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남편은 동물의 왕국을 참 좋아한다. 미국 서부 여행책을 끼고 다니는 그는 무엇보다도 사파리 공원엔 꼭 가야 한다며 그야말로 기대 만만이다. 사자랑 호랑이랑 트램에 달려들고 싸우고 그런 걸 실제로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사파리?
Safari 원래 어원은 아랍어로 여행이란 뜻이다. 이게 변형되어 오늘날에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야생동물을 구경하는 것 또는 그런 공원을 뜻하게 되었다. 예전엔 구경이 아니라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의 자연을 여행하며 직접 사냥하는 행위를 뜻했으나, 오늘날에는 과거와 같은 사냥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단지 보고 즐기는 것으로 바뀌었다. <나무 위키>
여행책을 딸딸 외우고 있는 그는 무엇보다도 아프리카 트램을 먼저 타야 한다고 서두른다. 그렇지 않으면 줄 서느라 세월 다 뺏긴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 바로 앞에서 중국인 가족이 경쟁하듯 달린다. 그들은 우리보다 느릴 수밖에 없는데 그런데 빠르다. 배낭 빵빵하게 한 짐 가득 진 할머니. 분명 가족들 간식거리가 들어있을 게다. 키가 아주 작은데 빵빵하니 다부지게 뛰어가신다. 그의 남편으로 보이는 그보다 약간 큰 남자. 그런데 그는 짐을 진 게 하나도 없다. 어떻게 할머니만 터져 나올듯한 배낭을 메고 저리 급히 뛰는 걸까. 행여 우리에게 뒤질세라 그야말로 급히 간다. 그리고 딸과 사위일까 아들과 며느리일까 젊은 부부와 아주 어린 손주들. 겨우 할미 손잡고 아장아장 걷는. 안고 잡아끌고 우리보다 느릴 수밖에 없는 대가족인데 바쁘다 바빠.
그들을 앞자리에 넉넉하게 세우고 드디어 트램을 타는 곳에 도착한다. 막 트램이 출발하려던 차에 그 바삐 간 중국인 가족이 끝으로 타게 된다. 아마도 자리가 있으니 타라고 했는가 보다. 제일 마지막에 제일 나쁜 자리에 타게 된 것이리라. 오호호홋. 급히 서두르더니 미안. 우리는 다음 트램 맨 처음에 탈 수 있게 되었다. 그 중국인 가족은 지시따라 트램의 맨 앞으로 가는 것 봐서 맨 앞자리가 제일 안 좋은 자리인가 보다.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던 것 보니. 그렇네 안 좋네. 맨 앞 운전석엔 기사만 앉고 그 뒷줄부터 앉으니 앞이 시야가 가려 좋지 않겠다. 맨 뒷자리가 좋겠구나. 시야도 안 가리고 펼쳐진 풍경을 계속 찍을 수 있을 테니까. 오홋. 잘 됐어. 우리가 맨 처음 트램에 타게 되니까 맨 뒷자리 타자~ 하하. 설렘과 기쁨으로 다음 트램을 기다린다.
얼마 안 기다려 트램이 도착한다. 안내원이 쇠고리를 열어주면서 문이 열리고 드디어 트램에 올라탄다. 맨 처음으로 달려가 맨 뒷자리에 안착. 오홋. 앗. 그런데 이게 뭐야. 크게 Notice! 가 붙어있는데 밑에 No Passanger Allowed! 뭐야. 맨 뒷자리는 안 되는 거야? 헐레벌떡 그 앞줄로 간다. 맨 뒷자리는 비워둔 채로. 에고. 맨 뒤라야 핸드폰 촬영이 좋을 텐데. 영 아쉽다.
그 기다란 트램에 뺑글뺑글 줄 서있던 많은 사람이 타고 줄 한가운데에서 마감! 막 출발하려는데 헐레벌떡 두 여자가 그 마지막 칸으로 올라탄다. 여기 사람 타면 안 된다고 하는데....라고 말하는데도 그래서 뭐?라는 뜻으로 바라본다. 그 노티스! 를 가리키며 여기 앉으면 안 된다 하지 않느냐 했더니 구구절절이 설명하는데. 아니 뭐라고? 그러니까 그 의자에 앉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 대롱대롱 매달린 줄. 그 안에 사람이 앉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그 작은 그물망에 사람이 앉는다고? 하이고 내참. No Passangers Allowed! 당연히 그 뒷좌석을 말하는 걸로 알았지 망태기 있는 곳만 말하는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아니 그 망태기에 어떻게 사람이 앉아? 에이. 그냥 맨 뒷자리 앉아있을 걸. 괜히 꽁찌로 온 여자들에게 우리의 좋은 자리만 뺏겼다. 아쉬워라. 맨 뒤에서 드드드드 촬영할 좋은 기회를 놓쳤다.
자,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사파리. 드디어 남편이 제일 기대하던 사파리의 시작이다. 오호 황야 같은 거대한 야산을 돌며 트램 안에서는 친절한 설명이 계속된다. 가운데엔 기린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누가 수놈이고 누가 암놈이고 설명이 계속된다.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기린 그리고 들 소. 남편이 기대하는 호랑이 사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으르렁 그들의 싸움은커녕 노닐고 있는 야생동물조차 없다. 그저 평화로운 동물 들만이 멀찌감치에서 그들끼리 풀 먹고 놀고 있다. 우리는 그 외곽으로 돌며 멀리서 구경한다. 모야. 용인 사파리보다도 못하네. 평화로운 그 풍경에 스릴을 못 느끼는 남편의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 계속 용인 사파리 용인 사파리 한다. 거기서는 호랑이도 사자도 으르렁 싸우며 막 달려들기도 한다며 못내 아쉬워한다. 하이고 그럼 용인을 가세요! 난 슬쩍 아들 눈치를 살핀다. 아빠가 만족하느냐 여부를 꽤 신경 쓰는 눈치인데 남편은 계속 용인만 부르짖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고 오오오.
사파리는 그렇게 시시하게 끝나고 동물원을 돌면서 고릴라도 만나고 호랑이도 만나고 사자도 만난다. 그러나 야생적인 동물들이 아니라 호랑이도 그저 누워만 있다 가끔 일어나 끔뻑거릴 뿐이고 사자도 가만히 앉아만 있다. 고릴라는 꼭 사람처럼 행동하는데 마침내 책까지 들고 펼쳐본다. 하하. 쇼일까? 그러나 고릴라는 길들이지 못한다던데. 그냥 책을 던져놓으면 호기심에 보는 걸까?
아무래도 우리가 잘못 온 것 같다. 사파리라는 유혹에 모든 걸 포기하고 왔는데 너무 아기들이 많다. 유모차 행렬이랄까 유모차에 타고 있는 아기들이 대부분이라는 말이다. 유모차 아니더라도 아주 어린 아가들이 많다. 그 아가들을 데리고 온 젊은 엄마 아빠들. 가끔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일 뿐이다. 그러니까 여긴 아주 어린애들을 위한 공원인가 보다. 사자랑 호랑이랑 으르렁 거리는 사파리를 기대한 남편은 실망이 무척 큰지 자꾸 용인 용인한다. 발보아에서 낮 낮 했듯이. 준비한 아들 섭섭하게. 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