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 상품과 달리 맘대로 여유를 부릴 수 있어 좋다고 했는데 너무 시간을 끌었다. 오늘의 스케줄을 다 소화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그래서 뉴포트비치에서는 주차하고 해변으로 가는 것 하지 않는다. 대신 차를 천천히 몰며 동네를 구경한다. 밝은 햇빛 아래 참 깨끗하고 예쁘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타이거 우즈뿐만 아니라 많은 유명인이 살고 있단다.
바다가 유혹한다. 반짝반짝 햇빛에 반사되는 물이 마치 보석 같다. 그래도 우린 바닷가로 내려가지 않는다. 그냥 차 안에서 구경한다. 시간 절약. 해지기 전에 봐야 할 곳이 많아. 도대체 오후 4시만 되면 저녁 기운이 돌며 5시가 되면 한밤중처럼 깜깜 해지는 나라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해 지기 전에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신기한 건 가게도 공공기관도 끝나는 시간을 우리처럼 6시 이런 식이 아니라 해질 때까지 라는 곳이 꽤 된다는 것이다. Open: 10 a.m. 하고 Close : Sun Set라는 팻말을 많이 봤다. 공공 화장실에서도 봤다. 해가 지면 모든 게 거의 끝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해 지는 시각이 5시라니. 겨울이라 그렇단다. 여름엔 8시까지도 훤하단다. 그래서 여행을 하려면 해가 긴 여름에 해야한단다. 어쨌든 시간을 몽땅 뺏기는 느낌이다.
이 나라는 반팔 입은 사람과 패딩 입은 사람이 공존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난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는 게 대학 1학년 때인가였는데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약간 쌀쌀한 듯 하지만 그래도 아직 더운 것도 같아 반팔로 한껏 예쁘게 차려입고 갔다. 그런데! 비가 오려는지 날이 어둑어둑해지며 바람이 쌩쌩 불고 그렇게 추울 수가 없는 거다. 그때 난 추운게 고통스러웠지만 그보다는 남들의 시선이 더욱 고통이었다. 이 추운 날 쟤는 어떻게 반팔을 입고 왔을까?라고 흉보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 남에게 피해만 안 주면되지. 화장실에서 단단히 마음을 다지고 나와도 다시 남 시선이 두려워졌다. 그런데 여긴 반팔 옆에 패딩이 있어도 아무도 상관 않는다. 보는 사람도 입은 사람도.
자전거로 쌔앵쌔앵 달리는 사람. 해변을 바라보며 친구와 하염없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 쭉쭉 뻗은 야자수, 나무 그늘에 앉아 속삭이는 연인, 한가롭게 거니는 사람, 바삐 가는 사람. 모래밭에 눕듯이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엄마. 그 앞에서 소꿉장난하는 어린 딸들, 끊임없이 내리쬐는 밝은 햇살, 그리고 예쁜 집들. 참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