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

날아간 단체복

미국 여행 10 (221120 - 221207)

by 꽃뜰

많은 스케줄을 다 소화하고 드디어 아들 집에 도착. 우리 방에 들어온 나는 닦기 전 먼저 우리의 단체복을 입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단체복 입는 시간~ 하면서 뒤적뒤적 찾기 시작했다. 아들 친구가 본래 가격보다 훨씬 싸게 준 산타모니카 해변의 야자수가 그려져 있는 까만 티셔츠를. 단체복으로 하겠다고 똑같은 것들로 사 까만 봉지에 담았는데. 어디 있지?


그 옷을 사들고 한참 이야기를 한 후 다시 주차장까지 걸어오는 새 해님이 꼴깍 넘어가기에 난 선글라스도 귀찮아 그 봉투에 툭, 모자도 필요 없어 툭. 자꾸 발라야 하는 선크림도 이젠 더 이상 안 발라도 되니 툭, 그 새카만 비닐봉지에 넣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검은 봉투가 없다.


검은 봉투 못 봤어? 그 쓰레기 담긴 거요? 응? 그렇지. 내가 쓰레기 넣었지. 세상에. 하이고 이를 어쩌나. 화장실이 급해 Chick-fil-A에서 산 음식을 그곳에서 먹지 못하고 어디고 화장실 갈 만한 곳을 찾아 나의 급한 볼일을 끝내고야 우린 흐유 한숨을 쉬며 그 맛있는 것을 차 안에서 먹었다. 정말 맛있다 해가면서.


다 먹고 나서 본래 음식이 담겨있던 봉투에 모두 담아 쓰레기통에 버리러 나갔던 아들이 그냥 다시 그 봉투를 든 채 돌아왔다. 아니 왜? 쓰레기통이 없네요. 그래서 음료통이니 음식 먹은 종이봉투가 그대로 차 안에 있었던 것이다. 깔끔한 아들이 신경 쓸까 봐 뒷자리에 있던 나는 아, 집에 가서 버려야겠구나. 하고는 그 옷이며 선글라스며 들어있는 검은 봉지 안에 집어넣었던 것이다. 차 안에 넣고 다니는 커다란 생수도 마침 다 마셨기에 그것도 넣어서 꽁꽁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삐져나오지 않도록 묶어주었다. 집에 가서 버려야지~


그리고 그리피스 천문대에 갔고 남편과 나만 먼저 내렸고 깔끔한 아들은 빈 생수병이니 치킨 먹은 것들이 들은 채로 묶여있는 검은 봉투를 당연히 쓰레기봉투로 알고 냄새 나는 게 싫어 그대로 주차장 쓰레기통에 제일 먼저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봉지 안에 옷이며 선글라스며 모자며 선크림이며가 들어있는 줄은 나만 아는 것이었다. 하. 어떻게 쓰레기를 그 안에 넣을 수가 있어요? 하는데 나도 정말 일이 그렇게 되려고 그랬던 걸까. 어쩌자고 그 먹은 것들을 옷 위에 넣었을까? 먹은 것들을 꽁꽁 쌌으니까 괜찮겠지 하면서 그 까만 봉지에 모두 다 넣었던 것이다. 하이고 그러니까 잃어버린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모든 걸 쓰레기통에 버린 꼴이 된 것이다. 하이고 오오오.


어떡하지? 애너하임에 사는 아들 집에서 다시 그 천문대를 다녀오려면 왕복 세 시간 정도. 오늘 마침 노는 날이고 쓰레기 차는 새벽에 올테니 지금 가면 그대로 있을 것은 같다. 게다가 우리가 온 지금 매우 늦은 시각이니 더이상 사람도 많지 않을 테니 당장 달려가면 버린 그 쓰레기통에서 찾을 수는 있겠는데. 아, 이 밤에 힘들게 지쳐 온 아들이 다시 서너 시간의 밤 운전을? 아니, 그건 아니다. 아쉽지만 우리 단체복과 선글라스 선크림 모자 다시 사면되는 것들이다. 너무 피곤하게 말자. 그렇게 합의를 본다. 깨끗이 잊자!


그래도 좀 아깝긴 하다. 가기만 하면 찾을 수는 있을 것도 같은데. 아, 아니다. 하루 종일 운전한 아들이 또 운전해야 하는데 그건 아니다. 마음을 깨끗이 비우자. 그래. 그래도 자꾸 드는 생각. 헤라 선크림 새로 산 건데. 모자 내게 제일 잘 맞는 건데. 선글라스 엄마가 사주신 꽤 좋은 건데. 아, 그래도 이 밤에 다시 운전은 아니다. 그렇게 우리의 단체복은 한번 걸쳐도 못 보고 귀한 다른 것들과 함께 날아가버렸다.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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