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

발보아 파크

미국 여행 16 (221120 - 221207)

by 꽃뜰

미국 공원중 가장 오랜 107년 역사로 여의도 두배이며 스페인과 멕시코 영향을 받았다는 발보아 파크. 뉴욕에 센트럴 파크라면 샌디에이고에는 발보아 파크다. 세계 최대 규모의 야외 파이프 오르간 공연장이 있는 그곳으로 고우 고우! 그런데 어느새 해님이 꼴딱 넘어가 밤 시간이 되어버렸다. 아니 시간은 초저녁 5시이지만 한밤중처럼 깜깜하다. 4시쯤부터 하루가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일요일 오후 2시라면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구경할 수 도 있을 텐데. 이렇게 밤에 와서 무얼 본다고. 남편이 투덜댄다. 중간에 보고 싶은 걸 보면서 오느라 늦어졌는데 기대했던 풍경이 사라져서일까. 꼼꼼히 여행 준비를 한 아들이 곤란하게 남편은 자꾸 너무 늦었어 너무 늦었어한다. 예상에 없던 UCI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기 때문이다. 젊음의 열기가 넘치는 그곳이 좋아 우린 여기저기 둘러보고 앉아 이야기하고 밥까지 먹었다. 함께 그래 놓고 이제 와서 투덜거리다니 남편도 참참참!


낮에 와야 하는데 낮에 와야 하는데. 남편의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발보아 파크의 야경은 아름답다. 이국적 풍경의 건물들이 은은한 조명 아래 빛나고 있다. 그러나 남편은 많은 희귀한 식물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나 보다. 정작 낮에 오니 별로 볼 거 없던데요. 얼마 전 미국을 방문한 선배에게 이곳을 구경시켜주었다는 아들은 도리어 야경이 더 멋지다고 감탄을 하는데 영 아빠는 아닌가 보다. 아이고 고집불통 나의 남편. 우야꼬.


희미한 불빛 아래 한 아저씨가 능숙한 솜씨로 색소폰을 불고 있다. 악기를 부는 솜씨가 기가 막히다. 어떻게 저렇게 잘 불까? 한참을 그대로 듣고 싶지만 너무 늦어 조금만 듣고 자리를 뜬다. 그래도 뒤에서 연주 소리는 계속 들려온다. 멋지다. 종착역 즈음에 커다란 분수가 물을 뿜고 있다. 거기서 큰길로 나서니 한쪽 끝에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나무가 있다. 우아 저 뿌리 좀 봐. 어쩜! 커다란 구렁이가 꿈틀대는 것도 같고, 거센 파도 속 물결 같기도 하네. 나무뿌리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네.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스프레클스 오르간 공연장(Spreckels Organ Pavilion)에 간다. 분홍빛 조명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고 그 주변엔 크리스마스트리가 한창이다. 동방박사와 예수 탄생 장면들이 공연장 주변으로 길게 펼쳐져있다. 객석이 있는 공연장 뒤로는 산타할아버지가 길고도 긴 루돌프 대열이 이끄는 새빨간 마차를 타고 있다. 비록 파이프 오르간 소리는 못 들었지만 풍경만으로도 난 좋은데 음악을 좋아하는 남편은 꼭 그 악기의 연주를 듣고 싶었나 보다. 우리의 짧은 여행에 이것저것 다 챙길 수 있나.


보태닉가든을 꼭 봐야 한다는 남편 말에 아들과 내가 다시 찾아 나선다. 아빠. 여기예요 여기. 그런데 그곳은 공사 중이다. 어차피 낮에 와도 볼 수 없네요. 밤이라 온갖 식물을 볼 수 없다며 투덜대던 아빠에게 낮에 와도 볼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남편이 그렇게나 보고 싶다는 보태닉 가든은 공사 중이다. 하하 내겐 다행이다. 남편이 찍소리도 못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정식 명칭은 보태니컬 빌딩 앤 릴리 폰드야. BOTANICAL BUILDING & LILY POND. 온 세계의 희귀종 식물이 모여있지. 그 앞 호수가 바로 릴리 폰드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명한 곳이야. 물에 비친 건물들이 기가 막히지. 호수 안에 있는 비단잉어니 거북 등을 봐야 하는데. 밤이라 아쉽다는 말이 또 나오려 한다. 우쒸. 오리에게 모이를 주는 여인덕에 그래도 오리 구경은 실컷 한다. 하하


아이고 깜짝이야! 어둠 속에 걷다 보면 가끔 둥근 망태 속에서 사람이 툭 튀어나온다. 홈리스들이야. 이곳은 입장료가 무료고 24시간 개방하기 때문에 노숙자들이 곳곳에 진을 치고 있지. 여행 책으로 무장한 남편이 설명한다. 으슥한 계단 아래 갑자기 쓰윽 등장하는 그들 모습에 우린 종종 가슴이 철렁한다.


그렇게 남편의 아쉬움이 남은 채로 발보아 파크 구경을 마친다. 미국 서부 책을 보고 또 보고 딸딸 외우다시피 한 남편은 책에서 말하는 여러 가지가 채워지지 않아 영 만족스럽지 못한가 보다. 그걸 보고 아들이 아빠를 만족 못 시켰나 해서 안타까워한다. 그 아들의 모습이 나는 안타깝다. 남편도 참참참! 그냥 너무 좋아. 아 좋다. 그런 말만 하지. 하이고 고집 불통. 앞뒤 위아래 꽝꽝 막혔어. 흥!


친구들에게 근처 맛집을 알아두었다는 아들은 Phill's B.B.Q.로 안내한다. 배꼽시계가 한참 전부터 밥! 밥! 했으나 일단 오늘의 관광을 다 마쳐야 했기에 우린 식사를 뒤로 미뤘다. 시장이라는 확실한 반찬을 들고 그 유명하다는 곳으로 간다. 그런데 배도 고파 죽겠는데 줄이 꽤 길다. 게다가 아무리 기다려도 그 줄이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우리 뒤로 줄은 더욱더 길어진다. 배는 고파도 늘어선 줄을 보며 오홋 정말 유명한 곳인가 봐~ 나는 신난다. 우리 바로 앞에 아이들 셋에 젊은 부부인데 한국인이다. 하하 그리고도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다. 한국어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콕 와서 박히니까 느낄 수 있다.


길고 긴 줄을 기다려 결국 실내로 들어섰는데 거기도 줄이 길다. 안의 상황을 보니 알 수 있겠다.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 주문받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다. 왜 이 많은 사람을 혼자서 담당할까? 그러니까 주문받는 시간이 길고 매장 안의 자리가 비었어도 진도가 안 나간다. 휙휙 빠르게 처리하는 우리나라가 또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맥주는 그 옆에 있는 바 같은 곳에서 따로 주문해야 한다. 엄만 IPA! 하하 맥주라면 다 같은 건 줄 알고 있던 내게 나의 단짝 친구 S는 IPA를 맛 보여주었고 그때부터 나의 최애 맥주가 된 IPA를 당당하게 주문한다. 아들이 맛볼 수 있냐 하니 오홋 작은 잔에 먼저 테스트하게 해 준다. 나에게 내미는 IPA!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아들과 함께 맥주를 들고 이미 자리 잡고 앉아있는 남편에게 간다.


쭈욱 시원한 맥주와 함께 빠삭! 어마어마하게 굵은 양파튀김과 갈비구이는 정말 맛있다. 어느새 남편도 맛있네 맛있네 하고 있다. 맛있는 음식 앞에 모든 게 풀린다. 하하하하. 정말 여행 준비하느라 고생했구나. 고맙다! 남편이 기분 좋게 말한다. 멋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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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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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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