다 함께 줄 서 있던 분에게 물어본다. 이스타 비자 있으면 될 거예요. 아, 그거 프린트해왔는데 그걸 꺼내 주면 되겠군요. 전산에 다 뜰 겁니다. 여권 하나면 될 거예요. 하는 게 아닌가. 그렇구나. 어디 묵으실지 주소만 잘 알고 계시면 됩니다. 안심을 시켜준다. 


드디어 NEXT! 내 차례다. 긴장하며 정복 차림의 흑인 앞으로 나간다. 지문을 찍는데 한참 걸린다. 손가락 4개 찍고 엄지손가락 찍고 또 손가락 네 개 찍고 엄지손가락 찍고 마스크 내리고 얼굴 찍고. 한참을 그러고 나서 드디어 질문 차례. 흥. 난 준비 단단히 했다고. 자신 있게 기다리는데 How long do you stay? 오홋. 요정 도야. 15 days! 재빨리 명쾌하게 답한다. 하하 무어고 물어보시라고요. 다 답할 수 있답니다. 헤헤 아니 그런데 웃으며 나가라는 손짓이다. 아니? 이게 다야? 유튜브에서 별거 다 보아 걱정하며 긴장했는데. 여기서 대답 잘 못하면 그대로 쫓겨난다 하던데. 아니, 요게 다라고? 하이고 참. 이렇게 시시하게 끝나버리다니! 남편도 옆자리에서 금방 나온다. 


별로 기다리는 것도 없이 짐을 찾아 사람들 가는 대로 따라 나오는데 위에서 사람들이 우릴 지켜보고 있다. 뭐야. 다 끝난 거야? 우리, 밖에 나온 거야? 아니, 이렇게 간단해? 그렇다. 무슨 거대한 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짐 찾아 사람들 따라 나오니 그게 그냥 끝이었다. 아이고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실컷 장 봐오려다 놓고 온 것. 그대로 다 가져오는 건데. 왜 아무 검사도 안 해? 아, 뭐야. 남편에게 아쉬움에 불평하자 그런 거 다 놓고 와서 그대로 나오게 된 거야. 어디선가 다 체크하고 있을 거라고. 점잖게 대답한다. 그럴까? 아니 왜 아무 검사 안 해? 아, 난 너무 아쉽다. 그거 다 가져올 걸. 쥐포며 아구 포며 마른 한치며 에쎈 뽀독뽀독 소시지며 어묵탕이며 멸치며 다시마며! 에고!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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