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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철 길

by 꽃뜰

"서울행 열차가 곧 도착합니다."


하더니 곧이어


"나오세요. 어서 나오세요~"


하하 모지? 매우 추운 날씨. 사람들이 추워서 플랫폼 박스 안에서 꼼짝 않고 있어서 그러나? 어서들 나오지. 아니 그래도 열차 도착 십분 전 방송이니 아직 여유는 있다. 그런데 또 방송이 나온다.


"어서 나오세욧."


모야? 기차가 도착하면 어련히 들 그 따뜻한 곳에서 나오지 않을까. 저리 나오라고 난리람. 방송을 탓하며 난 하던 일에 집중하고 있었으니 무엇이냐. 모처럼 새로운 각도로 찍고 싶어 진 나는 저 멀리 플랫폼 끝에 가 초록색 휀스 뒤로 쫘악 펼쳐진 길고 긴 철길을 찍고 있었다. 휀스 구멍에 핸드폰 렌즈를 맞추어 휀스 뒤 철길만 나오게 찍으니 와우 너무 멋있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하다. 철길 따라 마냥 걷고 싶어 지는구나. 감탄하며 찍고 있는데 문득 드는 생각. 혹시? 나를? 아이 그럴 리가. 아직까지 그런 일이 없었는 걸. 언젠가도 여기 와서 저 끝없이 이어진 길고 긴 철길을 찍은 것 같은데. 그래도 설마 나?


"어서 나오세욧!"


이젠 방송하는 목소리가 무려 화까지 낸다.


"노란 선에서 빨리 나오세욧!"


헉? 나? 그리고 보니 언제 생겼을까? 바닥에


이곳은 관리자만 출입하는 곳입니다. 절대 안으로 들어가지 마세요.


하는 경고문과 함께 노란 선이 있다. 아이고. 저 방송이 나를 향해 외치는 거였어? 두리뭉수리 플랫폼 전체에 퍼져나가는


"어서 나오세욧!"


나를 향한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했다. 이곳에 몇 번을 와도 지금까지 아무도 저지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새로 안전선이 바닥에 그려졌나 보다. 경고 방송의 주인공이 바로바로 나라는 걸 알게 된 순간 너무 당황스럽고 죄송하고 어쩔 줄을 모르겠다. 후다닥 잽싸게 뛰어 그 안전선 밖으로 나온다.


"정말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소리쳐 사과라도 하고 싶지만 두리뭉수리 퍼져나가는 방송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 듯 플랫폼 많은 사람들은 도착한 열차에 몸을 싣느라 바쁠 뿐이다. 휴.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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