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

USS 미드웨이 박물관

미국 여행 15 (221120 - 221207)

by 꽃뜰


대학 때인가? 아님 졸업 후 회사원일 때인가? 가물가물하지만 어쨌든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 그즈음에 라이프지를 봤는데 거기서 난 너무도 충격적인 사진을 보았으니 그 커다란 곳에 사진만 가득한 그 잡지도 신기했지만 거기 실린 사진이 가슴에 콕 와서 박혔다. 해병과 간호사가 키스하는 흑백 사진인데 전쟁이 끝났구나. 애인을 만났구나. 얼마나 기쁠까 하는 감동을 팍팍 주며 무언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그런 사진이었다. 바로 그게 그렇게 유명한 사진일 줄이야. 그 사진이 동상으로 만들어진 곳이 있다 하여 꼭 가보자! 이미 해가 어둑어둑 지고 있지만 달려라 달려 그 동상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항공모함엔 별 큰 관심 없어. 이미 해님도 꼴깍 넘어가는 중이고 시간도 없다. 주차하고 그 동상만 보자꾸나. 그러기엔 여기 주차장 너무 비싸네. 돌아요 돌아. 미드웨이호 밖으로 나와 다시 돌아가니 주차 가격이 저렴한 곳이 나오며 바로 그 동상이 있다. 그래 일단 여기 주차하고 동상을 보자. 엄마가 감동받았던 라이프지의 바로 그 사진.


거대한 군함 옆으로 거대한 동상. 사십여 년 전 라이프지에서 보았던 그 흑백사진 그대로의 해병과 간호사. 해병이 간호사를 꼭 끌어안고 키스하고 있다. 아, 그 사진! 그게 이렇게 동상으로! 하하 나의 젊은 시절로 뿅 돌아가는 느낌이다. 꼴깍 넘어가는 해님과 함께 기막힌 사진을 건진다. 아, 좋다. 항공모함의 속은 궁금하지 않아. 난 이 해병과 간호사가 더 궁금해. 너무 좋아하는 나를 보고 이 여행을 준비한 아들이 웃는다.


USS Midway Museum은 미국의 항공모함인 미드웨이호를 박물관으로 개조한 것이다. 실제 제2차 세계대전 때 해군이 사용하던 것으로 1945년 베트남전과 걸프전에 참전했고 1992년까지 운항했단다. 크고 작은 여러 비행기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난 오로지 동상에만 관심. 하하.


이제 동상을 충분히 보았으니 다음 코스를 향해 가기 직전 화장실에 가자. 벽돌 화장실이 주차장 끝에 있는데 Open: 10:00 a.m. Close: Sun Set 하하 다시 보는 해질 때 문 닫는다는 문구. 해님이 꼴딱 넘어가기 직전이니 빨리 서둘러야겠네. 그렇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앗, 그런데 이게 뭐야? 변기가 세 개 있는데 앞에 문이 없다. 그리고 맨 끝에는 머리가 부스스한 험상궂은 폼의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조차 어려운 사람이 들어오는 나를 보고 있다. 헉. 이를 어째. 여기서 소변을 봐 말아? 문이 없는데 저 끝에 있는 여자가 이쪽으로 오면? 무어라 해코지하면? 아이고 어떻게 문이 없을까? 그래도 너무 급하니 어쩔 수 없어. 재빨리 나의 볼일을 보자. 아, 그러나 불안하기 이를 데 없네. 저 끝의 여자가 오면 어떡해. 엉엉.

무슨 선진국 화장실이 이래? 아, 우리나라 화장실이 그립다. 호텔처럼 깨끗하고 상쾌한 화장실들. 미국이라는 나라의 화장실이 이럴 수 있어? 제발 이쪽으로 오지 마세요. 급히 볼일을 보는데 어떤 여자가 휙 안으로 들어오다 나처럼 놀란 것일까? 그 안쪽의 여자가 걸렸던 것일까? 그대로 돌아서 나간다. 아, 이 무슨 창피. 나의 볼일 보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꼴이 되었으니 아, 무슨 화장실이 이래. 그러나 나는 볼일을 끝내야 한다. 쏴아 쏴아 참았던 소변을 급히 쏟아내고 바지를 올린다. 다행히 그 끝의 험상궂은 여자는 내게 오지 않았다. 급히 밖으로 나온다. 아이고.

아니, 어떻게 화장실에 문이 없지? 그 옛날 중국도 아니고. 남편과 아들을 만나자 반가움에 놀랐던 마음을 다다다다 쏟아놓는다. 남편과 아들이 깜짝 놀란다. 그래? 문이 없어? 남자들은 본래 문이 없으니까 별 차이를 못 느꼈는가 보다. 어서 떠나자 우리. 정말 희한한 경험일쎄. 에고.


내가 라이프지에서 본 바로 그 사진. 일본의 항복 당시 타임스 스퀘어에서 해병과 간호사의 키스 장면이다. 사진가 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가 찍어 라이프지에 게재되었다.


(사진: 꽃 뜰)


keyword
꽃뜰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