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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와이너리

미국 여행 18

by 꽃뜰

중학생 때인가? 적과 흑 소설을 접했을 때 쥴리앙이 가정교사로 처음 그 집을 찾아가던 땡땡 햇볕 아래 장면이 내겐 항상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도 그렇게 햇빛이 강한 날이면 난 그 소설의 그 첫 부분이 생각난다. 이날도 그렇게 쨍쨍 해님이 내리쬐고 있었다. 아들의 특별한 계획. 와이너리를 구경시켜주겠단다. 와인 맛도 본단다. 오홋. 그런 곳이? 술을 못하는 남편도 가끔 와인은 즐기기에 설레나 보다. 두근두근. 커다란 포도밭을 지나 크리스마스 리봉이 단단히 매어져 있는 예쁜 집으로 들어간다.


화려한 그곳에 커다란 바가 양쪽으로 있고 한쪽 바가 아주 바쁘다. 사람도 많고 재잘재잘 아니 쏼라쏼라 하하 말도 많다. 살짝 줄을 서서 기다리니 빈자리가 나며 우리 차례가 된다. 너무도 똑 부러지게 생긴 남자가 강한 눈빛을 내뿜으며 어떤 와인을 선택할 것인가 고르라 한다. 종이에 빽빽이 쓰인 와인 중에서 택하는 거다. 아들이 이거 이거 이거 모두 다섯 개를 고른다. Split 이 가능하냐 아들이 묻고 오케이 사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 셋이 와인 다섯 잔씩각자 다 마시기엔 무리이므로 셋이 나누어서 맛볼 수 있느냐 물었는데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은 것이다. 이제부터 와인 테이스팅이다. 하하.


첫째. 코로 냄새를 맡는다. 둘째. 한 모금 입에 넣고 데굴데굴 굴리며 입안 구석구석 그 맛을 느끼게 한다. 셋째. 조심조심 목구멍으로 넘기며 그 느낌을 즐긴다. 하하 아들의 조언 따라 와인잔을 굴려주며 코로 냄새를 맡고 입안 골고루 돌아다니게 한 뒤 조심조심 목구멍으로 넘기는 작업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처음엔 약한 걸로 시작해 점점 강한 향으로. 한 잔 새로 따를 때마다 그 똑 부러지게 생긴 남자는 엄청난 설명을 쏟아낸다. 하, 와인을 이렇게! 기다란 바에 가득한 사람들 모두 그렇게 와인을 테이스팅하고 있다. 어느새 주문한 우리의 와인을 다 마신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즉시 방을 빼준다.


밖으로 나가니 거대한 포도밭 앞에 예쁘게 정원이 꾸며져 있고 식당이 있는데 유명한가 보다. 사람이 가득가득이다. 우린 지금 식사할 게 아니니까 그냥 예쁜 정원만 구경하며 곳곳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땡볕의 한가한 오후를 즐긴다. 와인으로 살짝 알딸딸한 기분과 함께 즐거운 휴식이다. 술 못하는 남편도 이 경험이 너무 좋은지 그 적은 와인에도 붉게 물든 얼굴로 좋아 좋아 자꾸 좋아를 반복한다.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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