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앗앗, 이게 뭐야? 아웃 오브 오더? 고장이라는 뜻 아니야? 아, 뭐야. 어떡해. 새빨간 글씨로 out of order 가 있고 그 밑에 불편을 주어서 미안하다는 뜻의 영어가 줄줄이 쓰여있다. 아, 미치겠다.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하염없이 이야기를 하다 어느새 해님이 꼴까닥 넘어가기까지 있었던 우리는 아들이 보여주려 했던 비버리힐즈의 멋진 집들을 캄캄한 가운데 보게 된 것이다. 아하 여기가 비버리 힐즈구나. 반짝반짝 네온사인이 반갑다. 밤이지만 은은한 조명 아래 드러나는 거대한 집들의 모습은 그냥 그걸로도 멋지다. 커다란 나무들이 많고 그 아래 어김없는 불빛, 궁전 같은 대저택의 창문으로 새 나오는 불빛. 영화 속 멋진 집들을 상상하며 둘러보고 나니 이젠 가는 곳마다 번쩍번쩍 거대한 광고판이다. 영화 광고들이 흥미롭다. 선셋 대로란다. 선셋 대로? 많이 들어봤는데. 맞아, 아주 유명한 영화 제목이야. 이곳의 대저택 유명한 여배우의 풀장에서 한 시나리오 작가가 총에 맞아 죽은 채 발견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하지. 그게 바로 여기구나. 앗 저건 뭐야? 폴리스. 경찰서네. 경찰서가 저리 멋지냐? 하면서 밤거리를 구경하는데 그렇게 한참을 차 안에 있다 보니 화장실이 가고 싶어진 것이다. 아들아, 엄마 화장실!
넵. 걱정 마세요. 하면서 아들이 데리고 간 곳. Chick-fil-A라고 쓰여있는 곳이다. 줄을 많이 서 있다. 사람이 많아 드라이브 쓰루 해야 할 것 같다며 아들은 엄마 먼저 내려서 화장실 가세요 한다. 그래서 줄줄이 서 있는 차들을 헤쳐 나 홀로 매장으로 간다. 화장실이 어디 있나? 아하. 레스트 룸. 그래 바로 여기! 그런데 문 앞에 떡하니 쓰여있는 out of order! 아, 지금 화장실이 급한데 어쩌라고. 그 밑에 쭈욱 쓰여 있는 불편을 주어 미안하다 어쩌고 저쩌고. 지금 공사 중이니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 난 급해 죽겠는데 어쩌라고. 스윽 건드려보니 문은 열린다. 그렇다고 고장이라는데 어떡해! 망설이고 있는데 젊은 청년이 킥보드를 타고 휘익 오더니 그 out of order라고 쓰인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는 게 아닌가. 물어야 돼. 지금!
Can I use this toilet?
Sorry.... under construction....
확실하게 들리는 언더 컨스트럭션... 공사 중이라 사용할 수 없어요의 말. 그 총각은 거기 문을 열었을 뿐 화장실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킥보드를 넣어두려 그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아, 어떡하나. 여기서 포기할 내가 아니지. 그러나 창마다 주문 데스크 앞엔 사람들이 길게 서 있다.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아, 어떡해. 미치겠네. 오른쪽 끝에서 여직원이 나온다. 휘리릭 그쪽으로 달려가 물어본다. Can I use a toilet? 똑같은 답이 나온다. 지금은 공사 중이라 사용할 수 없다며 휙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I'm urgent.라는 말을 넣어볼 걸 그랬나? 직원들 사용하는 화장실은 있지 않겠는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 물어볼까? 당신들 쓰는 거라도 좀 알려달라 해볼까? 어떻게 그래. 아, 모르겠다. 다시 처음 내렸던 곳으로 돌아와 아들 차를 찾는다. 이미 내가 내린 곳에 아들 차는 없다. 줄은 더 길어진 것 같다. 드라이브 쓰루로 향하는 차 대열을 두세 번 돌아도 없다. 아이고. 우리 아들 어떻게 찾아? 난 아직 유심칩도 안 깔았고 밖이라 와이파이도 안되고 연락할 방법이 없다. 겁이 덜컥 난다. 줄 서 있는 차들만 돌고 돌며 들여다보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혹시 주차했을까? 주차장으로 가본다. 휴! 아들 차가 있다. 그런데 사람은 없다. 하이고.
다시 달려라 달려 주문하는 곳으로 가니 남편과 아들이 있다. 너무 반가움에 난 소리친다. 화장실 공사 중이야. 네? 사용 못하셨어요? 응. 지금 미치겠어.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중이란다. 어떡하냐. 엄마 미치겠다. 아들도 난감해한다. 아, 저기 길 건너에 가볼까? 하는데 번호를 불러 일단 주문한 음식을 모두 받았다. 그곳 야외에서 맛있게 먹으려던 꿈은 다 사라지고 음식이고 뭐고 내가 너무 급하게 된 것이다. 일단 몽땅 차에 싣고 출발!
쎄븐일레븐이 있고 작은 샵들이 있는 화장실 있을 만한 곳에 차를 세운다. 오케이. 너무 급해 후다닥 내린다. 어디로 가볼까? 음식점엔 불쑥 들어가기가 그렇고 쎄븐일레븐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한껏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Can I use a rest room?
No, We don't have.
Could you tell me any rest room where I can use here around?
Over there. Boba shop only has a rest room.
급하니까 영어가 막 된다. 오케이. 감사하다 인사하고 상가들 맨 끝에 있는 바보 샵이라 쓰여있는 아이스크림 집으로 간다. 자, 이제 어떡한다? 점원 아가씨들은 마침 저 안쪽에서 바쁘다. 오른쪽 끝에서 사람이 나오는데 화장실에서 나오는 듯하다. 그래. 오른쪽 끝으로 가본다. 오예! 글자도 선명한 Rest Room! 앗, 그런데 비번을 눌러야만 들어갈 수 있는 도어키가 턱 하니 달려있다. 슬쩍 열어보니 꽉 잠겨있다. 이를 어쩌나.
다시 카운터로 와 아이스크림 무언가를 시켜야겠구나 그러나 이 추운데 무얼 먹지? 아이고 미치겠네 하고 있는데 우아 아드님이 들어온다. 하하 살았다. 비번이 있어야 들어가는 화장실이야. 내 말을 듣자마자 아들은 점원에게 묻는다. What is the rest room passcode? 모 그런 말 같은데 점원이 명확하게 답해준다. 식스 포 원 투 6 4 1 2 외우자 외워. 후다닥 달려가 조심조심 누르고 문을 열어 드디어 급한 일을 해결한다. 하이고 살았다. 난 아이스크림 사야만 사용할 수 있을 줄 알았어. 아이스크림 사도 안 알려줘요. 물어봐야지요. 하하 그건 그렇겠구나. 묻지도 않는데 비번을 알려줄 리는 없겠구나. 흐유. 어쨌든 살았다. 아, 너무도 야속했던 out of or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