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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라 콘치타 비치

미국여행 21 (221120 - 221207)

by 꽃뜰

모두 함께 오빠 집에서 자고 일어난 땡스기빙 다음 날 아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를 데리고 해변가 여행에 나선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왼쪽 창으로 보이는 바다가 너무 아름답다. 일단 내려보자. 어느 책자에선가 봤는데 여기 기막힌 곳이 숨겨져 있다던데. 남편의 여행지식이 또 그 빛을 발한다. 바로 그곳일까? 바닷가로 가려니 그 큰 고속도로를 건너야만 한다. 어떻게 건너나? 앗. 저기 해변으로 통하는 길이 있어. 와우.


화살표대로 가보니 지하 터널이 길게 있고 저 끝에 빵 해님이 들어오고 있다. 걸어서 걸어서 고속도로 반대편의 해변에 닿으니 와우 철썩철썩? 아니 쏴아쏴아 파도가 치고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그림처럼 펼쳐져있다. 모래사장엔 대가족이 놀러 와 있다. 인도인 같기도 하고 아랍인 같기도 한 엄마 아빠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깔깔 푸하하하 매우 즐겁다.


그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놀고 있는 그 해변으로 내려가진 않고 난간에 서서 구경하는데 아 넓은 바다 덩달아 매우 넓어 보이는 하늘. 그리고 웃음소리 팡팡 나는 행복한 가족.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에 찰칵찰칵 정신없이 나의 카메라는 돌아간다. 그런데 남편은 여기가 아니야. 숨겨진 보석의 장소가 아니라며 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하잖다. 그러나 나의 포커스에 들어온 이곳은 너무 아름답다. 조금만 조금만 더. 셀카봉을 들고 이리저리 포옥 빨려 들어 정신없이 찍고 있는데 아뿔싸. 문득 보니 남편도 아들도 없다. 정신이 퍼뜩 들며 후다닥 지하 통로로 내려가보니 저 끝에 아들의 씰루엣만 보인다. 남편은 이미 나갔나 보다.


헐레벌떡 아들에게 달려가 아이고. 이곳 너무 멋지다. 어쩜 이런 곳이 있을까? 감탄사를 쏟아내니 아들이 씩 웃는다. 즐거우셨어요? 그렇게 둘이 처음 차를 주차한 곳으로 오니 남편이 차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아니 이 멋진 해변을 감상하지 않고! 내가 차 앞으로 다가가자 인상을 찌푸리며 '이동에 협력하자!' 스케줄에 따르라는 거다. 정해진 스케줄이라는 게 무어 있을까? 그냥 눈 내키는 대로 발 닿는 대로 룰루랄라 가는 그게 여행이지. 그러다 맘에 드는 곳 나타나면 가슴에 담고 찰칵찰칵 사진에 담고. 그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흥! 갑자기 나도 화가 난다. 여기까지 와서 그 사진 찍기 좋아하는 아내를 이해 못 한단 말인가. 꼭 그렇게 화를 내야만 하나? 흥! 나도 기분 나빠! 그렇게 차를 타고 다음 코스까지 이동이다. 한 삼십여분 아들이 운전하는데 그도! 나도! 아무 말을 않고 있다. 흥! 아들아 이해해다오 난 네게 화가 난 게 아니야 아빠에게 화난 거지. 흥! 흥흥!


아, 그런데 그 시간이 아들에겐 죽음이었나 보다. 나중에 둘째 아들이 알려준다. 형이 그때 미치는 줄 알았대. 난 맘껏 남편에게 불편함을 표현했다. 흥! 흥흥! 거기서 어떻게 화를 내냐고! 아들은 내가 좋아하는 걸 실컷 하게 하며 곧장 아빠에게 가서 엄마 기다리는데 지루하지 않도록 곁에 꼭 붙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드리고 다시 엄마에게 와보면 엄마는 그저 즐거워 가자 소리 못하고 다시 아빠에게 가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차 안에서 찬바람 쌩쌩~ 냉전까지니. 아이고 미안해라.


남편은 계획에 또 계획! 철저한 사전 준비와 그대로의 실행! 그러나 나는 아니다. 여행 전엔 아무 계획도 안 짜고 아무 지식도 넣지 않는다. 처음 느낌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아무 사전 지식 없이 있는 그대로의 첫 느낌! 그런데 남편은 여행에 관한 온갖 지식을 집어넣고 그 스케줄 따라 이동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 하이고. 난 그게 아닌데. 그건 음악감상에도 마찬가지다. 남편은 한 곡을 들으려면 누가 작곡했고 어떤 스토리가 있으며 연주는 누가 했고 지휘는... 우아아아 알아야 할 게 너무 많다. 그런데 난 그냥 듣는다.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쌩판 처음인 듯 들으며 느끼는 게 좋다.


엄마 아빠는 누가 맞고 틀리고 가 아니고 정말 두 분의 여행스타일이 다르신 거예요. 그걸 서로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하하 극적으로 갖게 된 커피타임에 온갖 섭섭함을 토해내는 중 엄마아빠를 오가며 중재하느라 홀로 힘들었던 아들이 내려주는 명쾌한 결론이다. 그래. 이제 나도 좀 조심할게. 남편도 절대 절대 절대 화내지 않기.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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